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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Mar 07. 2021

명동에서의 기쁨과 슬픔

영화 <새해전야>를 보는데 명동이 보였다. 다른 작품에서도 명동 시내가, 또는 어느 골목이 스치듯 잠깐만 나와도 "어? 저기 명동이다"라고 소리치는 나를 발견한다. 그 외침에는 사실 반가움이 크게 묻어있다.


그곳에서 직장생활을 2년간 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은 돌아보면 내게 기쁨이었고 슬픔이었고 그리움이고 씁쓸함이다. 2년이 4년 여 정도로 느껴지는 밀도 높은 시간이었고 그만큼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홍대 쪽의 다양하고 인디스러운 문화를 좋아하는 내게, 명동은 평소에도 가지 않는 곳 중 하나였다. 외국인들로 북적이고, 거리 전체가 온갖 프랜차이즈 매장들과 쇼핑점으로 가득한 백화점스러운 곳. 사람도 건물도 풍경도 내 취향인 것이 어느 하나도 없었다. 그런 그곳에서 2년을 생활하고 나니, 이제 내게 명동은 조금은 다른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골목골목, 퇴근 후 동료들과 함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던 밥집들. 회사의 많은 고민들을 나누며 걷던 거리들. 점심때마다 만나던 커피집 바리스타분들. 애정해 마지않던 베이커리집. 매일 아침저녁으로 오가던 출퇴근길. 이제 예전같이 무의미한 공간이 아닌 것이다.


different 때문에 이 사진으로 실어두지만, 이 사진은 연남동 거리에서 촬영했다. 현재 명동의 모습을 담아두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무렵 퇴사해, 공교롭게도 나의 퇴사와 함께 명동은 예전의 명동 모습을 완전히 잃었다. (얼마 전 <시지프스>에서 황폐해진 거리로 명동이 나왔는데, 지금의 현실보다 몇백 배 과장된 모습이었지만, 상인들은 그 정도로 체감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봤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며, 직장인들도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시켜먹는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어 점심시간 음식점들이 북적이지 않게 되었다. 매일 저녁에도, 심지어 그 찬란하던 크리스마스에도, 명동거리는 쓸쓸해 보였다. 코로나로 경제 한파가 불어닥치고,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 폐점하는 곳이 많다는 뉴스가 나올 때는 늘 명동거리를 비춰줬다.


덕분에, 언제라도 그곳에 가면 나의 추억들이 살아 숨 쉴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나의 추억들은 온전히 내 기억 속에서만 머물게 된 듯하다. 추억은 또 다른 추억으로 겹겹이 쌓여 유기적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그곳에서의 기억들은 변할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상실한 채 고스란히 박제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은 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면도 있어서 되도록이면 괜찮았던 기억만 곱씹어보며 간직해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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