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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Sep 07. 2020

4년 전의 나 홀로 여행을 그리워하며

2016년 9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든 요즘 더 그리운 해외여행. 대단한 곳이 아니어도 국내의 익숙함보다 해외의 낯섦을 경험할 때, 아마도 현실을 잠시 떠났다는 설렘과 안도감이 들기에 해외여행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감당하기 힘든 외로움을 본격적으로 느끼기 전까지는 30대 내내 혼자 여행을 즐기기도 했고 말이다. 그날들 중 2016년 9월의 베트남 여행에서 적었던 기록. 그날을 그리워하며 브런치에 옮겨놔 본다.  




1일 1커피, 1맥주, 1산책, 1낮잠, 1마사지를 모두 지킨 하루. 주변에선 혼자 여행 간다는 내게, 자꾸 어디를 보고 싶어서 그곳에 가냐고 묻는데 내게 이번 여행의 계획은 단지 낯선 곳에서 저것들을 하는 것뿐이었다. 베트남에서도 핫하다는 다낭 등을 가지 않고 별로 볼 것 없는 하노이를 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며칠간만이라도 그 동네 주민이 된 것처럼, 관광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휘적휘적 돌아다니고 때되면 로컬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그러려고.

거리의 초등학생들은 어디서나 삼삼오오 모여 귀엽게 쫑알거렸으며, 바닥에 버려진 우유는 어디에나 많았다. 이곳에서도 뷔스티에를 유행시키려 한다는 사실(좀 고급스러운 샵에만 걸려있고 거리의 그 누구도 입지는 않음)은 좀 신기하기도 했으며, 백화점이 아닌 거리에 백화점 입점 브랜드인 에스티로더나 맥 매장이 줄줄이 있는 것도 생경했다.


늦잠 자느라 못 먹은 아침을 채우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결국 세끼를 먹게 되었고, 호안끼엠의 깨끗지 못한 물을 바라보며 왜 여기가 명소일까 생각해보다가 엄청나게 커다란 독수리가 호수 중앙의 조각상에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한가로이 바라보며 한 바퀴 산책을 했다. 그리고 그곳이 명소인 건 밤이 되어서야 인정하게 됐다. 유명하다는 콩까페엔 제이슨므라즈 닮은 남자가 있던 덕분인지 잠시 유럽인가 착각하게 했으며, 남들 다 먹는걸 나도 따라먹는 건 좀 그래 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코코넛 커피는 너무 맛있었다. (매일매일 두 잔씩 먹다 가야지!) --이제는 한국에 콩카페가 생겨 자주 갈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한국에서는 사이즈가 확 줄어든 콩까페 커피. 하지만 베트남까지 가지 않고도 한국에서 언제든 먹을 수 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혼자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가 본 꽤 괜찮은 마사지샵에서는 나보다 한참 어리고 쓸데없이 과하게 잘생긴 청년이 담당이 되어, 잠시 이 청년 말고 다른 여성분을 불러달라고 할까 고민하다 나도 참 나네 하고 말았다. 친구와 함께가 아닌 혼자 마사지를 받자니, 종아리만 마사지를 받는데도 부담스러운 기분은 배가 됐다. 그렇지만 그동안 살아오며 받아 본 마사지 중 최고였고, 거의 처음으로 의무감에 건넨 팁이 아니었던 것 같다. 립서비스로 배운 것 같은 "예쁘다"만 여러 번 말하지 않았어도 덜 민망했을 텐데. 왜 한국인들에겐 저런 립서비스를 하라고 교육시킨 걸까.


오늘의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한 소박하고 예쁜 테라스를 가진 룸이었다. 창문을 열어 다정한 풍경을 바라보고 빗소리를 들으며 낮잠도 청했다. 낯선 곳에서 한가롭게 낮잠이라니!! 이 또한 여행 중에 처음 해보는 일이다. 나 밖에 없어서인지 이 곳에서 일하는 학생 커플이 나를 더 잘 챙겼다. 그들과 저녁 식사도 같이 했는데 정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저 결국 '역시 어느 나라건 커플은 귀엽구나'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되었다. 암튼 내일 아침은 나 혼자 휘적휘적 나가서 뭐든 먹어봐야지. 그래야 이르게 시작되는 하노이의 아침을 누려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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