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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Mar 22. 2020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잖아요

나는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부상이 많지 않나요? 그 운동은."


새로 알게 된 분이 내가 크로스핏을 한다 하니 이렇게 말했다.


"무리하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딱 이만큼인데 그보다 더 하려고 하면 항상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뭐든 적당한 때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하는 거죠."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음 순간 뭔가 생각났다는 듯 기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렇죠. 모든 운동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자전거를 좋아해서 3년 동안 했어요. 오르막보다는 평지에 강한데, 보시다시피 몸이 무거워서요. 그런데 늘 무리해서 오르막길을 오르려 하니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천천히 가도 되는데 주변에서 푸시하고 그러다 보면 욕심이 생겨버리니..."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분이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들었다. 얘기를 듣다 보니 어쩐지 남일 같지 않았다. 얼마 전 박스에서 있었던 일이 겹쳐져서였다.  




연차를 낸 날이었다. 여느 날과 달리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W.O.D(Workout Of the Day: 오늘의 운동)를 끝내고 나서도 크로스핏 박스에 남아 추가 운동을 했다.


"뭐야. 너 더블 언더 그것밖에 못해? 20개 한 번에 해봐."


그러니까 막 줄넘기를 내려놓던 참이었다. 코치님이 박스로 들어오셔서 특유의 크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날 쳐다보던 게. 그때 바로 못하겠다고 대답했어야 했다. 왜 말도 못 하고 어버버거렸는지.


이미 체력은 바닥나 있었다. 일 분에 더블 언더(2단 줄넘기)를 10개씩, 십 분 동안 총 100개의 더블 언더를 해낸 후였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초반에는 곧잘 했지만 늘 그렇듯 후반부로 갈수록 지지부진해졌는데 줄이 자주 발에 걸려서 9분에서 10분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1분이 특히나 처참했다. 하필 그때의 나를 코치님이 보게 됐으니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영 시원찮았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5분에10개도 간신히 하던 난데 이 정도면 정말 많이 뛴 거였다. 열심히 했는데도 다 끝내고 나서 그것밖에 못하냐는 소리를 듣다니 손발에 힘이 쭉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저 100개 했는데요? 더는 못할 것 같은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주저하며 말을 흐렸다. 코치님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왜 못해? 100개가 많은 거야? 잘하는 사람들은 1,000개씩도 하는데. 누구누구랑 누구누구는 한 번에 1,000개씩도 할걸. 개네 따라가려면 100개가 문제야? 두배 세배는 해야지. 그래야 네가 개네를 잡을 수 있는 거야."


코치님은 선반에 있던 줄넘기 가방을 꺼내 들었다. 15만 원짜리 줄넘기라며 뛰어보라고 말하는데 머리가 복잡했다.


'굳이 제가 왜 그분들을 따라잡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생각은 이렇게 했지만 몸은 그와 반대되게 공손히 줄넘기를 건네받았다. 못 이기는 척 줄을 돌렸다. 핀셋처럼 틀린 동작을 하나하나를 짚어내는 코치님의 열정 때문이라도 이를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줄을 넘겼다. 이내 바로 걸렸다. 타닥. 툭.


"다시."


그때부터였다. 다시의 습격이 시작된 게. 끝도 없이 불어오는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다시'라는 말이 나를 덮쳤다. 갈수록 호흡이 가빠졌고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다시. 더. 더 높이. 다시. 더. 더 빨리."


결국 그날 한 시간을 더 운동했다. 터덜터덜 박스를 걸어 나왔다. 슬프게도 코치님이 바랬던 한 번에 20개의 더블 언더는 끝내 해내지 못했다. 정규 WOD(오늘의 운동)를 끝내고 더블 언더 100개를 한 후 또 더블언더를 했으니 정강이가 남아나질 않았다. 집에 와서 보니 왼쪽 정강이에 푸른 멍이 올라와 있었다. 그 후로 며칠간 줄넘기는 쳐다도 보기 싫었다. 이제 막 더블 언더에 정을 붙이려다 다시 이혼도장을 꺼내 든 기분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에 고강도 운동을 목표로 하는 크로스핏은 오늘 수행해야 할 운동(WOD) 자체가 이미 인체의 한계에 다다르게 설계돼있었다. 그러니 한계치까지 올라왔는데도 거기서 좀만 더, 좀만 더 하다가 무리해버리면 이내 부상으로 직결되기 십상이었다. 이 같은 내용은 '크로스핏 부상(crossfit injuries)'이라 검색만 해도 여러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유독 인상 깊었던 글귀가 있어서 가져와보았다.


