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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Feb 12. 2020

나는 왜 밥 먹듯 운동이 가고 싶은 걸까

힘들다는 운동을 계속하는 이유

아빠와 엄마는 평생 취향을 달리했다.

아빠는 강과 바다로 엄마는 산으로.

어릴 때 우리가 함께 가족 여행을 갈 때면 나는 늘 불편했다. 아빠는 고기 달아난다고 조용히 하라고 했고 하염없이 강물만 쳐다보았다. 엄마는 그 꼴이 보기 싫다고 근처 풀밭에서 나물이나 약초 같은 것들을 찾아내곤 했다. 친절하게 낚시를 가르쳐주는 아빠도 아니었거니와 모두 다 비슷하게 생긴 풀밭에서 어떤 게 식용인지 분간할 만큼 똑똑한 나도 아니었다. 아이스박스에 만족할 만큼의 고기가 채워지거나, 쑥이나 약초 같은 것들이 엄마 팔에 한 아름 들릴 때쯤 저녁이 됐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같이 시간을 보냈지만 함께 즐긴 게 아니니 가족 여행은 당연히 출발부터 오는 길까지 영 재미가 없었다.


"너 어릴 때 다 기억나지? 얼마나 자연 학습 많이 했니 아빠 낚시 따라다니면서. 엄마가 화전도 부쳐주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엄마는 우리의 기억을 이렇게 예쁘게 포장했다. 회로 먹을 수도 없는 붕어의 슬픈 눈알을 보고 있으면 안타깝기 그지없었고 화전 맛을 알만큼 어른스러운 나이도, 입맛도 아니었는데  생경스런 말이 아닐 수 없었다(실제로 모양만 예쁜 전은 김치 전보다 맹숭맹숭하니 맛이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하면 엄마가 서운해할걸 알기에 나는 그냥 응 그랬지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사실 엄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늘 살아있는 생선을 손질하며 인상 찌푸리곤 했으니까.


"나중에 당신 저 세상 가면 물고기들이 다 욤뇸뇸뇸하면서 뜯어먹으러 올 거야.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날 선 목소리로 아빠에게 외치던 엄마 목소리는 아직도 떠올리면 파도처럼 생생하게 밀려들어왔다.  


사람의 취향은 정말이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요즘도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낚시터로 출근하고, 엄마는 산악회를 가거나 남도 한 바퀴라는 지역 산행(또는 지역 축제) 관광 여행을 떠나곤 한다. 다행인 건 이젠 둘은 완전히 따로따로 다닌다는 거였다. 예전에는 자식이 함께 있어 그런지 몰라도 가족 여행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어떻게든 함께 하려고만 했다.


"이제 다 늙었는데 각자 사는 거지. 포기하면 편하더라."


유선 상으로 듣는 엄마 목소리는 딱히 슬프지도 화나 보이지도 않았다. 파도가 결국에는 바다의 일인 것처럼 지금껏 무용한 것들에 괜한 힘을 써왔다는 듯 썰물처럼 깨끗이 비워낸 목소리였다. 그럼 나는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현재를 돌아보게 고,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사람 둘이 만나 함께 산다는 건 취향이 참 중요하구나 생각하게 됐다.  가급적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야지. 남녀 관계를 떠나서라도 내 주변 모든 관계에서 이왕이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면 좋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보는 것이었다.


"그래도 네가 보기에도 좀 너무 하지 않니. 네 아빠 오늘도 낚시 갔어."


다시 밀물이 들어올 시간이다. 삶에서 시시 때때로 찾아오는 외로움을 달래려면 아무래도 취향 맞는 사람을 찾는 편이 좀 더 이롭겠다고 또 한 번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지금보다 어릴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줄곧 남들이 좋다는 것에 이끌려서 살아왔던 것 같다. 유행하는 옷, 남들이 좋아할 만한 외모, 예쁘다는 몸, 어디 가서 말하면 부끄럽지 않을 직장. 그런 것들은 사실 이제는 연락 끊긴 친구들처럼 내게서 오래 머물지 않고 지나가버리는 것들이었는데 꽤 한참을 오래도록 질질 끌려다녔다.


나이가 서른 줄이 다 돼서야  나는 주변 정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뭐가 좋고 싫은지 자주 생각하고 또 생각하길 반복했다. 스스로에게 내가 좋아하는 건 이거야 반복해서 주입시키며 좋아하는 것들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흘러온 시간들에 뜰채를 담가 꼭 가져가야 될 것들만 건져내고 보니 그 안에는 신기하게도 크로스핏이 있었다.


크로스핏 점심반을 만나게 된 후, 나는 내 하루가 24시간이 아닌 23시간이라고 여기게 됐는데  매일 같이 꼭 한 시간을 이 커뮤니티에 할애하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눈 감기까지 이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만큼 내 삶에 활력을 주는 일이 없었다. 매일매일이 늘 평균 이상으로 좋았고, 책을 읽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이보다 더 좋은 경우는 웬만하면 드물었다. 크로스핏이라는 운동 안에서도 굳이 평일 12시 반 타임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사람에 있었다.


