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콜렛 도넛® / 똑똑한 것보다 친절한 것이 더 어렵다.
루 디 : 이름이 머야?
마르코 : 마르코.
루 디 : 안녕, 마르코 난 루디야
https// : 타인에게 대하는 태도는 내가 대우받기 바라는 태도. "안녕. 나야!" com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평생 차별과 멸시을 받고 살아온 사람이 존재한다. 그 사람의 이름을 루디.
루디가 마르코를 처음 만나 마르코에게 인사를 건네는 말이다. 루디는 그 사람의 키에 맞추어 시선에서 낮추고 눈을 맞추고 마르코를 자신과 똑같은 한 사람의 인격체 로서 대해준다. 루디는 그 누구보다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받아왔고 그 고통을 알기에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대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가 살아온 과거만 본다면 현재 그가 어떻게 친절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가장 강해보이는 사람이 가장 연약한 사람이었다. 나의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은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실패해본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멸시를 받는 사람이 가장 상냥한 사람이 많았다. 과정의 아픔을 더 많이 느껴본 사람이 타인의 감정을 더 가까이 느낀다. 타인의 고통에서 자신의 고통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타인을 대할때 너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 ?
친절할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라기보다 타인을 대하는 법을 배워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인것 같다. 우리는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제대로 배운적이 없다. 도덕책에서 나오는 지식은 이성적 논리를 이해한 것일뿐 감정적 마음을 느껴본적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심리학 실험. 참가자들은 A라는 건물에서 출발하여 B라는 건물까지 도착하여 발표를 시킨다. B건물로 가는 길에 사람이 쓰려져 있다. 어떤 이는 도와 주고 어떤 이는 그냥 지나간다. 어떤 사람은 도와주고 어떤 사람은 도와주지 않을까 ? 왜 이런 결과가 일어나는 걸까 ? 이유는 이랬다. 발표시간은 2시였고 한 그룹은 20전에 출발시키고 한 그룹은 1분전에 출발시켰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구분짓은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다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가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본성은 선과 악.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없고 선악은 사람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 바쁘다. 세상에 나쁜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잘못을 추궁할 땐 조심해야 할 게 있어. 사람을 미워하면 안 돼. 잘못이 가려지니까.
잘못을 보려면 인간을 치워 버려. 그래야 추궁하고 솔직한 답을 얻을 수가 있다. 「 미생. 2014 」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철학자 라깡의 말이다. 성공하려면 성공한 곁으로 가라. 성공하고 싶다면 성공한 사람의 하루를 매일 지켜봐라. 인간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에 영향을 받고 가장 많이 보는 것을 따라하려는 심리가 있다. 인간은 누군가를 동경하는 순간 그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나는 오늘 한 사람을 통해 타인을 대할때 조차 우아함을 지니면서 섬세하고 동시에 따스한 감정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의 상냥하고 칠절한 태도를 가지고 싶었고 그에게서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동시에 배울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를 여기에 심는다. 그의 우아함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순간을 더 많은 사람들이 마주하기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동등한 존재이다. 다르다.는건 틀리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는 모두 다르지 않았다. 타인을 눈을 보면 그 눈동자속에 내가 비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안녕. 나야!" 그는 말한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내가 대우받기를 바라는 태도이다. 삶의 질은 모두 관계로 이어진다. 관계의 기술은 성공의 기술보다 가치가 있으며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똑똑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과 친절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어떤 것이 더 의미가 있을까 ?!
그러하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 의문이 아니다. 질문이다. 의문은 삶의 수준이 결정하고 질문은 삶 자체를 바꾼다. 어떤 사람은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에게 질문을 던진다.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담배 애호가셨다. "담배 한 모금은 수명의 몇분과 같습니다." 라디오에서는 공익광고가 흘러나왔다. "할머니가 지금 핀 담배로 얼마나 수명이 줄었을까 ?" 10살짜리 아이는 자신의 영리함을 표출하고 싶어했다. 자랑스럽게 할머니 수명이 얼마나 줄었는지 말했다. "이런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군." 할머니의 눈물을 보고 나서야 뒤늦게 자신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차를 세우고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이런. 할아버지께 크게 혼나겠구나." 하지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배려해서 거리를 두려고 아이를 데리고 나갔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언젠가 알게 될 거란다. 똑똑한 것보다 친절한 것이 더 어렵다는 걸 말이다." 그 아이의 이름은 제프 베조스<아마존의 창립자>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