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통찰(1)
보통 건설(특히 기술기반) 프로젝트를 할 때 이해관계자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같이 투자하는 파트너링 회사 뿐만 아니라 정부기관, 해당 지역 원주민, 노조나 환경단체 등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소통해야 할 주체는 개인부터 단체까지 상당히 다양하다. 더구나 이들은 아군 적군 구별 없이 유사 프로젝트의 이해관계자로 둔갑하기도 하여, 그야말로 상호 얽히고설킨 생태계를 이룬다. 특히 정부는 투자자, 허가권자, 집행권자 등 여러가지 가면을 쓰고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이 중 탈탄소 산업의 경우 수익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적합한 실행환경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CCS는 지질학적으로 CO2가 주입가능한 저장층이 필요하고, 그린 수소 생산에는 재생전력 공급이 적합한 환경이 수반되어야 한다. 재생전력의 경우 수력이나 지열같이 상시 전력생산 가능한 곳은 극히 제한적이고, 낮에만 생산되는 태양광은 간헐성을 만회하고자 풍력과 병렬 배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바람이 강하고, 일사량이 풍부한 지역일수록, 인프라가 열악한 곳이 대부분이다. 또한, 탈탄소 설비의 Off-taker이자 그린 산업으로 연계되는 제조업은 항만이나 Outsourcing, 원료공급망 등 기반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모든 필요조건을 충족하는 완벽한 장소는 극히 드물다.
그래도, 그린 프로젝트의 파이어니어들은, 생태계 내 이해관계가 맞는 조직끼리 거버넌스를 이루며, 마치 공유지의 비극을 떠올리듯 적합한 장소를 선점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환경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증명된 수소나 CCS 같은 직접적인 탈탄소 프로젝트와 그에 기반한 제조업은 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부침을 겪고 있다. 결국 정치에 의한 정책과 제재를 창과 방패로 휘두르는 다중심적 이해관계자이자 메타-거버넌스인 정부의 개입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 정치인들이 그린산업은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기존 규제를 완화하면, 스스로 생존하기 힘든 그린 프로젝트는 아무리 기반 환경이 갖춰져도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녹색 물결을 확대하는 진보주의자들이 화석연료 사용을 금지하면, 그린 에너지를 활용하는 제조업의 Opex 체계는 곧 무너지고 말 것이다.
결국, 이 복잡한 다자 이해관계 구조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에 대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롬은 공유지의 비극을 다층적 거버넌스와 다중심성 정책 등으로 극복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녀가 말하는 메타 거버넌스 또한 초국가적 조직과 유사한 면은 있으나, 직접적인 강제보다는 제도설계자나 조정자에 가깝고, 이는 결국 정치로 풀어나가야 할 난제이다. 양당 연합정치가 일반적인 현대사회에서 극단의 정치적 대립상황은 다수 연출되고, 굵직한 토목사업을 지역개발 공약으로 걸고나서, 타당성 확보에 실패하거나, 국가 탄소 배출량이 정책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어들며, 그나마 적합한 환경에서도 기술은 정치의 흐름에 좌우된다. 기술과 정치는 치킨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는 기술의 나침반이자 속도를 조절하는 손이다. 그러나, 이 복잡한 생태계에서, 눈앞의 이해관계자가 먹잇감인지 천적인지 비추는 횃불은 결국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