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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Oct 14. 2021

엄마한테 나는 안 보여?

다 큰 것들을 위한 동시




왜 자꾸 자라 그래?

왜 자꾸 한숨 쉬어?



나 자면 뭐할라고?

나 빼고 뭐할라고?



엄마는 왜 컴퓨터만 해?

엄마는 왜 핸드폰만 봐?



나한테 티비 틀어주고

유튜브 보여주고

엄마한테 나는 안 보여?



엄마! 나랑 놀자

엄마랑 소꿉놀이하고 싶어

놀이터도 가고 싶고

베스킨도 먹고 싶어






이런 생각을 자주 해요. 엄마 자아와 원래 나라는 자아를 양 끝에 두고 정중앙은 0, 양쪽 끝으로 갈수록 점수가 높아지는 거예요. 이걸로 오늘 나의 역할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 거죠. 이를테면, 오늘 아이들과 찐~~ 하게 보내고 내 시간이 하나도 없었다! 라면 엄마 자아의 점수가 높아지고요. 반대로 나만의 시간에만 초점을 맞추고 아이들과 시간이 평소보다 부족했다면 원래 나의 점수가 높아지는 셈이죠.




하루 끝에 저만의 점수를 매기는 일은 오래되지 않았어요. 제가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으로 글을 쓰게 된 이후부터였거든요. 첫째가 네 살이 되던 해, 엄마가 된 저에게 꿈이 생겼고 그때부터 비로소 저만의 시간을 만들었지요. 생각해보니 아이를 낳고 천일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로서만 살았었네요.




서투른 엄마라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행복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니 아이와의 하루가 참 소중하더군요. 그런데 말이죠. 우리의 행복이 무르익을수록 원래 저는 자꾸 작아지는 느낌이 들더니 어느 순간 아예 사라졌나 봐요. 제 머릿속에는 온통 아이 생각만으로 가득 찼고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저도 모르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불쑥! 잊고 살던 제가 답답하다고 소리치는 것 같았어요. 몇 년 전만 해도 제 삶은 이러지 않았는걸요. 30년 넘게 살았던 원래 제가 ‘절대 나를 잊지 마’라며 당부를 하더군요. 그때부터 원래 나를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고민 끝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책을 읽고 한 편의 글을 썼어요. 그 자체가 얼마나 재미있던지요. 아마 평생 처음 느껴본 것 같아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잠을 줄여도 피곤한지 몰랐어요. 덩달아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엄마가 되었어요. 아이가 언제 잘까 저는 낮잠 시간만 기다리고요. 잠을 안 잘 때는 아이에게 TV랑 영상을 틀어주며 잠깐만 보라며 저의 즐거움을 누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별안간 아이에게 화를 냈습니다. 당시 아이가 쉽사리 낮잠에 들지 못했거든요. 왜 잠을 안 자냐고 채근했습니다. 순간 아차 싶었죠. 아이의 눈을 바라봤거든요. 아이는 울먹였고 사슴 같은 눈에는 순수(純水)가 그렁그렁 고였습니다. 그 모습으로 저에게 매운맛을 넘은 마라맛 팩폭(팩트 폭력)을 날렸습니다.



“엄마는 나한테 티비만 틀어주잖아. 엄마는 컴퓨터만 하고 핸드폰만 보잖아. 나랑은 안 놀아주잖아.”



아이의 말은 제 가슴에 칼처럼 꽂혔습니다. 얼마나 찢어지게 아프던지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서 입을 뗄 수가 없었어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제 자신이 미워졌어요. 한참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아이가 잠든 시간 곰곰이 사태를 돌아봤습니다.




저를 찾겠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뒷모습만 보였습니다. 아이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저의 즐거움을 방해받을까 봐 아이의 기다림을 잊었습니다. 하루 종일 함께 있지만 함께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흥미롭던 책도 글도 갑자기 징그러워졌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왜 이걸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몹시 혼란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제 꿈을 다시 찾아준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불균형한 삶의 바퀴는 왜곡된 무게 중심축으로 인해 조금씩 목표 지점에서 이탈하기 시작한다. 만약 당신이 균형 잡힌 목표를 세우지 않고 나아간다면 언젠가 삶의 좌표를 잃는 ‘방황의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제가 균형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방황을 했고 그 결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를 혼자 두었습니다. 저의 꿈이 아무리 좋아도 아이를 외롭게 하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211013 오늘의 균형 점수와 나의 꿈



이 날 이후로 엄마인 저와 원래인 저 사이에 균형 점수를 매겨봅니다. 늘 그렇듯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 어느 한쪽으로 점수가 몰리는 날에는 기분이 영 별로예요. 저는 오늘 하루 제 점수에 0의 균형을 맞추고 싶거든요. 균형이 흔들릴 때는 조금 일찍 일어나거나 늦은 밤 시간을 확보해보고요. 엄마의 뒤태만 보이지 않기, 아이의 말에 항상 귀 기울이기 등등 하루를 시작할 때 엄마의 다짐을 새로이 다듬어봐요 . 이렇게 ‘나’의 하루와 ‘우리’의 하루를 아울러 사랑으로 채워봅니다.



* <파이브> 中, 댄 자드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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