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토킹 사건으로 언론에 집중을 받았던 '김태현'을 비롯해 희대의 살인마로 불리는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은 모두 사이코패스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스토킹 사건의 범죄자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진단을 내렸지만 말이다. 사이코패스 진단을 확정 지으려면 여러 판단 기준이 있지만 '대인 공감의 부재'라는 점에는 정신의학자들도 동의한다.
그런데 대인 공감의 부재라고 해서 모두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 사이코패스와 유사한 특성을 보이는 소시오패스는 타인을 교묘히 이용하려는 속임수를 쓰지만, 폭력을 행사하여 전과자가 될 만큼 무분별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괴팍하지만 반사회적 성향을 갖지 않은 사이코패스가 주변에 존재할까? 사이코패스의 뇌를 연구하던 뇌과학자는 우연히 자신의 뇌 스캔 사진을 보며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사이코패스 뇌과학자>의 저자도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뇌 구조가 동일한 모습을 보였지만, 살인을 저지르는 반사회적 행동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그의 간증은 주변에 사이코패스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0명 중 2명의 비율로 사이코패스가 함께 살아간다.
주변에 2%의 비율로 존재하는 사이코패스는 공감을 못하지만 마음 이론이 없는 건 아니다. 즉, 사이코패스는 공감을 못해도 동정은 가능하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고통스러운 사건이 닥칠지 예측하는 능력과 그 사람을 도우려는 의지의 결합물이다. 이런 마음 이론이 왜곡되면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판단을 할지라도 범죄의 쾌락을 억누르지 못한다.
뇌과학이 발전하기 전만 해도 사이코패스라 부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적이고 불안정하며 공감을 모르고 남을 조종하는 방법에 능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뇌과학이 발전하여 PET 스캔 사진으로 대조 샘플로 어떤 뇌의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알게 되었다. 이러한 세포의 기능, 조직세포와 기관 세포 사이의 사회적 상호작용, 기관계 사이의 상호작용은 사이코패스가 날마다 타인을 이용하여 계획하고 범죄를 실행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유전자의 역할이 하나둘씩 밝혀지는 현대 과학의 발전은 남성이 왜 여성보다 많은 비율로 사이코패스가 발생하는지 알려준다. 남성은 어머니에게서 단 하나의 X 염색체를 물려받아서 저기능의 변종의 유전자를 상쇄할 다른 유전자가 없다. 반면에 여성은 X 염색체를 부모에게 모두 물려받아 상쇄할 다른 유전자가 존재한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만큼 전사 유전자의 영향을 쉽게 받지 않는다.
전사 유전자를 가질 확률은 30%라고 한다. 그래서 여성은 "30% * 30% = 9%"의 확률로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보유한다. 그런데 아직도 유전자가 사라지지 않고 인류의 역사에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이코패스라 하더라도 모두가 반사회적 특성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사이코패스 뇌과학자>의 저자 본인도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진 점에 주목해보자. 그렇지만 그는 반사회적 특성은 전혀 없다.
유전자는 행동이 바뀌면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양이 일정 비율로 바뀐다. 그래서 뇌 회로 안의 신경전달물질 균형이 변하고 결국 이는 사고, 감정, 행동으로 나타난다. 사고, 감정, 행동이 바뀌는 건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전사 유전자와 양육 문제를 이해하는 열쇠다.
대부분의 연쇄살인범은 유년 시절 지독한 학대와 치명적인 유전자 결함을 보인다. 이러한 본성과 양육의 상호작용이 없다면 아이들은 무사히 성장할 것이다. 오히려 애지중지 키우며 스트레스를 아예 없애주려는 건 무의미하다.
저자가 주장하는 사이코패스의 3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특두엽의 유별난 저기능, 전사 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보유,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 신체적, 성적 학대다. 저자는 마지막 조건인 어린 시절의 학대가 없었다. 결국 3가지가 모두 충족하지 않으면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지 않아 사이코패스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
사막의 가혹한 조건에서는 생존을 위해 협력할 필요가 있다. 폭력적인 사이코패스는 부족 내에서 추방될 수 있고, 그러면 혼자가 되어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사람들의 공격성을 제한하고 있는 건 유전이 아니라 문화라 볼 수 있다. 본성이 아닌 양육 말이다.
인간에게 거울뉴런계가 있다. 태어난 지 1년도 채 안 된 유아는 부모의 행동을 보며 그대로 습득한다. 연습도 없이 복잡한 과제를 재빨리 습득하는 이유를 거울뉴런계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거울뉴런계와 상호작용하는 회로가 공감도 유발할까? 아직까지 연구된 바로는 상세하게 알지 못하지만, 공감에 작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요소를 몇몇 영상 연구를 통해 나타났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공감의 부재를 사이코패시와 연관 짓는다. 하지만 많은 사이코패스는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
희대 살인마 유영철도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에 아들에게 걸려온 전화가 가장 무서웠다고 언급했다. 자신과 같은 인간이 태어났다며 동일시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아들도 겪는다고 생각하여 아들이 태어났다고 하던 그날 지하 주차장에서 분노를 표출했다. 자신이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았던 경험을 그대로 아들에게 물려주기 싫었던 애정이 아닐까. 물론 아들 이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냉담하고 무감각하지만 말이다.
보통 사이코패스는 내면의 분노를 다른 대상에게 돌린다. 외톨이 살인자는 자신의 집단에게는 공감하지만 타인의 삶과 안녕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사회 정의를 구현하려고 살인을 저질렀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이렇게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사이코패스는 어떻게 연쇄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까? 사람들을 조종하려면 으르렁거리면 안 된다. 지독하게 달콤해져야 한다. 연쇄살인마 강호순은 지독하게 달콤하다. 아들의 사진을 자동차의 조수석에 놓았으며 반려견과 환하게 웃으며 촬영한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거실에 비치해 두었다. 그들은 마치 공감을 하는 것처럼 가장할 줄 안다. 접근에 성공하려면 공감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건 인지적 공감, 즉 마음 이론일 뿐이다.
사이코패스 유전인자는 왜 여전히 생존할까? 인간은 호기심이 가득한 존재이면서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존재다. 그런데 사이코패스는 이러한 두려움에 떨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경향이 강하다. 전쟁에서 유일하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지 않는 사람이 바로 사이코패스다.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할 일을 앞장서서 해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충분히 전사 유전자가 생존할 확률은 높다고 판단된다.
사이코패스가 2퍼센트라는 수치는 인종을 불문하고 일정하다.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개인'이 생존에 유리한 건 분명하다. 그들은 도덕과 윤리의식에 마음의 타격을 받지 않고 일을 해나가는 모습은 일반적이지 않다. 그래서 사이코패스는 삶에서 무모함을 맛보고 싶어 하는 인간을 대신한다.
이러한 특징은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반사회적 성향이 나타나지 않은 사이코패스는 어느 정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사이코패스 뇌과학자>의 저자처럼 말이다. 결국 반사회적 특성이 발현되지 않도록 어린 시절의 양육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참고 도서 : 사이코패스 뇌과학자
저자 : 제임스 팰런
출판 : 더퀘스트
발매 :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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