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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Oct 22. 2021

최고의 선물

다 큰 것들을 위한 동시




어린이날이었어요

예쁜 옷도 선물 받고요.

요술봉도 받았어요.

음, 팽이도 받고요

아! 비눗방울도 받았어요.



그런데 제일 좋았던 건요.

바로바로바로

공원이에요.



아빠랑 엄마랑

뛰어다니고요

비눗방울도 불고

딸기 주스도 먹으니까

제일 행복했어요.



나중에 또 갈 거죠?

그때는 연도 날려보고요

아빠랑 자전거도 탈래요.






제가 초보 엄마 시절에는요. 저는 아이가 장난감만 있으면 혼자서 재미나게 노는 줄 알았어요. 아이가 놀아달라고 하는 건 집에 장난감이 부족해서인 줄 알았거든요. 온종일 아이와 씨름하다가 파김치가 되어 누우면요. 저도 모르고 장난감을 검색하고 있더라고요. 와, 저 어릴 때랑은 정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멋지고 화려한 장난감이 많더라고요? 심지어 아이의 두뇌 발달에도 좋다고 하니까 어머 이건 당장 사야 해! 가 절로 절로 나오더군요. 마음보다 빠른 손가락 터치 덕에 다음 날 그 장난감은 저희 집 앞에 도착했죠.




게다가 기념일은 왜 이렇게 빨리 올까요.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추석과 설날 등 아이에게 선물 줄 명목의 날들이 금세 다가와요. 그때마다 아이의 방은 장난감 친구들에게 내어주고요. 기념일이 지날수록 비어있던 공간은 장난감으로 조금씩 차올랐죠.




혹시 새로운 걸 바라보면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저는 전에는 못 본 새로운 물건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요, 어떤 날에는 막 설레기도 해요. 아이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새로운 아이템을 만나면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만지고 갖고 놀아요. 그런데 이게 말이죠. 그 어떤 장난감도 아주 끈끈하게 오래도록 흥미를 유지하는 건 없더라고요. 길어봤자 이틀 내지 삼일 정도? 너무 갖고 싶다고 노래 부른 장난감도 며칠 후에는 아이 주변에서 찾을 수가 없어요. 얼마 후 또다시 새로운 물품으로 채워지니까 원래 갖고 있던 장난감에는 관심이 금세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아이는 장난감에 질리지만요. 저는 처분에 신물이 나더군요. 장난감을 살 때도 이리저리 고민하고 샀는데요. 그걸 버리는 과정은 더 신경 쓰이는 일이더라고요! 이걸 분리수거를 해? 플라스틱인가? 아닌가? 종량제 봉투에 넣어? 대형 폐기물 신고를 해? 아니면... 나눔을 해야 하나? 으으으아악 장난감 처리하는 게 더 머리가 아파요. 고민만하다가 결국 버리는 걸 포기합니다. 하... 이런 날들이 반복되니까요. 저도 장난감 참 좋아한 엄마였는데요, 어느 순간 소유욕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네요.




그러다 어린이날이 다가왔습니다. 양가 부모님들께서는 아이에게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물으셨어요. 아이는 역시나 평소 갖고 싶던 선물 리스트를 술술 읊더라고요. 하나같이 집에 비슷~한 느낌으로 있는 제품들이었죠. 그저 새로운 장난감이라는 것에 기대가 큰 모양이었어요. 심지어 유치원에서도 어린이날 특별 선물을 한 가득 받아왔는걸요. 그건 까맣게 잊은 모양이에요. 그렇다고 부모로서 어린이날을 그냥 넘기고 싶진 않았어요. 저는 장난감 말고 다른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바로바로 공원! 어린이날에는 아빠가 쉬니까요. 그리고 날씨도 좋을 테니까요. 집 근처 공원에 가서 뛰어 놀기로 약속했지요. 킥보드도 챙기고 유치원에서 선물 받은 버블건(비눗방울 놀잇감)도 가져가기로요. 엄마 아빠랑 공원에서 뛰어놀자는 말에 아이는 방방 뛰고 신이 났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도 먹고 딸기 주스도 사준다니까 벌써 마음이 구름까지 올라간 것 같았어요. 생각만으로도 좋은가 봐요. 며칠 동안 해맑게 웃으면서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까요, 참 예쁘면서도 마음이 아렸습니다.




코로나가, 미세먼지가 웬 말인가요. 우리 어렸을 때는 그냥 나가서 뛰어놀지 않았습니까? 아이와 함께 놀다 보니 놀이터에서 놀고 그냥 뛰어다니는 활동을 참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요. 어린아이들의 철철 넘치는 밝은 에너지는 밖에서 쏟아내야 제 맛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실내에서 보내는 날이 훨씬 많지요. 그러니 얼마나 답답할까요.




