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것들을 위한 동시
엄마가 만든 잡채
곰돌이 접시에 담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
뽀로로 젓가락으로 돌돌 말아주면
내가 후루룩 먹을 줄 알았지?
미운 마음 넣은 거 다 알아
인상 쓰고 큰숨도 들어갔잖아
미운 얼굴로 만든 음식 싫어
혼나도 안 먹을 거야
미워 잡채
엄마 미워
만일 육아의 명장면을 꼽으라면요, 저는 이유식을 만들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네요. 모유나 분유와는 달리 제가 아이에게 만들어주는 첫 음식이라는 생각이 강렬해서요. 이유식을 시작하기 한 달 전부터 요리 도구며 재료, 식단을 미리 연구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죠. 돌이켜보니 육아에 대한 열정이 가장 뜨거웠던 시절이에요. 활활 타오른 만큼 몸이 지치기 십상이었지만요. 모쪼록 저는 육아의 다른 영역에는 자신이 없었는데요, 이유식만큼은 잘 만들어서 먹이고 싶었어요. 이유는 단 하나. 제가 만든 음식만큼은 의심이 들어가지 않으니깐요.
이유식이 진행될수록 흥미롭게도 초보 엄마의 잔재주도 늘어났지요. 채소나 고기 같은 재료를 찹찹 다져서 얼려놓고 육수도 쫙쫙 뽑아 꽝꽝 얼렸습니다. 하나씩 톡톡 꺼내서 냄비에 몽땅 넣고 쌀을 추가해서 휘휘 저어 보글보글 끓여 한 김 식힌 후 자그마한 용기에 세네 개씩 담으면 이유식이 뚝딱 완성! 그리고 어떤 날은 지치고 귀찮아서 한번 사서 먹여보려고 했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엄마의 잔머리가 돌아갈수록 저희 아이는 이유식을 덜 먹더니 심지어 아예 숟가락을 밀치더라고요. 아아아아니, 세상에 내가 어떻게 만든 건데!!! 엄마 노력을 눈곱만큼이라도 생각했으면 먹는 시늉이라도 했을 텐데!!! 한참 동안 팔짱을 끼고 복잡한 마음을 가다듬어 보는데요, 문득 제가 이유식을 잘못 만든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언제 만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이유식 큐브*는 냉동실에서 하염없이 얼음 냄새를 빨아들이고 있었고요. 얼려놓은 육수는 처음의 신선한 맛을 잃었어요. 사 먹여본 이유식은 첫 술만 뜨고 버렸어요. 아이가 엄마의 귀찮은 마음을 알아차린 것 같았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신선한 재료를 직접 다져서 그때그때 쓰고요. 육수는 최소 3일 이상 보관하지 않았어요. 혹시 아이에게 재료 입자가 커져서 씹기에 불편하지는 않은지, 채소의 조합이 거북하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체크했지요. 엄마의 열정을 다시 확인했는지, 신기하게도 이유식 거부는 바로 사라졌습니다. 첫돌이 지나 유아식도 먹고요, 엄마 아빠와 함께 먹는 음식이 하나, 둘씩 늘어나며 아이는 점차 자랐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저희 부부가 만든 음식을 잘 먹는 편이에요. 아이와 함께 요리 놀이도 하면서 저희 가족에게 음식은 즐거운 기억이 많아요. 물론, 커가면서 외식도 늘어났습니다. 매번 만들어 먹일 수는 없으니 새로운 맛을 점차 노출시키고 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죠. 아이가 세 살 때쯤이었어요. 아이가 잡채를 좋아해서 여느 때처럼 아이에게 먹일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지요. 파프리카, 당근, 양파, 버섯을 채 썰고요 당면을 삶고 고기가 있으면 넣고 아니면 지단을 올리고 그렇게 음식을 준비하는데요. 무슨 이유인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제가 아이에게 화를 냈어요. 아이는 일방적으로 혼이 났고요. 서로 감정이 날 선 상태였는데, 음식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제가 상황을 정리하지를 못했지요. 그 사이 잡채는 완성이 되었고 아이가 좋아하는 접시와 젓가락을 준비해서 식사를 하려는 찰나였습니다.
“자, 먹어봐. 우리 딸 좋아하는 잡채 만들었어.”
“…”
아이는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라면 제가 당면과 재료를 비비고 있을 때 쪼르르 달려와 아~ 하고 한 입 달라고 했을 아이인데, 그러지도 않았었죠. 제 마음에는 분노가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2차전이 임박했을 때였어요. 집안 분위기가 다시 냉랭해지려는데, 아이가 울먹이면서 대답을 했습니다.
“엄마가 화내면서 만들었잖아. 으아아아앙”
엄마가 인상 쓰고 화내면서 만든 음식을 먹기 싫답니다. 아이의 말에 저는 녹아웃당했죠.
아무리 맛있고 좋은 재료를 썼다한들 음식에 화와 미움이 들어가서야 될까요. 미워 잡채를 앞에 두고 아이는 제게 진심을 전했습니다. 아이의 말은 저에게 요리에 임하는 마음 가짐을 새롭게 해 줬습니다. 생각해보니 변변치 않은 음식 솜씨라도 즐거움과 사랑이 들어간다면 아이가 잘 먹는 날이 많았어요. 엄마가, 아빠가 해준 음식이 최고라고 웃으면서 안기기도 하고요. 이게 행복인걸요. 제가 이유식을 만들면서 느낀 떨림과 설렘. 그게 사랑인걸요.
* 이유식 큐브 : 다진 이유식 재료를 정량으로 소분해 얼음틀에 얼려 놓고 조리할 때 떼어 쓰는 육아 필수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