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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O Jun 22. 2022

우리 아버지가 외상이라고?

열두번째 이야기_외상이라는 이름의 가시밭길


“우리 아버지가 외상이라고? 그냥 성질 더러운 거 아니었어?”     


처음 상담 공부를 하고 나서 내뱉은, 의심의 첫 마디였습니다. 


사실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얄궂은 기억은 야속하게도 좋은 추억보다 마음에 상처가 된 기억을 짙게, 오래 남깁니다. 

아버지는 대개 가족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고, 과도한 음주와 공격적인 언행을 일삼기 일쑤였습니다. 

사춘기로 예민했던 저는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아버지의 성격 탓으로 치부해버리면 편했기에, 그렇게 아버지에게 애증의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동안 보였던 일련의 행동들이 외상 사건들로 인해 비롯된 영향임을 알게 되자 굉장한 죄책감이 올라왔습니다왜 이제 알았는지에 대한 무지함에 분통했고, 억울한 마음도 울컥, 올라왔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설명을 해줬더라면 아버지를 덜 미워했을 텐데, 조금은 이해했을 텐데 하는 마음이 저를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향한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외상 경험을 겪었고, 또 지금까지 겪고 있는데 왜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요.
아버지에게 외상은 그저 주변 소방 동료들이 겪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외상과 관련된 다양한 증상을 알려드리자, 아버지의 경험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셨습니다.
그제야 아버지는 스스로 외상을 겪고 있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의 경험이 과연 외상일까 하는 의문과 의심을 품을 수 있고그 의문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외상은 결코 거대한 증상이 아닙니다쉽게 말하자면, 외상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충격적인 사건에 의해 입은, 물리적 상처가 아닌 마음의 상처입니다. 업무강도가 높은 소방공무원 직업의 특성상 소방공무원은 외상에 빈번하게 노출되는 업무환경 속에 놓입니다. 과거의 처참한 현장 상황에서 겪은 외상은 생생하게 재경험되기도 합니다. 죽음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미칠 것 같은 공포와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외상의 경험은 체화되어 몸에 지나친 긴장을 주고, 예민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증상을 통해 과잉 각성을 하게 되고 술을 찾기도 합니다. 이에 더해, 자기 또는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공포나 경악, 분노, 혹은 죄책감, 수치심과 같은 부정적인 기분이 수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별다른 자극 없이도 자주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DSM-5). 


2020년 소방청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소방공무원 52,119명 중 12.9%에 해당하는 6,723명이 약 일 년간 12회 이상 극심한 외상 경험을 경험한다고 응답했으며, 5.1%는 외상에 대한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외상 경험을 남들에게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요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두려움’, ‘불안’ 또는 비정상인’, ‘나약한과 같은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상 경험은 결코 개인의 문제로 한정할 수 없습니다‘어쩔 수 없다’라는 통념과 개인의 정신적인 문제일 것이라는 추측으로 치부하게 되면 개인의 탓을 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인식으로 인해 소방공무원은 누구라도 견딜 수 없게 되고마치 가시 같은 불편함을 마음속에 지니게 됩니다. 


그 가시가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어더 이상 소방공무원이 외상이라는 가시밭에 고통받지 않아야 합니다목에 가시가 걸리면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겪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로 여기고 그저 넘겨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개의 가시가 박히게 되면결코 불편함으로만 끝나지 않는 큰 고통으로 남습니다.     


소방공무원 자살에 관한 실태분석을 살펴보면, 매년 소방공무원 자살률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자살을 원인별로 분석한 결과, 1위는 가정불화이며 2위가 우울증으로 나타났습니다. 

통계적 자료가 이미 SOS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아버지도 외상에 대해 무지했고, 서로 오해만 쌓인 채 몇십 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로의 속이 썩어 문드러져 가는지도 모른 채 겉만 가족인 채로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왔습니다.


 


그래야만 했습니다. 소방관은 숭고한 일을 하는 영웅이며, 소방관의 가족 또한 당연히 함께 견뎌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방관의 외상은 묵인으로 끝낼 문제가 아닙니다만약 가정불화로 인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정상이어야 한다는 사회통념으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을 놓아버리고 있진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미 위의 통계적 자료는 외상에 대한 내면 증상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외상에 대한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시작해야 합니다.

의료적, 시스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요구하고, 이용해야 합니다.      


외상(PTSD)은 절대 나약하고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외상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문제를 향한 따가운 시선과 부정적인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행복할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외상을 수용적으로 받아들이는 조직 문화와 인식이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 모두를 위한 첫걸음입니다. 

소방 문화에서 나아가, 사회 전체의 영역에서 우리 모두가 변화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몸’과 ‘마음’이라는 부위의 차이만 있을 뿐, 아픔을 느끼는 것은 똑같습니다. 


변화는 소방공무원 개인뿐만 아니라 소방 가족 모두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외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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