어린이날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아침부터 신이 났어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흥에 겨운 상태로 외출 준비를 하더라고요. 이윽고 목적지 공원에 도착하자 벌써 뛰어다녀요. 아빠는 짐을 들고 아이를 쫓아갑니다. 저는 이미 공원을 즐기는 다른 가족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깔깔깔깔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어요. 다들 뭐가 그리 신났을까요. 그런데 말이죠. 저는 그 웃음을 듣기만 해도 행복하더라고요. 모처럼 파란 하늘에는 씽씽 부는 바람을 타고 각양각색 연들이 하늘을 날고요. 온 가족이 마음을 합쳐 자전거를 타기도, 어떤 가족은 반려 동물과 함께 산책하기도, 대여섯 살 친구들은 버블건으로 비눗방울을 쏘기에 여념이 없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는 아빠 양손을 붙잡고 한발, 한발 신중하게 연습하네요. 아직 어린 동생은 엄마 품에 안겨서 바깥 구경을 하고요. 한편에서는 단란한 가족이 5월의 나무 그늘 아래서 돗자리를 깔고 도란도란 앉아 있네요. 




와! 이게 얼마나 멋진 풍경입니까. 이런 공간에 저희 가족도 함께 있네요. 그 사이 술래가 바뀌었는지 아이는 아빠를 잡으려고 신나게 뛰어다니네요. 뛰면서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행복하면 저런 표정이 나올까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광경을 보니까 머릿속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렀습니다.




구름 너머 파란 하늘을,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머지않아 너희들 손에 되돌려 줄 날이 올 텐데
강물처럼 별이 흐르고, 바람이 코 끝을 스치는
이 축복을 너희들 손에 전부 넘겨줄 수 없다면
정말 미안할 테니

더 늦어버리기 전에 우린 하늘이 되기로 했단다
평범한 내일의 그 꿈들이 꿈으로 끝나지 않도록
잠시 너희들이 빌려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은
결국 우리가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물*




비록 바다로, 산으로 매일 가지는 못해도요. 이제는 파란 하늘을 매일 만날 수는 없더라도요. 날씨가 좋은 날 집 근처 자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요. 이 노래가 꿈꾸는 세상이 그려져요. 그래서 저는 엄마가 된 이후로 놀이터와 공원이 참 좋더라고요. 이런 공간마저 없으면 우리 아이들은 어디서 축복을 선물 받을까요.




신나게 뛰어놀고 식당에 들어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곧이어 아이가 좋아하는 딸기 주스를 마시러 카페로 옮겼지요. 음료수와 케이크를 먹으면서도 자꾸 바깥을 쳐다봅니다. 좀 전만 해도 공원에서 뛰놀던 게 아련하게 그리운가 봐요. 엄마 아빠에게 마음을 표현합니다.



“다음에도 공원 꼭 오자. 그때는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오고 싶어.”


“우리 딸 오늘 재밌었어?”


“응. 너무 재미있었어. 공원에 와서 행복했어.”



물질과 달리 경험으로 채운 마음은요. 나만의 소유가 아니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함께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낀 모든 감성이 마음속에 곱게 자리하는 느낌이에요. 그때를 떠올리면 다시 행복이 피어오르고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한번 행복을 느끼고 싶은 소망을 생기게 만들어줘요.




가끔씩 아이가 장난감이 갖고 싶다고 할 때 저희 부부는 물어봅니다.


“이거 정말 필요한 거 맞아? 우선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우리 딸 생일이 되는 내년 2월까지 이 장난감이 필요하면, 그때 선물해줄게.”


그렇게 갖고 싶어서 애교를 부리던 장난감도 시간을 정해주면 어느 순간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아요. 왜냐면 그 사이 다른 장난감이 나오거든요.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갖고 싶은 건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요. 서로 시간을 정한 덕분에 아이 방의 장난감 번식도 멈췄지요.




어쩌면은요. 아이와 함께 뛰어노는 일이 그냥 장난감 사주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가 있어요. 엄마 아빠는 아이들을 먹여 살리느라 바쁘거든요. 그리고 아이가 크는 만큼 부모는 늙기 때문에 체력이 전 같지 않으니까요. 그런데요. 아이가 잠들기 전에 엄마 아빠랑 함께여서 행복했다는 그 말을 들으니까요. 파김치가 된 몸도 잠시 잊게 되네요. 어쩌면 이게 바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지도 몰라요.



* 너희들 것이니까 by 박창학 작사, 윤상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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