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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Oct 08. 2020

공감도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경험하는 행위다.
<공감의 배신> 31p


과연 우리는 역지사지로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건 바로 인지적 공감과 정서적 공감이다. 이런 두 상태에서 전혀 다른 뇌 과정을 거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지금까지 정서적 공감으로 타인이 느끼는 감정에 이입하고, 어떤 상태인지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가끔은 전혀 감정 이입을 하지 못해 감정 불구자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인지적 공감도 중요한 요소라는 내용에 눈길이 사로잡혔다. 공감은 타인이 경험한 내용을 경청하며 상상을 통해 사고의 틀을 확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단지 '공감'이라는 행위만이 도덕의 원천은 아니라고 말한다.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드는 데 필요한 덕목은 도덕과 윤리 의식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행동을 유도하는 요소는 공감이 아니어도 가능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우리는 흔히 존중, 배려, 연민, 염려와 같은 단어를 합쳐 공감으로 이해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공감과 연민은 전혀 다른 감정이라고 말하며 분리하여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일상적인 관계에서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하려면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것보다 자제력과 사고력을 발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특정인에 대한 공감보다는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공감의 배신> 53p


무조건 친밀한 관계에서 동조하는 공감보다 적절한 재사고 과정이 수반된다면 대화를 나누는 그 당시에는 약간의 기분이 상할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감정에 너무 깊게 이입하다 보면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없고, 서로 동조하는 과정에서 슬픔과 우울한 기분은 본인의 생활에도 심각히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인지적 공감만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충분히 경청하고 몰입하는 정서적 공감도 수반되어야 한다. 아무리 순수한 동기라도 타인에게 필요한 내용을 언급하지 못하고, 감정에만 몰입한다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짐작하기 어렵다. 공감은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공감을 변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강렬한 감정에는 긍정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두려움, 분노, 복수심도 함께 한다. 인종차별이라는 편견에서 발생하는 공감은 분노와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옹호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 사이에는 괴리감이 느껴지고 서로 혐오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분노와 혐오는 시위와 정치 정책에 압력을 가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물론 부정적인 감정의 공감이 무조건 나쁜 결과를 초래하진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공감을 토대로 긍정적인 효과를 도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모두 편향을 내면에 품고 있다. 물론 이성도 편향될 수 있지만 말이다. 인간은 알다시피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을 보다 적절히 활용하면 도덕적 통찰에 이를 확률이 높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당장 즐거운 쇼핑과 맛집을 찾아 욕구를 만족시키는 행위보다 머나먼 이역만리에서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돕겠다는 판단도 내릴 수 있다.



공감은 정책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만약 지금 죽어가는 저 아이가 당신 자식이라면 어떨 것 같으세요?
<공감의 배신> 85p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이 되어보면 뉴스에서 보도되는 아이들과 관련된 사건에 집중하고 감정이입한다. 자선단체에서는 이렇게 사람의 공감을 유도한다. '플레이 펌프'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기부금을 확보한 자선 단체 사업이 있었다.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온갖 질병에 노출되는 아이들의 괴로움을 공감하고 유명 인사도 참여한 사업은 실패했다.


의도는 매우 선했지만, 사업 구상은 한낱 상상에 불과했고,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막대한 비용을 사용했음에도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하루 종일 일하고 집으로 돌아온 여성의 추가 노동으로 이어지는 악영향을 주고 말았다. '플레이 펌프'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행복한 얼굴로 놀고 있을 뿐인데 마음에 깨끗한 물이 공급된다는 발상에 도취된 사업이었다.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고, 정책과 사업에서 공감이 불러오는 악영향의 대표 사례가 되었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친사회적 관심이 내면에 생성되면 친절한 행동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우리는 이처럼 어떤 사람의 처지에 공감하면, 그 사람에 더 친절하게 대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단순한 곳이라면 공감은 흔들림 없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인간이 사는 세상은 해결해야 할 딜레마가 하나뿐이고, 그 사람을 돕는 행위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플레이 펌프' 사업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유도하는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공감에는 스포트라이트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공감에 의존했다가 비뚤어진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절대로 지지하지 않을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공감의 배신> 124p


저자의 말을 오해하면 안 된다. 기부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기부를 하되 결과를 내다보면서 현명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스포트라이트라는 속성을 가진 공감 이면을 볼 수 있는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일본과 아이티에서 발생한 대지진 재난이다. 둘 다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고, 아이티에서 일본보다 10배가 넘는 사망자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재난 구호의 지원금은 거의 비슷했다.


지원금은 재해의 규모와 심각성이 아니라 정서적 호소력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널리 알려졌는지에 따라 분배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친밀한 관계에서도 이러한 인간의 편견은 어떻게 작용할까?



친밀한 관계에서의 공감


친밀한 관계에서는 공감을 다르게 바라보아야 한다.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찾는 과정에서 '다정함'이라는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면 망설여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친밀 관계에서도 공감의 오용은 과다 각성이라는 상태로 나타날 수 있다. '경직된 친화성'으로도 일컫는 과다 각성 상태에서는 자신의 행복보다 타인의 행복을 우선시하고 타인의 부탁에 거절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너무 깊이 몰입하여 자신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만다. '심리 테라피' 주제로 독서모임을 1년가량 지속하며 초반에 과다 각성으로 심적 고통이 상당했다. 공감의 오용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시기에 모임이 끝나면 에너지가 소진되어 피로감이 급격히 몰려왔다. <공감의 배신>에서는 이러한 위험성을 알게 해주었다.


모임의 장으로 그룹원을 보살피고 공감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로 인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친밀감을 쌓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하기도 했다. 이제는 친밀 관계에서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거울에 비추듯 감정을 똑같이 느끼려 애쓰지 않는다. 노력한다고 똑같이 느낄 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 깊게 공감하여 함께 고통과 행복감을 나누는 상황도 존재하지만, 이해와 배려, 연민의 차원에서 경청하고, 올바른 방향, 다른 관점의 제시로 인식의 틈이 발생하도록 돕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에서 사람에게 유용한 자질들을 논한다. 가장 유용한 두 가지 자질은 바로 '뛰어난 이성과 사고력' 그리고 '자제력'이다. 뛰어난 이성과 사고력이 있어야 지금 자신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이해할 수 있고, 자제력이 있어야 장기적인 결과에 집중하려고 지금 당장의 욕구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가 간과한 한 가지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수많은 사람이 연결되는 현대 사회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제는 뛰어난 이성과 사고력, 자제력만으로 미래에 어떤 결과를 불러 일으킬지 예측하기 너무나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인간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합의하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인식의 균열을 일으켜보려고 한다.




참고 도서 : 공감의 배신

저자 : 폴 블룸

출판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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