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것들을 위한 동시>의 꿈
저에게는 마음에 남은 동시집이 있습니다.
그 동시집은 열두 살 무렵 제 손에 들어온 기억이 나요.
손바닥만 한 크기로 연둣빛 색깔이었는데,
마음에 들었는지 몇 번이나 들춰봤답니다.
시간이 흘러 동시집은 잃어버렸어도
여전히 제 머릿속을 맴도는 시구가 남아있지요.
살구꽃 피는
언덕길에서
학교 갔다 돌아오는
갈림길에서,
종알종알 어쩌다가
너와 다투고
눈물이 글썽글썽
울려 보내고,
...
동시 <순이야 꽃같은> 중에서, 최계락 시인
이 동시를 읽을 때면
열두 살 제 마음도 살구꽃 피는 언덕길에
함께 서 있는 기분이 들더군요.
어린아이의 마음과 상반되는 봄의 정경이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그때부터 저는 시의 존재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순이야, 꽃같은’을 몇 번이나 반복하니
입에 절로 맴돌더군요.
하지만 동시는 오래가지는 못했어요.
제가 크면서 입시, 취업, 직장 생활을 해 치우다 보니
제 마음속 살구꽃 피는 언덕은 아련하게 잊혔지요.
그러다, 제가 엄마가 되었습니다.
언제 크나 싶던 아이는 금세 자랐고
어느새 말을 할 줄 알게 되었죠.
말을 하는 아이는 시인 같았어요.
한 마디씩 툭툭 나오는 말이 어찌나 예쁘던지요.
저희 첫째가 밀가루 반죽 놀이를 하던 중
하늘을 보더니 느닷없이.
엄마!
밀가루가 하늘에 착! 붙었어
왜 구름이 됐지?
예뻐! 밀가루 예쁘다!
<밀가루 구름> by 김새싹*
시월이 되어
바람에 흔들리는 은행나무를 보더니 난데없이.
엄마! 이리 와봐.
노란 나무 좀 봐봐.
나무가 춤을 춰!
<춤추는 노란 나무> by 김새싹
라며, 시를 한 편씩 읊더라고요.
그 작디작은 앵두 같은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자주 들으니
열두 살 적 살구꽃 언덕길이
다시 피어오르더군요.
아이는 자연과 주변을 관찰한 모습을
언어로 구사하기도 하지만요.
어떤 날은 은유 따위는 하나도 없이
가차 없는 직구를 날려
제 마음을 흠칫하게 만듭니다.
제가 화난 상태로 요리를 완성하고
먹어보라 들이밀었던 적이 있는데요.
미운 마음 넣은 거 다 알아
인상 쓰고 큰 숨도 들어갔잖아
미운 얼굴로 만든 음식 싫어
혼나도 안 먹을 거야
<다 큰 것들을 위한 동시> 중 ‘미워 잡채’
잡채가 밉다는 아이의 말은
저에게 미안함을 선사합니다.
그러다 제가 저만의 시간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엄마는 왜 컴퓨터만 해?
엄마는 왜 핸드폰만 봐?
나한테 티비 틀어주고
유튜브 보여주고
엄마한테 나는 안 보여?
<다 큰 것들을 위한 동시> 중 ‘엄마한테 나는 안 보여?’
본인에게 티비만 틀어주고
엄마 할 일만 한다는 아이의 말은
저를 반성하게 합니다.
아이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니까요.
그 안에는 몸은 다 컸지만 아직 마음이 성장 중인
어른들을 향한 일침이 들어있더군요.
아이의 말을 잘 듣고 싶어서.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서.
저는 아이의 말을 적어놨습니다.
그러다 소중한 그 말을
열두 살 살구꽃 언덕을 떠올리며
동시로 엮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브런치 북으로 만들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짧디막한 순수의 말을 계속 열어보니까요.
아이와 함께한 여러 날이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글을 쓰면서도 앞으로도 계속 채워 넣고 싶다는
또 다른 소망이 생겼어요.
참으로 팍팍한 세상이죠.
갈수록 가시밭길만 펼쳐지는 것 같아
너무 힘들고 지쳐도요.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을 놓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이는 금방 자라잖아요.
돌아보면 행복으로 남을 우리의 시간이
그저 우리만의 동시집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행복으로 맑게 번진다면
저에게는 큰 기쁨이 되겠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동시를 잊은 그대들에게,
그리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에게,
Child First.
* 저희 첫 아이의 태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