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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Mar 15. 2020

별 거 아닌 오늘 같지만

Kobe W.O.D

“내일이 지구 멸망의 날입니다. 오늘 무얼 하시겠습니까?


학부 시절 스펀지 방송에 우연히 출연한 적이 있었다. 명동 한복판에서 갑자기 카메라가 들이닥치더니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시 교수님 소개로 고교 토론 방송에 방청을 가던 길이었다. 같이 걷던 오빠는 우스갯소리로 대답했다.


“사과나무를 심겠어요”


나 또한 별 고민 없이 말했다.


“가던 길 갈 것 같아요. 스티브 잡스가 그랬잖아요.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고. 열심히 살았으면 후회 없겠죠.”


누가 토론 수업 듣는 학생들 아니랄까 봐 뉴턴이나 잡스 같은 유명 인사들을 끌어와 어려운 답변을 어영부영 대신해버렸다. 오빠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난 그때 말은 저렇게 해놓고 진짜 뭘 했을까 싶었다. 방송 녹화 시작 전 잠시 화장실을 갔다 오며 엄마한테 전화를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어김없이.

하루살이 인생이라 뭘 한대도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겠지만 할 수 있는 한, 살아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했다. (심지어 그 질문을 들은 시간은 정오가 지나서였다)


나는 평소에도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마음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쉬운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끊을 때마다 사랑해라고 말하니 누구라도 옆에 있는 날이면 으레 이런 말을 들었다.


“너 아빠, 엄마한테도 사랑한다고 말해?”


고개를 끄덕이면 효녀네 라는 긍정적인 반응을 듣거나 으, 나는 닭살 돋아서 못하겠어 같은 부정적인 반응을 듣곤 다. 전자는 확실히 아빠와 유사하며 후자는 정확히 엄마와 비슷했다. 그래도 몇 년째 같은 말을 반복하니 요즘엔 엄마도 사랑한다 대답하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런 날이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또 한편으로는 안심도 다.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대학 선배의 영향이 다. 세계국제공용어인 에스페란토어를 배우는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였다.


“이거 챙겨 먹어. 아빠가 메추리 농장 하시는데 내 거 쌀 때 니들 주려고 좀 더 싸왔어. 너랑 룸메랑 나눠먹으라고”


기억 속 선배는 유난히 후배를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기숙사생이 반찬 받아보는 건 엄마 빼고 없을 줄 알았는데 선배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락앤락 유리그릇 안에 정갈하게 담긴 메추리알 간장 조림을 보고 있으면 갓 데운 햇반처럼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경영학도였던 선배는 그즈음 휴학하고 SFP  인턴 활동을 시작했는데, 보험 업계가 힘들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동아리 방에서도 기숙사에서도 점차 선배 얼굴을 보기 어려워졌다. 어쩌다 한 번 학교를 오는 날에는 그렇잖아도 마른 몸이 더 수척해져 있었다. 원래 살가웠던 후배도 아니었지만 정장을 입은 선배 모습은 유난히 낯설어서 오랜만에 봤는데도 친근하게 대하지 못했다. 그렇게 일 년, 나 또한 대외활동이다 봉사활동이다 바쁘게 지내다 보니 선배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깨끗이 비워서 돌려준 그릇만큼이나 어쩌면 선배라는 형식적 테두리만 남아 버린 걸지도 몰랐다. 대학 3학년 개강 전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 왔다. 선배였다.


“잘 지냈니? 나 내일부터 학교 가. 오랜만에 복학인데 애들 생각나서 연락해봤어.”


반가움보다는 떨떠름함이 더 커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또렷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면 선배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나 진짜 열심히 살 거야. 돌아가면 열심히 공부할 거고 회계 공부 열심히 해서...”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열심히라는 단어가 무색해질 만큼 선배는 이튿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학교 가는 버스를 잡으려고 급하게 뛰어가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선배의 가족들을 봤다. 동아리 회원들과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등 뒤로 오열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문 온 사람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웃고 떠드는 게 이상하게 거슬렸다. 차려진 상을 보는데 어느 날 저녁 맛있게 먹었던 메추리알이 생각나 이상하게 빚을 진 기분이었다.


기숙사로 돌아와서는 동틀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물을 마시려 냉장고를 열면 마음이 더 헛헛해졌다. 언젠가 저기에 선배가 준 반찬이 놓여있었는데. 복받쳐 오는 감정을 참을 수가 없어서 일기를 썼다. 눈이 부은 채로 울다가 쓰기를 반복하면 어김없이 해는 떴고 새가 지저귀었다. 창 밖으로 학생들이 하나둘 교정을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일 교시 수업을 들으려면 이제 나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상했다. 한 사람이 죽었는데도 모든 것이 변함없이 돌아간다는 게. 내 핸드폰 통화목록엔 여전히 선배의 이름이 있었는데 말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정말이지 많은 영향을 끼친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 지인의 죽음, 동경하던 아티스트의 죽음, 사인은 모두 다 다르겠지만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게 공통점일 것이다.


