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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Jun 14. 2020

초코맛 아이스크림이 좋은 이유

마케팅에서 최초상기도가 갖는 의미

"아이스크림 좋아해요?"


"네"


"초코맛 아이스크림 좋아해요? 바닐라맛 아이스크림 좋아해요?"


"초코맛..아이스크림 좋아합니다"


"그럼 나한테 초코맛 아이스크림이 바닐라맛 아이스크림보다 좋은 이유를 마케팅적으로 설명해봐요"


면접이란걸 열번은 더 본 것 같은데 내가 본 면접 중에서 이 질문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도 그럴거니와 나는 음악 회사 면접을 보고 있는데 대표라는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묻는 걸까? 질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아이러니한 상황 탓인지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이 질문은 어김없이 곱씹게 됐다. 아마 나이 들어 잇몸이 다 헐어 뭔가를 씹기가 어려워졌을때조차 아이스크림하면 빙그레 웃으며 이 순간을 떠올리겠지.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았다. 콘아이스크림의 바닐라맛도 빵빠레도 내 입맛엔 느끼했다. 엑설런트라고 까서 먹는 아이스크림은 그나마 몇입 먹곤 했지만 내 돈 주고 사먹을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냥 싫은걸 어떻게 마케팅적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초코맛 아이스크림은.. 초코맛이 좋았는데...'


좋아하는 걸 왜 좋아하는지 고민하다보니 처음 초코맛이라는 걸 느꼈던 순간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준 가나 초콜렛이 혀에 닿았을 때 사르르 녹는 그 느낌. 쌉싸름하면서도 달달한 맛. 사탕의 오독오독하고도 날카로운 느낌과는 전혀 다른 그 포근함. 첫 느낌을 기억하고난 후 나는 서서입을 뗐다.


"초코맛 아이스크림이 좋다기보다는 초코맛 그 자체가 좋았습니다. 처음 초콜렛을 먹었을 때 혀에 닿는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는데요. 그 때 이후로 저는 과자도 초코 과자, 우유도 초코 우유, 아이스크림도 초코맛 아이스크림을 선호합니다.

이걸 마케팅적으로 풀어보자면...최초 상기도를 올려야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쪽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스크림 좋아해요라고 물었을 때 바로 초코맛 아이스크림이 연상된다면 초코맛 아이스크림이 잘 팔리겠지요.

음악이라고 말했을 때 바로 이 브랜드가 떠오른다면 마찬가지로 다수의 고객에게 선택 받을 확률이 커질겁니다. 저는 그런 마케팅을 해보이겠습니다."


많이 떨었고 어버버하면서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초코맛 아이스크림과 마케팅을 연결시켰다는데 스스로도 놀라웠다. 도무지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인 건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신이 아닌 이상 내가 남의 속을 어떻게 들여다볼 수 있을까. "내 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래 가사처럼 가끔은 내 속도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실제로  때의 마음가짐이 얼마 안가 사르르 녹아 없어져버릴지도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여전히 초코맛을 좋아하고 음악도 늘 듣던 서비스만 애용한다.

마케팅에서도, 처음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최초상기도(Top Of Mind)

소비자가 여러가지 경쟁 브랜드 중 맨 처음 떠올리는 브랜드를 말한다. 시장점유율을 추정할 수 있는 브랜드 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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