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 Learner로서 여정(2)

엔지니어로서 깊이에 도달하는 시간

by 와이키키

퇴근 후, 맥주 한 잔 들이키며 의식의 흐름대로 적었내려갔던 첫 번째 에세이와는 달리, 두번째 글을 다시 쓰고 있는 지금은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흘렀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 불완전한 이력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용기내어 시작한 이 커리어 여정의 일부인 대학원 과정을 익명의 동지들과 나누고자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미뤄오다 글을 고치는 지금 이 순간, 대학원은 이미 졸업했고, 아득한 추억거리가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지금까지 평범한 나를 다시 한번 배움의 길로 인도했을까?' 라는 자문을 해보면, 꿈이나 학습의지 같은 고상한 당위보다는 솔직히 '주변의 시선'이 가장 큰 동기였다. 물론 깊이 있는 전문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는 대의명분도 있었지만, 사실 배움의 출발선은 비교에서 비롯된 열등감, 그리고 나도 뭔가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가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요즘은 다양한 스탯을 장착한 이력의 소유자가 유튜브만 켜도 쏟아지지만, 실상 내 주변은 나처럼 평범하게 대학 학부를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한 선후배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일까, 유독 취업시즌 나의 능력을 말없이 드러내는 건 결국 학부시절 대학교 간판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런데,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우연히 본 봄 학기 졸업영상에서 '미국에는 학령인구 내 2~3% 박사가 있는 반면, 30%의 석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누구나 세상살이 똑같지 않다지만, 잠시동안 깊은 성취감에 빠져있던 나는 '객관적으로 세상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나보다 빠른 길을 걷고 있구나'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초반 서사가 좀 길었지만, 나는 기계 엔지니어이다. 이 말 안에 다양한 직업군이 스쳐지나가지만,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때 가장 편한 표현이 바로 엔지니어라는 단어인것 같다. 어떤 엔지니어 선배는 본인을 '노가다'라 자조하기도 했다. 때로은 겸손의 모습일 수 있지만, 업(業)에 대한 자존감을 격하하는 표현이기도 하여 아쉬웠다. 겉으로는 웃어 넘겼지만, 속으론, 그런 사람에게 과연 전문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명함을 건넬 때마다 스스로 묻게 된다. '지금의 나는, 진정 떳떳한 엔지니어인가?'

말단 사원 시절, 선배들 앞에서 '엔지니어입니다.'라고 소개하면, 항상 부끄럼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흔 줄을 넘긴 지금은, 낯짝도 제법 두꺼워졌는지 아무렇지않게 은근히 자랑을 곁들이며 나를 소개한다. 아마도 이런 뻔뻔함의 원천이 바로 학습 효과의 결과라고 생각해 본다.

어학연수 시절 주말마다 삼삼오오 모여 포커 게임을 할때도 좋은 패를 가지고 있으면 자신감이 충천하는 눈빛에 번번히 수를 읽히던 내 성향상, 스스로에게 낯부끄러운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너무 수치스러워한 나머지 학습을 해서라도 만회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강했던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정도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추어야 자칭 엔지니어라는 내가 누구에게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구나 목표를 이루면 찰나의 성취감보다 그 여정에 자체에 더 큰 스스로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가장 안타까운 건, 이런 뿌듯함은 누구와 공유하기 힘든 오롯이 나만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나보다 훨씬 전에 고생고생하며 많은 성취를 한 사람들은 잘 이해할 수 있을테지만, 적어도 내 주변의 대다수 사람들은 '왜 저런 생고생을 할까'하는 측은한 시선이 적지 않았다.


지난 날을 돌아보면, 난 현재의 자리까지 오기까지 지름길 없이 구비구비 흙길을 돌아왔다고 생각이 들때가 있다. 소위 사내 정치에 무지하고, 근거없이 듣기 좋은 말은 못하는 성격 탓도 있겠지만, 본질은 아마도 신규 부서 발령 때나 프로젝트를 새로 들어갈 때 나를 평가하는 직책자 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실력으로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시간이 필요해서라고 생각한다. 사실 간단한 메일 한 줄, 보고서의 문장 하나하나에도 부단히 '나는 이렇게 괜찮은 사람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아왔다. 상대는 그걸 못 알아볼 수도,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나는 늘 '일의 언어'라는 표현으로 증명해왔다.


그렇다.

깊이에 대한 증명은 대부분 주변의 인정에서 온다. 그걸 깨닫는 것은 쉽지만, 막상 실력으로 인정받는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자요지(知者要知)라는 말이 있다. 아는 자는 아는 자를 알아본다.

사실 상대 내공의 깊이를 이해하려면, 본인도 그 깊이 못지 않은 내공을 가져야 한다. 물론 전제는 내가 '아는 자'인지에 대한 확신도 결국 내 기준이라는 것인데, 이는 막연한 내 생각이나 바램일 수도 있겠다.


얼마전 캠핑을 하며, 와인 한잔과 밤하늘의 별들 아래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왜 사람들은 내 가치를 빨리 알아보지 못할까?'라는 푸념을 한 적이 있다. 새롭게 발령 받을 때마다 소위 듣보잡에서 높은 고과를 받을 때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내가 진정한 깊이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Senior들에 대한 불만이라기 보다는 명문대 학부 간판으로 포장한 일부 선후배들이 손쉽게 검증필 스탬핑을 받으며, 특혜를 받고 있다는 혼자만의 가정에서 온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얄팍한 감정에서 오는 질투심이었을 것이다. 사실 직책자 평가는 차치하고, 업무를 하면서 만나는 프로젝트 이해관계자들은 가까운 동료를 제외하곤 개인정보를 잘 모르고 평가하기 때문에 비교적 객관적인 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와서, 글을 쓰는 와중에도 엔지니어로서의 깊이에 대한 물음에 스스로 갸웃거린다.

굳이 표면적인 학력이나 경력이 아닌 철학적으로 이 물음을 마주한다면, 자기애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화자찬으로 가득한 니체의 자서전인 '이 사람을 보라'가 떠오른다. 내가 바로 운명 그 자체이고, 내가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인지를 마치 자랑하듯 책 안에 구구절절히 나열하고 있는데, 이것은 결국 허영심이나 주변을 의식해서 나오는 자만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자존감, 자부심이다.

또한,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배움'으로 그 공백을 메워왔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스스로에게조차 당당하려 애쓰며 걸어가고 있다. 그 길 끝에서야, 비로소 나의 '깊이'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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