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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Oct 22. 2021

기다리다 그랬어

다 큰 것들을 위한 동시




엄마 아빠가 다 잤잖아



나 혼자 기차 갖고 놀다가

그림 그리다가

티비 보다가

과자 먹다가



응아가 나왔어

방바닥에 떨어졌어



기다리다 그랬어






겪어보니 깨달았어요. 육아는 체력전이에요. 소싯적 체력을 자부했던 사람에게도 육아는 진짜 상상 그 이상이에요. 오죽하면 두 개의 심장! 박지성 선수께서도 ‘육아는 종료 휘슬이 없다’*라며 많은 부모들의 공감을 자아내셨죠. 캬. 주옥같은 명언입니다.




애쓴 하루를 마치고 심신이 피로할 때는 일찍 자야 하잖아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요. 아이들에게는 일찍 자라고 그렇게 말하면서요. 부모는 또 안 그래요. 아무리 피곤해도 어떤 날은 자유를 꼭 즐기고 싶어요. 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그 시간은 정말 아깝더라고요. 이런 날은 1분 1초도 소중하게 쓴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체력도 바닥났는데 밤늦게까지 놀았다? 그럼 몇 시간 후에 시작할 아침은 어떻게 감당할지? 쾌면을 마치고 일어난 싱싱한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 건지? 결과는 뻔합니다. 시작부터 좀비가 되어 시간에 쫓기고 아이에게 쫓기며 엉거주춤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어요.




제가 그랬거든요. 자유를 누린 다음 날에는요. 눈에는 핏발이 서고요. 다크 서클이 진해졌어요. 피부는 푸석대고 몸은 젖은 솜뭉치처럼 무거워서 빠릿빠릿하게 못 움직이겠더라고요. 심지어 그날은 주말입니다. 이 말인즉슨, 유치원에 가지 않는 아이와 24시간 함께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어제 신났던 순간은 ‘내가 다신 그러나 봐라.’라며 저주의 타깃이 되어 버립니다.




체력이 방전된 상태로 주말을 보내다가 저도 모르게 낮잠을 잔 적이 있어요. 저는 분명 자려한 게 아닌데, 아이와 함께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에요. 낮잠 중에 몇 번 깼던 기억이 나요. 처음엔 아이가 제 옆에서 자고 있었고요. 그다음에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보였어요. 다시 눈을 떠 주방에서 소리가 나길래 살펴보니 아이가 과자를 집어 먹더라고요. 그러더니 “엄마 티비 봐도 돼?”라길래 “응 그래.”라고 대답했던 것 같아요. 저는 다시 잠을 잤죠. 그리고... 이번에는 아이가 저를 깨워서 다시 눈을 떴어요.



“엄마... 나 씻겨줘.”



저는 직감적으로 상황을 인지했고요, 깜짝 놀라서 몸이 절로 일으켜졌어요. 아이가 용변 실수를 했더라고요. 마침 아빠도 저쪽 방에서 잠이 들어서 제가 잠결에 쳐다본 아이는 모든 걸 혼자 하고 있던 상황이더라고요!




오 마이 갓! 용변 처리 영역은 아직 엄마 아빠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인데요. 아이가 너무도 침착한 목소리로 저를 깨웠어요. 그 모습에 자기가 실수해서 미안한 마음이 서려 있었어요. 어서 주변을 정리하고 저는 아이를 씻겼죠. 그런데 자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얼마나 당황했을까. 얼마나 찝찝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저는 아이에게 잦은 기다림을 줍니다. 평소에도 습관처럼 '기다려'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아니면 이번 일처럼 엄마가 잠든 사이 아이가 스스로 기다리기도 해요. 아이는 잘 기다려줍니다. 되려 기다리라고 한 말은 제가 자주 잊습니다. 그러다 다른 일이 파고 들어와서 저는 아이에게 전했던 기다리라는 말을 까먹어요. 그 사이 아이는 계속 저를 기다리고요. 참다못한 아이가 제게 어떤 일을 다시 청하면 그제야 저는 기억이 나서 미안해든가, 아니면 본의 아닌 짜증을 내기도 해요. 우리의 하루 중 기다림의 시간은 제법 길 것 같아요.




한편, 모든 걸 도와줘야 했던 아이는 하루하루 자랍니다.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육아의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성장이 물씬 느껴져요. 어느덧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아지는데요. 이를테면 밥도 스스로 먹고 치카도 해요. 리모컨을 사용할 줄도 알고 선반에 있는 물건도 까치발을 들어 스스로 꺼내요. 심지어 방도 정리하고요. 매일 놀아달라고 조르던 아이가 스스로 놀 줄도 알게 되죠.




그러면서 엄마 아빠의 자유도 조금씩 허용해줘요. 아이는 본인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요, 아이도 부모를 배려하는 대목이더라고요. 정말 많이 컸구나 싶어요. 그런데요. 이렇게 클수록 자꾸 간과하는 게 있어요. 아이는 아직 다 크지 않았는 걸요. 부모로서 아이의 성장도 지켜봐야 하지만, 아직 아이이기에 소중히 다뤄야 할 부분이 항상 있더라고요. 그게 어떤 부분이든 아이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와 아이의 하루 중 기다림이 잦아질 때마다, 아이가 아직 서툰 영역에 제 손길이 닿지 못할 때 괜스레 미안해지는 이유입니다.




아이와 함께하면서 과거에 알게 된 어떤 아동 후원단체의 광고 문구가 자주 떠오릅니다. 제가 결혼하기 전에 마주친, 순전히 기억에 의존한지라 정확한 문장은 아니겠지만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두 가지.
사랑한다는 말, 아이를 살리는 일



저는 이 말에서 ‘지금 당장’과 ‘아이’의 상관관계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이는 하루하루 성장하니까요. 미세할지라도 어제의 아이와 오늘의 아이, 그리고 내일의 아이는 성장의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날마다 자라는 아이에게 매일 기다림을 남발한다면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그때뿐인' 소중한 시간을 제 스스로 없애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와 함께할 때는 온전히 집중하려 노력합니다. 놀이를 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숙제를 함께 하면서도 건성으로 하지 않으려 해요. 그리고 부득이 기다림이 필요할 때는 기다려 줄 수 있는지 묻고, 작은 약속이라도 잊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도 제가 자꾸 깜빡이니까 아이에게 아예 부탁했어요.



“엄마가 또 잊으면 다시 와서 말해줘.”



언제 크나 싶던 아이는 어느새 부모의 말과 부탁을 이해하는 어린이가 되어갑니다. 그래도 아직은 아이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아이의 기다림이 혹여 외로움으로 채워지지 않도록 오늘을 반성하고 다짐해봅니다. 그렇게 우리의 오늘은 또 어제가 되어 갑니다.



* 대화의 희열 3 방송 중 언급

첫 번째 그림은 아이가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만든 피자. 하나, 둘, 셋, 네엣, 다아아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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