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묘 Oct 01. 2022

식당 맞은편에 독수리가 앉아
나를 노려보는 나라

인도 뉴델리

우리는 한 핏줄이야, 너하고 나는.
<정글북> 러디어드 키플링

여행 마지막 날이다.

늦게 일어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포근한 이불. 부드러운 타월. 

인도에서 처음으로 침낭을 펼치지 않은 밤이었다.

체크 아웃 시간에 맞추어 호텔에 가방을 맡기고 여행자 거리로 향했다.

빠하르간지 가는 길이 쉬워졌다. 10분 남짓.

델리 역으로 향하는 복잡한 길을 걷다가 가장 번화한 오른쪽 길에 들어서면 된다.

빠하르간지는 인도 여행자 거리답다.

론니 플래닛은 '태국의 카오산보다 형편없고 포카라보다 복잡하다'라고.

누구는 '꼭 폭탄 맞은 것 같다'라고 했지만. 

난 기대를 안 해서인지 예전 동대문이나 남대문을 떠올렸다


좁은 샘스 카페 1층에 앉아 블랙퍼스트를 기다렸다.

위에서 내려오는 서양 손님들이 보였다.

TV 뒤로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 방과 복도들을 지나서 양철 계단을 오르니 

초록 식물들이 가득한 옥상 테라스 식당이 나왔다.

어제 일행이었던 윤완과 상오와 찾았던 곳이었다. 

우리는 1층만 보고 분위기가 별로라 다른 바로 갔다.

다른 바에서 실수로 맥주잔을 깼고 아까운 맥주를 한가득 쏟았었지.

카페 조식은 걸쭉한 파인애플 주스와 블랙커피. 

커다란 크로와상과 한국식 감자볶음. 그리고 접시 한 구석에 잼과 버터가 있었다.

푸짐한 양에 기분이 좋았지만, 빵은 속이 꽉 찬 밀가루 맛이라.

딸기잼도 불량 식품이 떠오르는 새빨간 색소여서 빵에 바를 때마다 망설여졌다.

그래도 가격을 생각하면 만족.

점심 내내 카페에서 빈둥거리다가 마지막 뉴델리 관광에 나섰다.

빠하르간지에서 레드 포트까지 뚝뚝들이 100루피를 불렀다. 

난 50루피라고 우기고. 

한 뚝뚝이 50에 가는 뚝뚝을 찾는다면 날 공짜로 태워주겠다는 악담을 하고 떠났다.

꽤 가여워 보이는 릭샤꾼에게 다가갔다. 

50에 가겠냐고 물었더니 타란다.

릭샤꾼은 가는 길을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델리 메트로 역에 와서는 돈을 더 달라고 했다. 제스처로. 더 안 주면 안 가겠단다.

릭샤꾼들이 먼 길은 모르고 영어도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또 이용하다니.

100루피를 줄 거면 뚝뚝을 탔지. 난 안된다며 내렸다. 

릭샤꾼 원래 얘기했던 50루피를 달라며 내 머플러를 잡고 늘어졌다.

메트로에서 숙소까지 20루피에 이용했던 터라 난 손가락 두 개를 폈다.

그때부터 릭샤꾼과 내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델리 메트로 역 입구에서. 

사람과 차와 장사꾼들이 가득한 거리 한 복판에서.

릭샤꾼은 내 머플러를 잡고 못 가게 쫓아다녔고. 난 안된다며 피했다.

한 뚝뚝이 기사가 궁금해하자 릭샤꾼이 일렀다.

기사가 날 가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기 뚝뚝에 태우고 싶었으니까.

기사에게 50루피를 보이며 체인지를 물으니 잔돈이 없다고 했다.

근처 생과일주스 가게에 잔돈을 바꿔달랬더니 주인 표정이 나빴다.

뚝뚝 기사가 옆에서 바꿔주라고 맞장구를 치자 할 수 없이 바꿔주었다. 

거의 돈을 던졌다.

몇 번을 피하는 릭샤꾼의 가슴 주머니에 20루피를 넣어주고 얼른 자리를 떴다. 

메트로 앞이라 지하철을 타고 레드 포트에 갔다.


맥도널드가 보였다. 

오레오 아이스크림을 한 컵 시켜 더위와 스트레스를 풀었다.

아이스크림 가격이 50루피. 릭샤꾼에게 준 가격은 20루피.

다시 씁쓸해졌다.

난 릭샤꾼에게 준 돈보다 2배는 비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오르막을 오르는 릭샤꾼의 새까만 뒤통수에 점점이 맺혀 있던 땀방울들이 떠올랐다.

게다가 레드 포트까지 생각보다 멀었다. 

어쩌란 말인가. 난 이 모양이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거리인 걸.

나를 보았다. 평범하고 나약하고 이기적인 나를.


처음 인도는 불규칙했다. 황당했고.

시간이 지나자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구나라고 느꼈다.

옥상과 마당에 꽃이 있고. 

하늘에는 새가 가득하고, 나비가 날고, 소가 길에 똥을 싸고.

개가 밤마다 영역 싸움을 하고. 

식당 맞은편에 독수리가 앉아 나를 노려보는 나라다.

동물을 사랑해서 채식주의자가 많고 

그래서인지 기차역마다 쥐가 들끊는. 

이 나라 사람들이 궁금해 죽겠다.

비행기에서 와인을 마셔야지.

라운지에서 배 터지게 먹어야지.

돌아가면서 하는 생각. 여행자의 뇌구조다.

공항에서 아직 200페이지도 넘게 남은 책 <작은 것들의 신>을 읽을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여행을 떠나면서 설레는 모든 사람들에게 샘이 난다. 

여행이 일상이 된다는 건 슬픈 일이다.

가슴 뛰게 하던 일이 집에서 보내는 하루와 다를 바 없다니.

내가 사랑하는 걸 하나 잃은 듯 서운하고 허전했다.

여행을 쉬어야겠다고 잠시 생각해 본다.

두근거리지 않는 여행을.

게다가 힘들다. 몸이.

나이 때문인가 어려운 나라이기 때문인가 뭐 이런 생각을 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이번 여행이 어떤 여행보다 생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만큼 얻은 수확인가?

다시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무척 외로운 밤이 많았지만 그 덕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

이전 05화 인도에서 이불을 샀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