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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시인 <그 여름의 끝>
<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장난처럼 절망이 끝났다.'
시인이나 문학가가 할 수 있는 표현이다. 철학자나 영성가라면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숨 쉬는 동안에도, 심지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도 절망이라는 감정이 생겨난다. 어떤 감정도 끝없이 생겨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절망이 끝나는 순간은 현생의 삶이 종료되는 시점이다.
여하튼 절망이 장난처럼 끝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