신혼집 가구 고르듯 까다롭게 고른 이 커뮤니티 운동은 내가 원하던 이상적 취향 공동체에 딱 맞아떨어졌다. 전 회원 중에 가장 운동 잘하는데 겸손하기까지 한 A오빠, 비슷비슷한 레벨에 친구 같은 B언니, 늘 사람을 잘 챙기는 C오빠, 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어느 날은 박제해놓고 싶을 만큼 좋기도 고, 어느 날은 부서져버릴까 봐 노심초사하기도 했었다.


짧은 시간에 고효율로 운동할 수 있는 크로스핏은 현대사회에 잘 맞는 운동이 틀림없다. 그런데  단지 이 운동 자체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좋은 것인지 크로스핏이란 커뮤니티 운동 자체가 좋은 것인지 언제부터인가 헷갈렸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점심반이 아니었다면?

내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크로스핏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할 수 있는 운동이 정말 많고  운동할 수 있는 공간 또한 한 블록 건너 수없이 많이 보이는 게 요즘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많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하나가 좋아진 건 마치 하루키 소설 속 4월의 어느 봄날 우연히 마주친 100%의 여자아이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소설 속 화자처럼 지나치고 나서 100%였다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함께하면 즐거운 취향 공동체를 어떻게든 꽉 붙잡고 놓지 말아야 한다. 나는 늘 이 사실을 뇌리에 새기면서 점심마다 습관처럼 박스에 간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통해 취향이나 취미를 갖는다는 건 길고 권태로운 일상을 버텨낼 힘이 되어주다는 걸 배웠다. 일단 갖게 되면 쉽게 놓지 못하게 될 거라는  또한 알게 됐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놓지 못하는 것들을 함께할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다행히 나는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덕분에 내 취향을 좀 더 예쁘게 오래도록 지켜낼 수 있게 됐다. 함께한 시간 때문에라도 이 운동은 날이 갈수록 소중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본디 취향이란 것은 아주 작고 정교하면서도 개미굴처럼 복잡하고 세분화돼있어서 이것들을 찾고 지켜내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다.

가령  음악이 좋았지만 힙합이 좋진 않았고, EDM이 좋았지만 무작정 시끄러운 음악보다는 가사가 좋은 EDM이 좋았다. 그 와중에 어쿠스틱 버전까지 있으면 그게 바로 내 음악적 취향이 되었다.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하지만 알록달록한 산호를 보거나 작은 생물들을 보는 걸 좋아했으며 처음부터 바다 깊은 곳을 찍고 올라오는 딥 다이빙을 좋아하진 않았다. 장거리 달리기를 좋아하지만 뒤로 갈수록 더 빨라지는 빌드업은 싫어했고 출발점부터 도착점까지 일정한 지속주로 가는 걸 선호했다. 결국 나는 음악도 좋아하고 스쿠버 다이빙도 좋아하고 달리기도 좋아하는 아이지만, 뭐 하나 좋더라도 그 하나의 전부를 좋아하진 않는 아이였다. 그 사실을 알기까지 꽤나 많은 음악을 들어야 했고 일백 번의 다이빙을 해봐야 했으며 천 킬로미터의 달리기를 해야 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사람의 취향이란 거미줄처럼 아주 세밀하게 얽혀있는 게 아닐까.


처음에는 '나 이게 좋아'라고 말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좋은 하나, 그 하나 때문에 다른 나머지 것들을 모두 상쇄시킬 수 있어서 끝끝' 이게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 시간의 풍화 속에 깎이고 깎여서 만들어진 원석을 다시 또 내게 맞게 정교하게 다듬은 석 같은 거랄까. 지나온 시간만큼이나 공들인 노력만큼이나 너무나 반짝여서, 너무 작고 소중해서  작은 보석의 값어치가 비로소 헤아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작아서 더 가치 있는 것이 취향이라면 그것이 크로스핏이 됐든 달리기가 됐든 요가가 됐든 주짓수가 됐든 이걸 읽는 모든 분들이 그 보석을 찾았으면 좋겠다. 꼭 땀 흘리고 활동적인 게 아니라도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OO, 눈 감고 생각해보면 가슴 벅찬 것들이 많을 테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봐야 보이는 그런 것들, 그런 취향들로 일상을 채워가는 사람들이 보다 많아지면 좋겠다. 힘들겠지만 그걸 놓지 않고 시간을 들여 오래 지켜 가다 보면 먹고살기 급급해서 늘 피로를 조장하는 오늘, 불안하기만 한 내일의 어느 순간, 소소한 기쁨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지켜온 작은 것들 때문에라도 지나온 하루하루들이 일순간 반짝여 보일 수 있을 테니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수상 소감처럼 모두가 보편적인 결과만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취향이란 결국 나 자신에 고유한 색깔을 채워주고 색다르게 빛나게 해주는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가만히 곰곰이 생각해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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