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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Jul 27. 2023

그 놈의 담배 타임

담배는 다 같이 안 피우면 혹시 죽니?

회사에 앉아 있다 보면 하루에 최소 세 번 이상 남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바로 담배 타임이다.

보통 아침에 출근 후 가방 내려놓고 일 좀 보다가 브런치 타임 즈음에 한 번, 점심 먹고는 무조건 식후땡 한 번, 오후 3-4시쯤 졸리다고 한 번, 오후 미팅이라도 있으면 미팅 끝나고 고생했다고 한 번.

담배 한 번 피우러 나가는 데 웬 핑계가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희한하게도 내가 다니는 회사만 이런 건지 여자 직원들은 대놓고 흡연하는 것이 터부시 되는 문화다.

실례로 여성 신입사원 한 명이 뭣도 모르고 회사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인사팀에게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

본인들도 부끄러운 짓인 것은 아는지 당시 교육 담당이던 나를 호출하여 여성이 대놓고 담배를 피우면 조직 문화와 분위기상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선배로서 조용히 불러서 타이르라고 권면했다.

너무나 부당한 처사지만 실제로 이 회사에서 담배 피우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그에 따른 불이익이 얼마나 심한지 몸소 깨닫고 있던 터라 그 후배를 불러 네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회사 분위기가 이러하니 알려는 주는 것이 도리인 것 같다 어쩌고 저쩌고 장황한 변명을 늘어 놓으며 진땀을 뺐던 기억이 있다.

맨입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미안하고 민망해서 불러서 차 한 잔 사주면서 대화했는데 그걸 가지고 업무 시간에 커피 마신다고 한 소리 들었던 기억도.


근무 시간에 한 번 나갈 때마다 최소 20분씩, 몇 번이고 자리를 이탈하는 흡연 문화에 대해선 그토록 관대하면서 여성 직원들이 어쩌다 구내 매점에서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있으면 업무 중 땡땡이를 친다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이 쌍팔년도 조직문화에도 이제 지칠 대로 지쳤다.

담배나 커피나 똑같은 기호 식품인데 왜 담배는 되고 커피는 안되는지, 아니지 왜 남자들의 담배는 되고 여자들의 담배는 안되는지 정말 묻고 싶다.


담배 타임의 진짜 문제점은 사실 따로 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은밀하게 이루어 지는 정보 교환과 대가성 청탁.

담배를 피우면서 조직 개편을 구상하고 인사 이동을 논하고 친분을 다진다.

그들만의 끽연 리그에 여성은 끼워 주지 않으며 유리 천장을 더욱 굳건히 하니 정보의 비대칭성은 커져만 간다.

타 부서와 협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고생하다가 팀장님께 털어 놓았더니 망설임 없이 수화기를 집어들고 타 팀 팀장에게 '담배 한 대 하시죠' 라고 말하고는 의기양양하게 걸어 나가던 우리 팀장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실제로 그렇게 나가서 해결하고 돌아온 케이스가 부지기수다.

업무를 논하는데 이메일과 논리로 되지 않던 것이 담배 타임 한 번에 해결되다니 이걸 고마워 해야할지 허탈해 하는 게 맞을지 나조차 헷갈린다.


오늘은 비흡연자인 우리 팀 어떤 과장이 미팅을 마치고 돌아와선 거들먹 거리며 "담배 한 대 하러 가시죠" 라며 팀장을 비롯한 흡연자 무리를 이끌고 나갔다.

비흡연자 주제에 매번 담배 피우러 나가자며 사람들을 끌고 나가서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사람 험담을 하거나 자기 어필을 하는 아주 꼴보기 싫은 하남자다.

한편 참 애쓴다 싶기도 하다.

친목 도모는 하고 싶고 가진 재주는 없고 심지어 흡연도 안하니 저렇게라도 용을 쓴다 싶어 애잔하기도 하다.


그래도 싫다.

아니꼽고 재수 없다.

흡연 자체를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업무 시간에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혹은 집중해서 남들보다 빨리 일을 끝마쳤을 때 나가서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리프레쉬 하다 오는 걸 사실 나는 권장하고 찬성하는 편이다.

문제는 왜 담배를 매번 우르르 몰려 나가서 피워야 하냐는 거다.

정말 그놈의 담배는 혼자 피우면 혹시 죽는 건가?

담배 피우다 죽은 사람들은 폐암 따위가 아니라 혹시 혼자 피워서 죽은 거니?

그런 거면 인정해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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