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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Oct 25. 2022

미움받을 용기 따윈 없어!

"정말 열받아서 못해먹겠네!"


앞 자리 과장님이 책상을 탕 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조용한 사무실이 웅성대고 저마다 무슨 일이냐며 사내 메신저가 바빴다.

과장님은 반차를 썼다고 한다.

워낙 감정 기복이 심하고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분이라 그러려니 하고 업무에 몰두했다.

요즘 들어 맡은 업무 영역이 계속 넓어져 일이 많다.


한참을 일하고 있는데 팀장님께 메시지가 왔다.

면담 요청이다.

매점에 가 과일 주스를 먹자는 말씀에 따라 나서며 마음이 복잡했다.

깡마르고 유능한 팀장님은 평소 군것질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다.

내게 하실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대체 뭘까?


생각지도 못한 얘기였다.

무단 조퇴를 한 과장님의 조퇴 사유가 다름 아닌 나란다.

싸운 적도 없고 오늘은 서로 바빠 대화를 나눈 것도 손에 꼽히는 데다 과장님이 뛰쳐 나갈 때는 심지어 내가 보고 때문에 이석 중이었던 터라 전혀 짚이는 데가 없어 팀장님께 이유를 여쭈었다.


"그러게 나도 모르겠다. 그냥 너때문에 그동안 쌓인 게 많고 니가 자기를 무시했다는데..."


팀장님도 짐작 못하실 만큼 나는 그 과장님께 실례를 범한 적이 없다.

사실 올해 초 이 팀으로 복직한 뒤 나는 그 과장님의 성향을 꽤나 빨리 파악했다.

욕심이 많고 열정만큼의 열등감을 갖고 있으며 속이 좁고 인정 욕구가 강한 성향.

그래서 나는 다른 팀원들을 대할 때보다 그를 마주할 때 더욱 말투나 태도에 신경을 써 왔던 차다.

트러블을 일으키기 싫었고 모두가 즐겁게 일하는 직장이 내가 꿈꾸는 일터의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것이 없다.

팀장님과 삼십 분 가량 이런 저런 추리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그냥 존재 자체로 미운 사람이 있다는 것.

경쟁심 강한 그가  살이나 어린 나와 같은 직급인 데다  업계에 오래 몸담은 본인보다 이제  합류한 내가 두각을 나타내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는 .

그리고 아마도 진급을 두고 고과와 평판을 다퉈야 하는 나에게 본인이 밀리는 것 같자 평가 시즌이 되니 극에 달한 불안감과 약간의 쇼맨십이 더해져 오늘의 무단조퇴에 이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이런 상황 처음도 아니지 않아?"


상처 받지 말라며 던진 팀장님의 위로가 비수가 되어 마음에 꽂혔다.

그래, 생각해 보면 나에겐 이런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미운 사람.

그런데 심지어 가만히 있지도 않는 튀는 사람.


많은 일을 겪으며 내 탓과 자기반성이 디폴트가 된 나인지라 물론 제일 처음은 나를 돌아보는 걸로 시작했다.

악의가 없었지만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받았을 수도 있지,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 그에게 피해가 되었을 수 있지.

그런데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그가 어떤 타입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시작한 관계라 나는 그가 싫어하거나 경계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해 왔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토록 싫다면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그의 문제다.

나의 존재 자체가 눈엣가시라면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은 그의 인생에서 사라져 주는 것 뿐이다.


팀장님의 부탁으로 내일 그와 대화를 나눠 볼 예정이다.

어차피 무슨 대화가 오갈지는 뻔하다.

그래도 일단 듣고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게 있다면 맞춰줄 요량이다.

그러나 만약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저 내가 같은 팀에 존재함으로써 그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면 둘 중 하나는 이동을 해야겠지?

너무 잘난 것도 힘들다! 라며 애써 괜찮은 척을 해보지만 이유 없는 견제와 방향 잃은 비난에 이제는 너무 지쳤다.


미움 받을 용기 따위? 개나 주라지.

이 세상 그 누구도 미움 받기 위해 태어난 자 없으며 용기까지 내어 극복할 만큼 미움은 가치 있지 못하다.

애써 끊었던 혼술을 이런 허접한 이유로 시작하다니, 분하고 허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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