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헨님 Mar 08. 2020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음식 사진을 하나도 찍지 않았다.

사랑만 넘쳤던 어설픈 프렌치 디너 체험

미슐랭에서 몇 년 연속 무슨 등급을 받았다는 2층짜리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서비스 디쉬를 받지 못한 테이블은 우리뿐이었다. 오가는 말들이 다 들릴 정도로 가까운 옆 테이블 일행들에게도, 목소리가 아주 아주 커서 소주방에나 어울릴 법한 어르신들께도 셰프가 직접 나와 인사를 하는 걸 봤다. 우리는 메뉴판을 몇 번이고 읽어 보고서 서툴게 음식을 골랐다.


“프렌치 레스토랑은 처음이네요.”

“아, 저도.”

“네, 저도예요.”  


조금도 우아하지 않은 여자 매니저가 주문을 받았다. 내가 오너라면 직원을 좀 더 섬세하게 배치할 텐데. 플레이팅이랑 음식 맛은 꽤 만족했지만 말이다.

“애피타이저 하나 고르시고, 메인에서 하나씩 고르시고요. 여기 추가 금액 적힌 것 시키시면, 코스 가격에서 추가되시고요. 그리고 디저트도 하나 고르면 되시고요.”


파리를 매년 윈터-솔드 시즌에 그렇게 다녀왔어도, 세련된 식문화는 깊이 경험해 보지 못했다. 어니언 수프나 달팽이 전채 요리 같은 건 좀 먹어봤지, 느긋한 고메 보다 양손이 무거운 쇼퍼가 될 수밖에 없는 단기 여행자라서. 레스토랑에 앉아 지불해야 할 유로를 계산해 보면, 백화점에서 본 마르니의 캐시미어가 어른거렸다. 무려 80% 세일. 가격표엔 초록색 스티커가 붙었고, 몇 번이나 가로줄이 그어지며 줄어든 금액이 적혀 있다.  


 “윤아, 우리 그냥 대충 때우고 라파예트 한번 더 가보면 안 될까. 난 바게트에 애쉬레 발라 먹는 게 더 좋거든.”

그게 스마트하다고 생각했는데.

셀린느를 들고 메뉴 주문 하나 능숙하게 못하는 내가 훨씬 더 ‘안’ 우아했다!


My loving city <3



뭘 해도 예쁜 내 사람들

그치만 한참 주문을 망설이고 있어도 우리 중 누구도 비꼬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함께 똑같이 어설픈데. 그게 하나도 안 부끄럽고 조금도 안 실망한 건 놀랄 일이다. 난 사람에게 쉽게 지루해하는 타입이라, ‘와, 진짜 매력 없다’ 싶으면 속으로 딱 마음을 정리한다. 대안 없는 어리광, 거슬리는 툴툴거림, 지저분한 습관, 조악한 소품을 보면 ‘너랑은 여기까지만’ 한다. 치하의 말들만 나오는 분들이랑도 몸이 하나라 매일 못 보거든요. 근데 이 모임은, ‘뭘 해도 그대들이 좋아’ 모드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연말정산이 대박이거든. 이번에.”

계산할 수 있는 단단한 핑계가 있었다. 깊이 아끼고, 자꾸 묻고 싶고 계속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 그건 내가 아는 ‘가장 기분 좋게 돈을 써 버리는 법’ 중 하나이므로.



이 모임이 지속되는 이유

우리가 함께 일했던 날들에 관해 몇 번이고 되돌아 이야기한다. 끈질긴 집중력에, 조금 더 더 좋은 게 있을 것 같다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들이라 이게 딱 좋네, 싶은 만족을 간단히 내보이지 않았었다. 완전 완전 옛날의 영화 제목을 말하며, 그런 무드를 만들어 보자 어릿어릿 얘기해도 누군가가 꼭 명랑하게 호응했다. 살짝 더 선명한 비유를 딱 얹어가지고! 그러면 우리는 진짜 금세 달아올랐다. (흥분, 흥분) ‘역시 아시네요! 아, 그거 너무 좋잖아요, 저 포스터도 있는데.’ 그중 나이가 제일 어린 내가 가장 얕다. 심하게 리스펙할 수밖에 없는 분들, 나는 매번 모임마다 끙끙 앓기 직전까지 몸에 힘이 들어가고야 만다.


달팽이 요리랑 무슨 샐러드랑 타르타르가 치워진 후에, 와인에 졸인 양고기랑 대구 요리, 트러플 소스 같은 걸 잔뜩 먹었다. 아이스크림이 나왔고 커피가 준비되었다. 우리는 각자 앞에 둔 커피잔에 대해서도 한참을 떠드는 사람들이었다. 이거 요즘 유행하는 거라고, 잔을 빙글빙글 돌리다 보면 동물 얼굴이 딱 보인다고 말하자 나머지 둘이 깜짝 감탄했고.

“안 그래도 요즘 식기가 너무 좋은 거 있죠.”

“어머, 곧 결혼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 그렇다고 결혼하는 건 좀 아니고.”

또 실없이 이어지는 다정한 말들. 이 모임이 지나간 뒤 몇 주가 흘렀는데도, 오고 간 대화가 마음에 꾹꾹 남아있다.


다음날 출근 때문에 이만, 이라는 말을 아무도 먼저 하지 않다가 열두 시가 다 되어서야 헤어졌다. 그날 잠자리에 누운 나는 또 대책 없이 사랑하는 마음을 남겼는데, 언제나 그랬듯 늘 기분 좋은 자극이 된다는 말들이 돌아왔다.


그 집 맛있었어?

다음 날 남자친구가 물었을 때,

너무 맛있더라.

라고 대답했을 뿐이지만.

미슐랭 레스토랑에 다녀왔다고 음식 사진을 찍어 올리거나 그럴듯한 품평을 남기지 않고도, 올해 제일 자랑하고 싶은 저녁식사였단 것. 진짜 맞다.



매거진의 이전글 팀장님과 나의 간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