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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주영 Oct 18. 2024

[소설] 22장. 재회(2)

[판타지 장편 소설] 댓플레이스 (That Place)

보육원에서 나온 희주는 어느 새 어둑어둑 해진 바닷가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82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고 <댓플레이스>로 들어간 은정에게는 이렇다 할 뾰족한 방법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그녀는 죽기 살기로 주어진 삶을 살아내고, 다른 사람의 삶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희주의 삶과는 조금 달랐다. 


그녀는 그저 살아 있기에, 마지 못해 살아가는 세월을 오랜 시간 그저 흐르도록 내버려두었다. 지겹고 힘들기만 한 이 땅에서의 삶이 빨리 지나 가기만을 바랐다. 그녀가 죽기 전, 파라스페이스가 발견되고 나서는 그 곳이 낙원일 것이라는 기대에 인간 세상에서의 삶이 더욱 의미 없게 여겨졌다. 


그러나 희주는 결국 파라스페이스, 즉 댓플레이스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후 세계의 문지기로 일하며 또 다시 도돌이표 같은 일상을 기약없이 보내야 했다. 누군가 희주의 머릿속을 빗자루로 탈탈 털어낸 것처럼 은정의 삶과 그녀의 지나간 삶, 사후 세계에서 보냈던 삶에 대한 생각들이 먼지처럼 뭉게뭉게 사방으로 퍼졌다. 


그러다 곧 생각의 먼지들이 가라 앉으며 하나의 생각만 또렷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다시 돌아오길 잘 했다는 것.


그 때, 바다의 어떤 검은 실루엣 하나가 희주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그녀의 생각을 와장창 깨뜨렸다. 사람이 틀림없었다. 한 남자가 허우적거리지도 않고 바다의 흐름에 순응하듯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분명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모양새였다. 희주의 등 뒤가 서늘해졌다.


“안돼!”


희주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며 모래사장을 가로 질러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모래 속에 운동화가 푹푹 빠져 자꾸 넘어졌다. 희주는 운동화를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안돼! 그만!” 하고 외치며 속도를 높였다. 


차가운 바닷물이 그녀의 맨발에 닿는 순간, 다시 한번 온몸에 전기가 통한 듯 찌릿한 소름이 끼치며 희주는 순간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잊을 수 없는 낯선 바다의 촉감. 검고 깊고 차가운 바다. 파도를 따라 일렁이던 머리칼.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오면서 점점 조여오는 숨구멍. 갑자기 숨이 턱 하고 막혔다. 


27년 전, 제 발로 바다에 뛰어 들었던 그 날의 기억이 희주를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파제를 만들었다. 희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누가 좀 도와주세요!”라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늦은 시간,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희주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던지고 바닷속으로 한 발을 떼었다. 희주는 물살을 헤치며 점점 멀어져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는 애타는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고, 희주의 머릿속도 점점 더 하얘졌다. 이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끈질기게 남자를 쫓아간 희주의 손이 마침내 남자의 옷자락에 닿았다.


“이봐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희주는 자기보다 머리 두 개 정도는 큰 건장한 남자의 팔뚝을 붙잡고 세차게 끌어당겼다. 그 바람에 남자의 몸이 휘청거리며 빙그르 돌더니 희주 쪽으로 향했다. 희주를 발견한 남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희주의 세상이 멈추었다. 그녀가 붙잡고 있는 것은 방금 깊은 바다에 뛰어 들려던 그 남자가 아니다. 


희주는 27년 전의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절망을 집어 삼키고 배설한 후, 텅 비어 버린 채 바다 속으로 사라지려는 자신을.

희주는 갑작스럽게 해후한 과거의 자신을 멍하니 바라본다.


과거의 희주는, 애타게 그녀의 팔뚝을 붙잡고 있는 누군가를 바라본다.

그는 현승이었다. 27년 전의 현승이 스스로 바다에 빠진 희주에게 소리친다. 그의 목소리가 파도를 타고 너울거린다.

“살아야죠!”




“살아야지!”

희주가 있는 힘을 다해 죽을 듯이 외쳤다.


“희주야…….”

남자의 목소리가 희주의 외침 위로 겹쳐졌다.


남자는 고향으로 떠났다던 수한이었다. 희주는 수한의 팔을 다시 거칠게 육지 쪽으로 잡아 끌었다. 수한은 저항 없이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두 사람은 모래 사장에 발이 닿자 마자 쓰러지듯 널브러졌다. 희주는 눈을 감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호흡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수한도 희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힘겹게 숨을 골랐다.


“희주 네가 어떻게 여기에…….”


“너 이렇게 죽으면 영원히 댓플… 아니, 파라스페이스 못 들어가!”


“그게 무슨 소리야. 파라스페이스 따위, 지옥으로 가겠지. 여기나 거기나 나한테 지옥인 건 마찬가지야.”


“정신차려!”

몸을 일으킨 희주가 수한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수한이 벌떡 일어나 멍한 표정으로 얼얼한 뺨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두 사람은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면서 바닷바람이 점점 차가워져 물에 젖은 몸이 으스스 떨리기 시작했다. 잔뜩 흥분했던 희주의 마음도 조금씩 잠잠해졌다.


“서울에서 하던 사업이 완전히 망했어. 이제 남은 가족도 없고 날 기다리는 사람은 채권자들 뿐이야. 이대로 돌아가면 어차피 그 사람들 손에 죽을 거야.”

수한이 긴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 여자랑 애도 낳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던 거 아니었어?”


“……미안해. 진심으로.”