최근 스포츠 계에서도 안타까운 부고 소식이 있었다. 바로 농구 선수 코비(Kobe Bryant)의 헬기 추락 사고였다. 뜻하지 않은 사고사에 전 세계가 큰 충격을 입었고 코비의 팬들 또한 황망함을 감출 수 없었다. 크로스핏 박스에도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사고사 보도 이후 처음 하는 와드(Workout Of the Day; 오늘의 운동)로 코비의 등 번호를 딴 운동이 나왔다.


5 rounds for time of (Time cap 16 min)
 8 power snatches
24 wall ball shots
20 box jumps

*16분 안에 5라운드를 반복하는 운동. 하나의 라운드 당 8개의 파워 스내치, 24개의 월볼샷, 20개의 박스 점프를 해야 한다.
*Kobe WOD의 각각의 숫자가 가진 의미는 다음과 같다. 5는 코비가 레이커즈와 NBA, 챔피언십을 우승한 횟수, 8 은 1907년~2006년까지의 등 번호, 24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의 등번호, 20은 코비가 현역으로 뛴 기간을 뜻한다.



하는 내내 최선을 다해 임했다.

운동이 다 끝난 후 칠판에 적힌 기록을 보고 있는데 오늘 같이 운동한 오빠가 말했다


“사실 내가 제안한 거야. 어젯밤에 H 코치한테 하자고 했어.”


허탈한 눈으로 칠판을 바라보는 오빠를 보았다. 그날은 오빠가 퇴사를 하고 난 후 처음으로 점심에 운동을 나온 날이었다. 코비의 죽음 때문인지 새 출발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오빠의 어깨는 그날따라 유난히 내려앉아있었다. 박스 바닥에서 힘없이 샐러드를 까서 먹는 오빠에게 뭔가 기운 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소셜미디어에도 종일 코비의 사진이 올라왔다. 예쁘고 행복해 보이는 사진과 짧은 글이 대다수였던 공간에 감정이 실린 긴 글이 여럿 올라왔다.


“나는 코비의 팬이 아니다. 마이클 조던의 팬으로서 그의 아류였던 코비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비는 조던을 넘어서 또 다른 영역을 일궈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존경한다. 어느 순간부터 안티에서 팬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죽음을 가슴 깊이 애도한다.”  


“낯설고 힘들기만 했던 내 조기 유학생활에 코비는 우상이었다. 코비가 있어서 미국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미국 아이들과 농구를 하며 코비의 과감한 플레이를 따라 했다. 비로소 그들 속에 섞여 들어가 어울려 지낼 수 있게 됐다. 코비는 내게 농구 선수 이상이었다.”


“애들이랑 농구할 때면 이거 코비 스타일인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실제로 나는 코비를 닮고 싶어 했고 코비를 따라 했다. 리틀 코비라고도 불렸다. 그런 코비가 죽다니.. 이건 내 유년의 모든 것이 날아간 느낌이다.”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면 그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괜히 가슴 한쪽이 찡하면서 아릿했다. 코비에 관한 웹툰을 그리려고 마음먹은 것도 그러한 울림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코비의 끊임없는 자기 계발, 그에 대한 사람들의 애도 글을 담아 코비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걸 보여주고 기억하려 했다. 그런데 등 번호 24를 그리는 와중에 전혀 뜬금없게도 선배가 생각났다. 그 옛날 "열심히 살 거야"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24번.

하루는 24시간.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오늘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열심히 살고 싶던 내일이 될 수 있다는 것.  다음 순간 뜻하지 않게 다른 방향으로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오늘 내가 보낸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하루일 수 있기에 부끄럽지 않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웹툰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코비의 팬이자 그의 죽음을 애도했던 팔로워 분들이 어김없이 웹툰에 댓글을 남겼다. 그분들의 소셜을 통해 상실감에 대해  공감했기에 나 또한 긴장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보았다. 모쪼록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따뜻한 댓글을 남겨주는 분들이 많아 다행이었다. 그날은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새삼스레 오늘 하루를 돌아보게 되는 저녁이었다.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 살지 못한 채 지나간 24시간, 그 소중한 시간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죽음학의 대가'라 불리는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 『인생 수업 Life Lessons』 에서도 이런 말이 나온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우리는 정말  매일 마지막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지나간 시간은 절대 반복되지 않고 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좀 더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면서 말이다.


추후 방영된 스펀지 방송을 보고 친척들에게 연락이 왔고, 스티브 잡스 운운했으니 다소 부끄러웠지만 그 부끄러움만큼이나 그날의 기억이 오래 남아 때때로 이렇게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리하여 '좋아하는 것들에 충실하자.'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살자.' 잊어버릴 때쯤 한 번 더 복기하게 되는 것이었다. 별 거 아닌 오늘 같지만 사실 정말 별 거인 오늘일 수 있었으니 현재의 삶이란 그렇게 선물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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