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으로 여행 갔을 때였나. 식당에 놓인 티비에서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는데, 무명가수들이 나온 경연대회인 듯했다. 찰나의 순간, 저런 경연대회 지겹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커플이 너무 열심히 보는 게 아닌가. 아, 우리 말고 다른 이들은 많이 보는 인기 프로구나 생각했다. 그 이후에 인스타그램 피드에서도 <싱어게인>에 빠졌다는 친구들의 게시물을 종종 봤다. 그때까지도 난 빠지지 않았다.
그러던 며칠 전,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듣는데 연관 영상으로 이승윤의 무대가 떴다. 아, 그 경연 프로그램에서 어떤 참가자가 불렀나 보구나. 어떻게 불렀나 한 번 보자, 하고 본 그의 무대에 순간적으로 꽤 깊이 집중하게 됐다. 무대를 다 보고 난 후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도 느껴졌다. '이승윤'을 나무위키에서 검색해봤다. 가장 최근까지(그래도 벌써 몇 년 전이지만)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 설교말씀이 꽤 아카데믹하고 학술적이어서, 그리고 그 교회의 재정상태를 무척 투명하게 공개해서 좋았는데, 그 교회 그 목사님의 셋째 아들이었다. 그 지점이 무척 놀라웠다. 전혀 매칭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데...그러고 보니 얼굴이 너무 닮았다. 그러고 보니 수려한 말솜씨도 닮았다. 누가 부자지간 아니랄까 봐.
이승윤의 무대 자체가 호감인 데다가, 그의 목사님 아버지에 대한 호감까지 겹쳐져 (대형교회 목사님들에게 호감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 목사님이 더 귀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호감지수가 대폭 상승했다. 그리고 그의 모든 무대를 이어 봤다. 체구도 작고 아이돌처럼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닌데, 자기만의 창법과 느낌 있는 몸짓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화면 장악력이 저 정도로 큰 이를 최근 몇 년간 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되짚어 봤다. 없었다.
그의 자작곡을 찾아봤다.
제목부터 이미 너무 마음에 들어버린 '구겨진 하루를'.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할 수 있어요
요즘의 내 마음이다. 노래는 마음을 꽤 잘 위로해준다. 다시 루틴한 하루를 보내는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평일의 대부분이 구겨진 하루다. 퇴근하느라 지쳐 매일 밤 다리지도 못한 채 잠이 들곤 한다. 주말에 한 주간 구겨진 마음을 다렸다고 생각했는데, 월요일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구겨졌다.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오면서
구겨진 하루를 들으며 위로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