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것들을 위한 동시
동생이 예쁘긴요!
난 미워요!
엄마 아빠는 동생만 봐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똑같아요.
아무도 날 안 봐요.
그래서 너무 속상한데
엄마 아빠는 나한테 화내요.
흥! 나도 기분 나빠요.
다 싫어요.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나 혼자 있고 싶어요.
어라...?
엄마가 날 안아주세요.
혼날 줄 알았는데
엄마는 나를 안아줘요.
엄마 냄새는 좋아요.
엄마 품은 따뜻해요.
엄마가 안아주면
그냥 눈물이 나요.
엄마가 안아줄수록
동생이 아주 초큼 덜 미워요.
저는 첫째 아이가 네 돌이 지났을 때 이제야 육아가 좀 할만하다 싶었습니다. 우선 대화가 먹히고요.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져 손이 덜 갔거든요. 게다가 유치원 생활을 시작하니 저만의 시간도 생기더군요. 하지만 오랜만에 얻은 자유의 몸도 찰나였습니다. 지난 초여름, 저희의 둘째 아이가 태어났거든요.
사실 둘째를 가졌을 때 아이 자체에 대한 육아는 별로 걱정되지 않았어요. 뭐 어떻게 됐든, 만 4년간의 육아 데이터가 누적되어 있으니 하나씩 꺼내 쓰면 되니까요. 하지만 아이 둘의 엄마가 되면서 코 앞에 닥친 걱정거리는 첫째 아이의 ‘마음’이었습니다. 가족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던 아이인데 동생에게 관심과 사랑이 쏠린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요. 저도 동생이 있어 그런지 그 마음을 알겠더군요.
그래서 둘째 출산 준비를 하는 동안 첫째의 마음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특히, 동생과 관련한 물건을 준비하면서 이건 이래서 필요하다 등 설명하기 바빴고 혹시나 아이가 서운하지 않을까 사소한 것 하나하나 먼저 물어보느라 제 입이 아플 지경이었어요. 둘째를 출산하고 조리원에 있는 동안에는 동생이 언니를 많이 보고 싶어 한다, 집에 가면 같이 노느라 재미있을 거다 등등 첫째에게 기대를 심어 주려 노력했어요.
시간이 흘러 둘째 아이와 함께 집에 왔습니다. 드디어 첫째와 둘째가 만난 날이었네요. 집에 온 첫날이라 저는 집안 정리와 둘째 아이가 편하도록 이래저래 신경 쓸게 많았어요. 유치원 다녀온 첫째랑 엄마가 돌아온 기념 파티도 해야 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겠더군요. 제 몸을 몇 개로 쪼개야 할 것 같았는데, 걱정했던 문제가 터졌어요.
둘째에게 맘마를 먹이는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자기 방으로 뛰어가더라고요. 순간 아차! 싶었어요. 아이의 마음이 다쳤을 것 같았거든요. 그간 첫째는 동생을 사진으로 보면서 귀여워하고 어서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요. 심지어 동생의 태명도 본인이 고심해서 지어줬는데요. '사랑이'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이가 괜찮은 줄 알았는데요. 그게 아니었어요. 아이의 마음은 절대 괜찮지 않았어요.
갓 태어난 둘째를 먹이고 재우느라 안아줘야 하는데 제가 둘째를 돌보면 첫째가 저쪽에서 눈을 흘기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어요. 심지어 이불속에서 숨죽여서 울고 있기도 하고요.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발을 쿵쿵 구르고 인형을 때리기도, 물건도 휙 집어던지기도 했어요. 여러 문제 행동 중에 절정은요. 하... 질투나 화를 표현하지 않고 우울한 표정으로 놀지도, 먹지도 않을 때였어요.
와... 정말 이건 전쟁 같은 육아 2막이 오른 느낌이었달까요. 태아 같은 신생아는 울어 젖히는데 제 입장에서는 이제 다 큰 것 같은 첫째가 저러고 있으니 아이의 마음을 살피자는 제 마음에도 불이 지펴지고요. 곧 폭발할 것 같아서 그냥 집을 나가버리고 싶더라고요. 제가 조리원에 있을 때 첫째가 너무 보고 싶어서 아이에게 화를 내면 사람이 아니라는 다짐을 했었는데요. 조금 있으면 인간 아님을 증명할 것 같은 위기였어요.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고 다시 돌아서면 또 반복. 그러다 잠든 첫째를 보면 잘 돌봐주지 못해서 참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재택근무 중인 남편과 역할을 나눴어요. 아빠가 일을 마치면 첫째 아이와 저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그냥 산책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면서 첫째 아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었어요. 하루 30분이라도 첫째랑만 온전한 데이트를 하니까 아이의 기분이 많이 풀리는 느낌이었어요. 제 손을 꼭 잡은 첫째에게 물어봤습니다.
“우리 딸 많이 힘들지?”
제 질문에 아이는 갑자기 울먹이면서 대답했습니다.
“응. 힘들어.”
아이는 얼마나 속이 상할까요. 3주간 기다려서 만난 엄마인데요. 뭐든 동생부터 해야 하는 일들이 다섯 살 인생에 납득이 쉽게 될까요. 그렇게 첫째는 엄마, 아빠,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이 동생에게 간다는 사실을 목격하면서 마음이 텅 비어 가고 있었을 거예요. 세상살이가 참으로 힘들었을 거예요.
첫째 아이와 시간을 만들수록 질투의 강도가 약해졌습니다. 그래도 아예 없어지진 않고요. 문제 행동의 빈도가 많이 줄었어요. 집에 온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에요. 제가 둘째를 안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어요. 자기 방구석에 숨어서 숨죽여 울고 있더군요. 아, 사랑이 또 고갈되었나 봅니다. 둘째를 남편에게 맡기고 첫째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이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요. 그냥 안아줬어요. 예전에 아이와 그림책 <허그 머신>*을 본 기억이 났어서요. 허그 머신은 세상의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데요. 허그 머신의 포옹 원천이 떠올랐거든요.
제가 안아주자 첫째 아이가 제 품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 울음은 짜증이나 화가 아니었고요. 엄마가 자기를 알아줘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환희의 눈물이었습니다. 제가 진심을 다해 안아줄수록 첫째는 제가 알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둘째 아기를 안아주기 전에도 먼저 첫째를 안아줬습니다. 그럼 첫째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그제야 둘째도 편안하게 맘마를 먹고 조용히 잠이 들었어요. 둘째에게 또 다른 미안함이 피어올랐지만 우선 이번 위기를 먼저 넘기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야 집안이 평화로울 테니까요.
이토록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둘째 아기의 백일이 찾아왔습니다. 그간 첫째 아이도 둘째 아기도 훌쩍 자랐어요. 첫째를 생각하면 참 길었고 둘째를 생각하면 짧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부부에게도 백일은 뜻깊은데요. 두 번째 백일의 기적이 찾아왔거든요. 첫째가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이제 사랑이 먼저 안아줘도 돼.”
* <HUG MACHINE> by Scott Campbell
<꼬옥 안아 줄게> 스콧 캠벨 저, 홍연미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