수한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다 지난일이야. 덕분에 난 현승씨를 만났고. 오히려 그렇게 떠나줘서 고마울 일이지.”

희주가 잔뜩 젖은 옷의 물기를 꾹 짜며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을 용서해.”

희주는 자신의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말을 다시 귀로 들으며 순간 멈칫했다. 평생 하지 못할 말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용서한다는 말은 그녀의 날숨을 타고 그저 흘러나왔고, 희주는 어느새 자신의 마음에 아무런 저항이 없음을 깨달았다.


“나도 진심으로.”

희주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나직이 덧붙였다. 그녀의 말에 수한의 뺨을 타고 바닷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흘러내렸다.


“그 여자랑은 진작 헤어졌어. 아이는…….”

아이 이야기가 나오자 수한의 목소리가 떨리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수한이 ‘큼큼.’하며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내가 키울 형편이 안됐어. 아이 엄마한테도 채권자들이 찾아가는 거 같아. 나 하나 없어지는 게 빨라.”


“그래도 살아봐야지!”

희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그 애한테는 당신이 아빠고 세상이잖아. 기다리는 사람이 왜 없어? 아직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세상이 있는거잖아!”


말을 뱉는 순간, 희주의 머리가 멍 해졌다.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망치로 세게 내려친 것 같았다. 


-아직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세상이 있어요-


희주가 중간 지대에서 인간세상으로 돌아오기 직전, 관리자 문지기가 했던 말이었다. 희주는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황급히 틀어 막았다. 


눈 앞에 새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관리자 문지기의 얼굴과 죽은 현승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걱정 마. 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세상이 있는 한. 꼭 살아 돌아 올거야.’ 산악인 남편에 대한 걱정이 끊이지 않았던 희주에게 그가 습관처럼 했던 말이었다. 


‘설마…….’

희주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가 정말 현승이었다면 자신을 그토록 차갑게 대할 리 없었다. 이렇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렇지만 확인은 해야 했다. 희주는 서둘러 바다 모래가 잔뜩 묻은 가방을 들춰 메고 신발을 신었다.


“왜 그래?”

갑자기 짐을 챙기는 희주를 보고 당황한 수한이 물었다.


“확인해 봐야 할 일이 생겼어.”

희주는 바닷가 도로 한 켠에 세워둔 차를 호출했다. 옷에 묻은 소금기와 모래를 대충 털어 내고 차에 올라타려던 희주가 뒤를 돌아보았다. 다급히 그녀를 뒤 따라온 수한이 아직 마르지 않은 눈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집까지 바래다줄 정도로 내가 마음이 넓진 않아. 어서 가족에게 돌아가. 바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고.”


“……고마워.”

수한이 어렵사리 말을 뱉으며 또 한번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을 쏟아낸 것은 수한이었지만 어쩐지 희주는 자신의 마음이 그 눈물에 씻겨 내려간 듯했다.


원래는 보육원만 들렀다가 바로 서울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옷이 쫄딱 젖은 데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지는 바람에 희주는 울진에서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다. 한 푼이 아쉬운 그녀에게 숙소를 빌리는 것은 사치였다. 희주는 어쩔 수 없이 보육원으로 다시 찾아 갔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희주를 보고 놀란 부원장은 별다른 사정을 묻지 않고 잠자리를 내어주었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차디찬 바닷물에 들어갔다 오느라 만신창이가 된 희주는 쓰러지듯 잠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머릿속은 각성제를 마신 듯 선명했다. 희주는 우선 리노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리노, 나 오늘 못 들어가. 그리고 부탁 하나만 들어줘.”


“못 들어온다는 말 무서워. 사고 이후로 트라우마 생겼다구.”


“로봇이 트라우마는 무슨.”


“쳇, 무슨 부탁인데?”


“내 침대 밑에 상자가 여러 개 있는데, 그 중에 검정색 신발 박스가 하나 있어. 그거 좀 찾아줘.”


“지금? 신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냥 찾아달라면 좀 찾아줘!”


희주가 리노에게 꽥 소리를 질렀다. 신경질을 부리긴 했지만 리노와 이렇게 쓸데없는 말로 티키타카를 할 수 있는 것도 감사했다. 리노는 “팔도 없는 로봇에게 침대 밑에 있는 상자를 찾아달라고 하다니.”하며 구시렁거렸지만, 몸체로 침대를 낑낑대며 밀어내어 끝내 임무를 완수해냈다.


“찾았어!”


“열 수 있겠어?”


“응. 근데 이거…….”


“열어서 사진 좀 찍어서 보내줘. 신발 바닥 잘 보이게.”


희주가 리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잠시 후 리노가 사진을 전송했다. 희주는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신발은 현승의 유품인 오래된 등산화였다. 사진 속 등산화는 왼쪽 밑창만 눈에 띄게 닳아 있었다. 등산을 하다가 오른쪽 무릎을 다쳤던 현승은 왼쪽에만 힘을 주고 걷는 버릇이 있어서 왼쪽 신발 밑창만 닳았던 것이다. 


희주는 다시 관리자 문지기를 떠올렸다. 그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걸음걸이로 댓플레이스 심사대 입구를 서성이고 있었다. 누군가 심사를 통과하고 댓플레이스의 문이 열리며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빛을 피했다. 현승도 그랬다. 설원을 오르는 산악인들의 숙명과도 같은 직업병인 설맹 때문에 늘 선글라스를 끼고, 강한 빛을 조심하는 습관이 있었다. 


희주의 손에 힘이 스스르 빠지며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희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눈꺼풀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녀에게 진실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 The image created by CHO JUYOUNG with Midjourn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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