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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O Jul 27. 2022

어미닭과 병아리

열여덟번째 편지 _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일

 처음 소방서에 들어온 후 6개월은 제 인생에 있어 그야말로 ‘고난의 시기’였다고 명명할 수 있습니다.

회식 도중 집에 가버린 이후, 첫 팀장의 눈 밖에 나버려 무엇 하나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지요.

뭐라도 하려고 하면 ‘그걸 왜 하느냐,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물어보고 해라’ 따위의 잔소리가 고막에 꽂혔습니다.



소방서 훈련 종류 중 ‘로프 매듭법’은 화재 구조 구급 현장에서 긴급한 상황일 경우에 적용하는 휴대용 로프로 매듭을 지어 소방관과 요구조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신속히 구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2000년대 서울 소방 활동사진

소방관 훈련 중에서도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첫 팀장님께서 이 로프 매듭법에 꽂혀 있었던 겁니다.

소방관이면 모름지기 로프 매듭법을 능수능란하게   있어야 한다는  바로  팀장님의 지론이었지요.


예외 없이 제게도 로프 매듭법을 강조했는데, 문제는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잘 해내기를 요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훈련 시간에는 대강 시범을 보이면서 제가 한번 해보려고 하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라며 로프를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팀장에게 닦달만 당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지요.

     

지금이야 소방서에 개인 로프도 구비되어 있거니와, 무엇보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로프 매듭법을 포함한 모든 훈련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영상을 한번 보고 따라 하기만 해도 웬만한 훈련은 정복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20년 전, 제가 신입 소방관이던 시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연습할만한 개인 로프도 몇 개 없었고, 모든 훈련은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시범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도제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신입 소방관들은 선배 소방관들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면서 훈련을 배울 수밖에 없었고, 한 번이라도 선임자에게 밉보이기라도 하면 다른 곳에서 배울 길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팀장에게 미운털이 박힌 터라, 누구도 제게 팀장 앞에서 로프 매듭을 제대로 가르칠 엄두를 내지 않았습니다.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사람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결국 사람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던가요.


저를 눈엣가시처럼 보던 팀장과 달리 제게 다가와 자상하게 로프 매듭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야간에 대원들이 대기실에 올라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 로프를 붙잡고 끙끙대는 제게 와서 로프매듭을 알려준 그 사람, 바로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17). 건물 붕괴]에서 언급했던 고 김영식 소방관이었습니다.    


부산 (주)빅토스 공장화재 현장_ 연합뉴스

2012년 공장 화재를 진압하다가 건물 붕괴로 인해 안타깝게 순직하신 고 김영식 소방관, 제게는 햇병아리 소방관 시절의 저를 지켜주셨던 어미 닭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분은 마치 독수리와 같은 팀장이 잠든 틈을 타 소방관으로서 꼭 알아야 할 부분들을 알려주셨습니다.      


다음 날, 독수리 팀장이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이봐, 신입! 어제 로프 매듭은 연습했나?”     
저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한 뒤 그의 앞에서 멋지게 로프 매듭을 완성했습니다.
‘이 녀석이 이걸 대체 어떻게 했지?’ 하는 독수리 팀장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로프 매듭법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팀장이 수없이 퇴짜를 놓고 재작성시켰던 공문 생산 방법이라든지, 화재 현장에서 호스를 굴리는 방법 혹은 지하 소화전 뚜껑을 여는 방법 등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소방서에서는 신입 소방관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 않고 알아서 잘 해결하라며 무책임하게 던져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눈치껏’, ‘요령껏’, ‘잘’ 살펴야 하는 일들, 사수가 들여다보며 가르쳐주지 않으면 크게 혼이 나며 배우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 소방 현장에서 고 김영식 선배님을 만나게 된 건 소방 생활의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시시각각으로 발톱을 드러내는 독수리 팀장에게 할퀴어 제 여린 몸이 성할 날 없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비번 날이면 떡집을 운영하면서도 근무 날에는 소방서 직원 중 누구보다 열심히 움직였던 고 김영식 소방관.

모든 직원이 휴식을 취하는 야간 시간에도 저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무실에 내려와 힘든 건 없는지 살피신 선배였습니다. 저는 그런 선배님의 다정한 물음에 낮에 있었던 일들을 질문하기도 하고, 선배님은 어려운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해주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전 6개월의 시보 기간을 무사히 마쳤고, 마침 그즈음 독수리 팀장도 발톱을 접고 다른 곳으로 훨훨 날아갔습니다. 독수리 팀장 다음으로 만난 팀장님은 상식이 통하는 소방관이었기에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방관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고 김영식 소방관의 영결식

소방 생활의 멘토이자 선배님이 화재진압을 하시다가 건물 붕괴로 순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 마음도 같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달음에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목놓아 울음을 토해내었지만, 야속하게도 그분을 다시 뵐 수는 없었습니다. ‘하늘은 좋은 사람을 먼저 데려간다’라는 오래된 말을 그때서야 몸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영정사진 속 홀로 웃고 계신 선배님은 십여 년 전 그날 밤처럼 ‘독한 사람일수록 오래 산다지 않니’, 하고 울고 있는 제 어깨를 토닥이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괜찮아, 무스야.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요렇게 하면 돼. 요렇게만!
이제 네가 한번 해 봐! 오. 그래, 잘한다!”

    

사람과 사람, 결국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일.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 단순하고 간단한 진리를 저는 소방서 시보 시절 두 사람의 선임 소방관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를 도와주셨던 그분의 응원 속에서 오늘도 저는 어렵다면 어렵고, 힘들다면 힘든 소방서 생활을 동료들과 부대끼며 함께 이어가고 있습니다.


-hearO는 고 김영식 소방관의 숭고한 헌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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