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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Oct 23. 2021

웃는 얼굴

다 큰 것들을 위한 동시





엄마는 나에게 웃으라 하지요.

사진 찍을 때도

영상 통화할 때도

인사도 웃으며 하래요



웃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웃은 날도 있어요

그러면 엄마가 칭찬해 주잖아요

내가 웃으면 가장 예쁘다고요



그런데 있잖아요.

나도 엄마 웃는 얼굴이 가장 예뻐요

그리고 엄마가 웃으면요

나도 웃음이 나요



엄마!

오늘은 왜 안 예쁜 표정을 지어요?

엄마 눈썹 사이에 두 줄이 생겼어요.



엄마 웃기려고

엉덩이 춤도 췄는데

동생한테 까꿍 놀이하며 놀아줬는데

물 마시고 캬~ 시원하다! 말했는데

아무리 내가 그래도

엄마 표정이  예뻐요



엄마!

나랑 같이 웃어요



엄마가 항상 말하잖아요

웃으면    거예요

그리고 엄마한테는 내가 있잖아요







제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요. 신생아 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참 신기했어요. 모두가 한결같이 아기를 바라보면서 눈을 못 떼요. 아기가 새근새근 자도, 아기가 무표정으로 바라봐도, 아기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면서 울어도요. 아기의 탄생을 축복하러 온 이들에게는 모두가 경이로운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첫 아이 분만 전까지 그 마음을 알 수 없었죠. 심지어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면서 분명 하루 이틀 전 출산한 산모 분들을 많이 마주쳤는데요. 누가 봐도 몸이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뒤뚱뒤뚱 걸어 신생아 실로 향해서 한동안 아이를 바라보더라고요. 저 산모는 몸이 안 아픈가? 아기들이 다 똑같이 생겼을 것 같은데, 찾을 수 있나?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그랬던 제가 첫아기를 낳으니까요. 신생아실 면회 시간만 기다려지더라고요. 아기가 너무 너무 보고 싶었거든요. 링거 바늘을 달고 허리를 바로 못 세워도, 걸음은 반 걸음씩 떼더라도 아기를 보러 간다는 생각 하나로 엄마는 몸뚱이를 움직이는 거더라고요. 그렇게 직접 바라보니까요. 작디작은 몸은 마치 인형 같은데 움직이고요. 이목구비는 오목조목, 누굴 닮았나 계속 쳐다보게 되고요. 자면 자는 대로 신기하고 간호사 선생님께 안겨 있으면 안겨 있는 대로 신기하고요. 앙앙 우는 것도 신기한데 또 울면 이유와 무관하게 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이 모든 사랑스러운 모습 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바로, 아기의 배냇짓*입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가 씽긋 웃더군요. 눈을 감고 입 꼬리가 활짝 올라갔어요.



“우와와아아아!! 웃었어 웃었어 웃었어!!!”



이렇게 호들갑도 떨다가요. 그게 우리들이 흔히 아는 사회적 웃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만간 깨달았다죠. 큭큭큭 그래도 배냇짓이 얼마나 예쁘던지요. 그 웃음에 출산의 고통도, 육아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두려움도 잠시 잊었어요. 왜냐면 그 웃음에 저도 따라 웃고 있더라고요. 아마 배냇짓은요. 아기가 태어나서 어른들에게 선물하는 웃음이 아닐까 싶어요.




병원과 조리원을 거쳐 아기는 집에 옵니다. 그 사이 초보 엄마는 멘탈이 몇 차례나 무너지죠. 처음에는 인형인 줄, 천사인 줄 알았는데요!!! 신생아는 잠만 자는 줄 알았는데요!!! 아기는 매일 같이 집이 떠나가라 울고요. 엄마는 울음의 원인을 찾고자 정신이 쏙 빠진 채로 살아요. 그렇게 아기는 신생아를 벗어나 1개월, 2개월 지나고 어느덧 태어난 지 백일이 다가옵니다.




이 무렵 아기가 두 번째 웃음을 선사합니다. 헤헤 까르르 하면서 배냇짓과는 다른, 우리가 상호작용하면서 만나는 웃음이지요. 심지어 엄마 아빠와 눈도 마주치고요. 웃는 표정은 더 커져요. 신생아 때는 싱~긋! 웃었다면 백일 무렵에는 :D 요렇게 입이 알파벳 D 모양이 되어 웃고 있지요. 아기를 웃겨주면 자기도 재미있는지 자꾸 웃어요. 전에는 아기가 배냇짓으로 엄마 아빠를 웃게 해 줬는데요. 지금부터는 아기가 엄마 아빠를 보면서 웃는 날이 많아져요. 엄마 아빠가 웃으면 아기도 웃거든요.




