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샘달 엿새 Oct 09. 2021

나뭇잎

다 큰 것들을 위한 동시




오늘은 미세 먼지 없는 날

친구들이랑 바깥 놀이 나갔어

나무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봄 꽃도 구경하는데



연두색 나뭇잎이 있더라?

너무 예뻐서 가져오고 싶었어

주머니에 살살 넣었는데

헤헤 조금 구겨졌다.



자, 선물이야.

엄마가 좋아하는 나뭇잎.






해마다 봄이 익는 무렵이면 저는 아이가 ‘아장아장’ 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2월에 태어난 첫째는 생후 14개월에 걷기 시작했어요. 첫걸음을 뗀 사월, 그리고 오월은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다리에 힘이 붙던 시절이었지요. 그때부터 저는 아이와 산책을 자주 했습니다. 아이가 걸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봄이잖아요. 산책을 안 할 수가 없는 계절이니까요.




아이에게는 집이 온 세상인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봄의 색깔과 햇살, 바람, 자연과 인공의 소리가 겹치니 산책을 하는 아이의 눈이 토끼처럼 커지는 순간이 많았어요. 어쩜 그리도 신기하게 쳐다보는지 저도 시선을 따라가 봤는데요. 작은 잎사귀도 자세히 살펴보니 참 커다랗게 보이더군요. 색깔도 한 가지가 아니고요 무늬도 섬세했어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매일 지나가는 아파트 길이었는데 아이와 함께하니 새로운 여행지가 된 느낌이었네요.




같이 걸을 수는 있지만 아직 말로 대화는 나눌 수 없는 모녀지간. 저는 아이에게 연신 말을 걸었습니다.




이건 나뭇잎이야. 노란색이랑 연두색이 조금씩 섞였네. 예쁘다 그치? 저건 짹짹이 소리야, 점심 먹는  같아.  시원하다. 지금 바람이 불어서 우리  머리카락이 움직였어.”




저만 일방적으로 말을 하니까 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지 늘 궁금했어요. 그래도 좋은 계절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며 바람을 쐰다는 기쁨. 그것 하나만으로도 하루의 고됨을 잠시 잊기도 했었네요. 더운 여름에는 땡볕이 위험해 집에만 있다가 선선한 가을이 되면 다시 산책을 진행했죠. 그 사이 아이는 뛰기도 하고 놀이터 기구도 이용해보았고요. 겨울엔 잠시 쉬고 또 봄이 오면 모녀의 산책은 재개되었답니다.




몇 해가 지나고 엄마랑만 있던 아이는 올해 유치원생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두, 세 살 무렵 산책하면서 바라본 유치원과 현재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 유치원 생활에도 큰 변화가 생겼는데요, 왁자지껄하던 유치원 놀이터는 고요한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미세먼지까지 가세하니 유치원에서도 외부 활동을 무척 조심스럽게 진행하시기 때문이죠.




그러던 중, 오랜만에 날이 참 좋았던 봄날이었어요. 아이가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부랴부랴 제게 손바닥을 보여주더군요. 여린 나뭇잎을 건네며 엄마를 위한 선물이랍니다. 오늘 오랜만에 나무 놀이터에서 놀았는데 연둣빛 잎이 떨어져서 주워왔다고, 엄마가 좋아하는 색깔이라서 생각났대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워낙 놀이터를 좋아하는 아이라서 노느라 바빴을 텐데, 그 와중에 엄마 생각을 이렇게 해주다니요. 나뭇잎에 담긴 마음을 곰곰이 들여다보니까 참 놀라웠습니다. 엄마가 된 후에야 부모님이 저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실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거든요.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만 아이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요. 반대로 제가 아이로부터 얼마나 큰 사랑을 받는지 알게 된 순간이 바로 나뭇잎 선물을 받았을 때랍니다. 아이도 이렇게 부모에게 커다란 사랑을 주고 있네요.


지난 봄 함께한 산책 길



요즘은 날씨가 추워져서 바깥 활동을 하지 못하는 날이 훨씬 많아요.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 나이인데 그러질 못해 참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는 집에서 부스럭부스럭 쓱싹쓱싹 싹둑싹둑 뭔가를 만들더니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합니다.




“이거 엄마 생각하면서 만든 반지야.”

“이거 아빠 생각하면서 색칠한 그림이야.”

“이거는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하면서 만든 카드야.”



엄마를 생각하며 만든 반지 & 아빠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



아이의 작품이 늘어날수록 집안 곳곳에는 형형색색 온갖 자투리 재료들이 널브러지긴 해요. 제 마음에 여유가 바닥났을 때는 그 모습이 저지레라고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고사리 손으로 만든 작품과 아이의 마음을 다시 살펴봅니다. 아이의 함께 작품(!)을 감상하면서 엄마 아빠를 향한 사랑이라고 확인해보고요. 이도 저도 아닌 건 부모와 아이가 같이 치워봐요. 그럼, 또 하루가 금세 가고 아이도 훌쩍 자라요.



* 첫 번째 그림은 아이가 표현한 나뭇잎 모습

이전 03화 애착 속싸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