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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온더문 Feb 06. 2021

외갓집

역사속에서 사라진  장소들

외갓집은 돈암동에 있었다. 크고 고급스러운 대문들의 집들을 지나면 작은 골목의 작은 대문들이 나왔다. 길보다 서너 계단 정도 위에 있는 작은 녹색 철 대문을 들어서면 굉장히 많은 콘크리트 돌계단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어떻게 그런 환경의 집이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문으로 들어가면 그 높디높은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바로 작은 화단과 집이 있었는데, 계단을 마주하여 화장실이 별도로 있었고, 본채가 있고, 본채 옆에 따로 좀 더 작은 별채가 있었다. 본채 마루에 미닫이 문이 달려있었고, 툇마루가 있었다. 이민을 갈 즈음에는 그 미닫이 문이 유리로 바뀌어 있었던 것 까지 기억이 난다. 그 툇마루는 신기하게도 외부와 내부의 중간쯤이어서 비가 올 때 비는 안 맞아도 외부를 느낄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그리고 마루에서 왼쪽의 큰 방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계신 담배연기 가득하고 어항이 있던 안방이었고, 그 옆이 부엌이었다. 그 부엌은 불 때는 아궁이가 있었고 단차가 나 있는 레벨을 슬리퍼나 신발을 신고 한 계단 더 내려가야 했다. 안방의 맞은편 방은 작은방이었다. 별채는 신발을 신고 나가야 했다. 나는 그 집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한 집인데 공간 간 이동을 위해서는 바깥과 실내 공간을 넘나들어야 했고,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했고, 단층의 실내에서도 여러 단차가 존재했기 때문에 작은 집이었지만 몸의 움직임이 다양해질 수 있었다.  훗날 그 집을 다 없애고 새로운 집을 짓는다고 하셔서 그곳을 다시 못 가 본 것이 너무 아쉬웠다.


 공간, 특히 집은 개인을 넘어 한 가족의 역사가 축적된 공간이다. 오래된 마룻바닥도, 대문도, 태어나서부터 키를 표시한 벽지도 우리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런 공간들은 현대적인 생활 속에서 사용하기에는 참으로 불편하다. 공간의 자산가치를 높이려면 재건축이나 리모델링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주변을 보며 항상 생각하던 아쉬운 부분은 어떻게 하면 축적된 시간들을 보존하고 기록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그 축적된 시간이 역사이고 가치인데 한순간 밀어버리고 제로베이스에서 새로운 시간을 다시 시작한다는 게 너무 아쉽다. 그 켜켜이 축적된 시간과 추억이 한순간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랄까…


유럽, 일본 등 많은 국가들이 오랜 된 집들을 보존한다. 단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철거하고 새로운 모던하우스를 짓지 않는다. 옛날의 건물이 백 년 넘게 보존되고 유지된다… 유럽의 경우 건축의 자재가 돌이었기 때문에 더욱 보존이 쉬웠을 것이고,  일본의 경우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에도 대다수가 전통 주거를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한다. 

한국에서 건축물을 철거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일제시대에 지어졌다는 이유로 중앙청 건물, 종로경찰서, 국세청 남대문 별관과 같은 건물들은 역사적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였고 한국의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에  철거했다. 또한, 경제 급성장 시기에 지어진 많은 건물들이 부실하게 날림으로 시공이 되어 더 이상 보존이 어렵기 때문에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더 철거될수록 더 새로운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더 사라지는 나라가 되는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짓는 건축물들은 그것이 공공건축이던 주거시설이던 미래를 보고, 보존 (sustainable) 가능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계획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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