아기가 아침에 일어나면 온 가족이 다가갑니다. 가족들이 웃으며 “우리 아기 잘 잤어?”라고 문안 인사를 하면요. 기지개를 쭉쭉 켜면서 헤헤 :D 웃음으로 대답해줘요.




어릴수록 먹고 자기만 했던 아기는 점점 크면서 심심하다고 자꾸 놀자고 그래요. 그럴 때 같이 모빌도 보고 딸랑이도 흔들고요. 손수건으로 촉감 놀이를 하거나 온 몸 여기저기에 뽀뽀 놀이를 하면 또 까르르르르 :D 안 해주면 -.- 이런 표정을 짓다가 금세 앙앙 >_< 울어요. 날 좀 웃겨봐요!! 이러는 것 같아요.




갓 태어났을 때보다는 많이 컸지만 그래도 쪼꼬만 이 생명체가 말이죠. 백일 무렵부터는 집안이 싫증이 나는지 자꾸 콧바람을 쐬러 가자고 그래요. 그럼 유모차를 태워서 나가봅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어해도요, 금세 두리번두리번 세상 구경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엄마 아빠가 “어때 날씨 좋지? 바람도 시원해?”라고 물으면요. 히히히 :D 하면서 화답해줘요.




아기를 키워보니까요. 아기는 천사 같은 배냇짓으로, 부모는 안락한 웃음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살게 되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은 꽃길만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요.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일이라도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해야 하고요. 내 삶에 결실보다는 실패만 이어지는 것 같아 지하로 치닫는 것 같아도요. 아기의 웃음 하나면 그 순간만큼은 여러 두통이 눈 녹듯 사라져요.




그러다 돌이 지나고 걷고 뛰면서 이제 말을 하잖아요? 아기가 아이가 되면서 울음도 줄어들지만 웃음도 같이 줄어들더라고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면서 나타나는 현상 같아요. 아기 때는 제가 웃으라면 방긋방긋 잘도 웃어줬는데요, 사진 찍을 때 웃음을 요청하면 어색한 미소로 변하기도 해요. 아뿔싸! 저는 아이의 웃음을 더 보고 싶어요. 그래서 아이에게도 많이 웃자고 얘기하고요. 제가 웃어야 아이도 따라 할 테니 저 역시 평소에 많이 웃으려고 노력합니다. 살다 보니 웃음도 노력의 영역임을 깨달았거든요. 그런데, 삶이 지치고 찌든 날에는 노력의 웃음도 나올 수가 없더라고요.




마침, 소소하면서도 커다란 걱정거리가 제 마음을 지배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잘 놀던 아이가 저에게 묻습니다.



“엄마, 왜 안 예쁜 표정하고 있어? 엄마 이마에 줄이 생겼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인상을 쓰고 있었나 봐요. 아이가 사진 하나를 챙겨 옵니다. 얼마 전 둘째 아기와 함께 찍은 넷이 된 우리의 가족사진이에요.



“엄마. 이렇게 웃어봐. 엄마는 웃는 게 제일 예뻐!”



그 사진에는 자기와 똑 닮은 둘째를 안은 아빠가 있고요. 사진 촬영이 어색할 수밖에 없는, 이제 50일이 지난 둘째가 멀뚱멀뚱 카메라를 쳐다봅니다. 그 옆에는 저희 첫째가 세상 예쁜 표정으로 웃음을 짓고요. 끝으로 첫째 손을 꼭 잡고 웃는 제가 있습니다. 제 표정에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편안한 웃음이 가득 찼습니다. 촬영을 하는 동안 우리 가족의 첫 사진이라 저도 많이 기뻤나 봐요.



 

제가 아이에게 웃음을 전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아이는 되려 저에게 웃음을 알려줍니다. 배냇짓부터 지금까지도요.

아이도 다 아는 것 같아요. 그 웃음은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리고 우리의 행복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걸요.

아이가 그려준 우리 가족 웃는 얼굴

* 배냇짓 : 갓난아이가 자면서 웃거나 눈, 코, 입 따위를 쫑긋거리는 짓.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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