Never forget that your body has its limits. As long as you remember that you are not Superman, you should be fine.

우리 몸엔 한계가 있다는 걸 꼭 인지하자. 우리가 슈퍼맨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는 한, 부상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참 공감 가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이를 인지하고 행동하기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내 몸에 집중해야 할 때 타인의 기대가 덧입혀지기 때문이다.


한번 더! 할 수 있어! 돼! 쥐어짜! 좀만 더!


크로스핏에서는 특유의 파이팅 문화가 존재하며 바닥난 에너지마저 끌어올려주는 이런 응원문화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응원에 힘입어 안되던 걸 해버리면 그때만큼 영웅처럼 느껴지는 때도 또 없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이며 분위기에 떠밀려 자칫 잘못하다가는 좋아하는 운동을 아예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응원은 보통 강도가 셀 때, 피로도가 극에 달했을 때 더 힘을 얻는다. 운동을 한번 하고 말게 아니라면 보다 오래 하고 싶다면 런 때야말로 타인의 신호를 차단한 채 누구보다 내 몸에 집중해야 한다. 실제로도 부상 사례로 무게를 욕심내서 더 들다가 개수를 평소 하던 것보다 더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다. 내 그릇은 이만큼인데 더하려고 하다 보니 결국 넘쳐버리거나 깨져버리는 것이다.


분명한 건 다른 사람들은 내 몸의 한계를 나만큼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어려운 도전을 할 때 응원을 해줄 수는 있지만 절대로 내가 되지는 못한다. 오늘따라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을 때, 조금이라도 통증이 있다거나 불편할 때, 스스로 알아서 조절하며 운동해야 하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다.


나조차도 내 몸의 한계를 모르겠을 땐 나 다음으로 내 몸을 잘 아는 전문가(=코치님)를 믿는 것 또한 중요하다. 사실 그날 내가 제일 잘못했던 건 더블 언더에 서툰 것도 근성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라, 정확히 말하지 않은 것이다. 이 운동은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똑바로 말하고 과감히 내려놓았어야 했다.


"이 운동할 줄 알아 라고 말하는 건 한 번 해놓고서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할 수 있어야 비로소 내가 그 운동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거야."


코치님은 예전에 이런 얘기를 했었다. 그런 코치님 앞에서 더블 언더 100개 했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해버렸다. 기에 눌려서 괜찮은 척 애쓰지 말아야 했는데 통증을 참아가며  억지로 줄을 넘겼다. 결국 칭찬받고 싶은 욕심과, 더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무리로 이어져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아픔을 느끼는 주체가 나이듯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기까지 조율해야 하는 것도 나여야 했는데...그러나 이제라도 문제를 알았으면 되지 않았나. 다행히도 문제를 알면 고칠 수 있다.


과유불급 過猶不及(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이라는 말처럼 뭐든 버틸 수 있을 만큼 과하지 않게, 그렇다고 또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 이는 비단 운동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적용되는 것 같다. 주변에서 아무리 푸시를 해도 내가 못할 것 같으면 내려놓으면 된다. 열심히 한 게 보이면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스스로 잘 내려놓기 위해서는 어디까지가 무리이고 어디까지가 최선인지 아는 게 선행돼야 하는데 잘하고 싶어서 욕심 내는 것도 좋지 않지만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 또한 좋지 않다. 꾸준히  자기 자신의 한계점을 늘려가는 건 정말이지 중요하니까. 그러니 어느 순간에든 도전정신은 잃지 말아야  것이다.


다행히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내 한계점을 알았고, 좋아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조금 더 내 몸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 몸을 제일 잘 아는 건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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