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은 사랑일까 아닐까
얼마 전 강릉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느라 몇 달 동안 외출도 여행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다 보니 심리적 여유의 보폭이 무척 짧아진 것 같았다. 사람이 많이 모일만한 성수기가 되기 전에 어디든 다녀와야만 했다. 어느 날 밤에 문득 이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강릉을 떠올렸고, 망설임 없이 티켓팅과 호텔 예약을 했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도 밤새 마음이 바뀌지 않은 난 강릉행 KTX에 앉아 있었다.
기차 안에서 (그제야) 어디를 갈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우선 바닷가. 어느 바다를 가지? 안목해변, 강문해변? 그리고 잘 알려진 집에 가서 순두부도 먹고, 며칠 전부터 계속 먹고 싶었던 물회도 먹어야지. 참, 순두부 젤라또도 먹어야겠다. 바닷가가 보이는 카페에 가서 책도 읽어야지.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예전 테라로사 본점 좋아했는데. (테라로사때문에 강릉을 사랑하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모델링해서 예전 모습 다 없어졌다니 너무 아쉽다. 또 어디 가지? 맞다, 독립서점! 바다 마을의 독립서점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배가 고파서 밥을 먼저 먹기로 했다. 초당마을에 가서 가장 유명하다는 식당에 갔더니 세상에나! 점심 때도 지났는데 강릉에 온 관광객은 모두 그곳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60여 팀이 대기 중이었다.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배고파서 그리고 시간이 아까워서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옆에 위치한 다른 식당에 가서 순두부를 먹었다. 유명 맛집 프로그램에도 나왔던데, 그럭저럭이었다. 그래도 먼저 간 순두부집에서 순번을 기다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별다르지 않은 맛이었을 거라 나 자신을 위로해보며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꽃향기가 좋았다. 시골길을 혼자 걸으니 뭔가 낭만적이었다. 생각해보니 4년 만의 혼자 여행이었다. 셀카를 즐겨 찍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이 장면은 내 마음속에만 셀카처럼 남았다. 안목해변까지 가는 버스를 꽤 오래 기다렸다. 택시를 불러봤지만 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버스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내린 곳은 버스의 종점이었다. 서점보다 해변이 더 가까웠다. 하지만 서점에 먼저 들렀다가 마지막 코스로 바닷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먹는 게 나을 것 같아 먼저 서점으로 향했다.
이름만 보면 안목해변 근처에 자리 잡았을 것 같은 서점인데 바다와는 거리가 좀 있는 동네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관부터 따뜻함이 느껴지고 좋은 글귀들이 적혀있어 또 하나의 괜찮은 독립서점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굉장히 조용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메인테이블에 한 팀의 손님들이 이미 자리해서 뭔가를 마시고 계신 듯했다. 난 바로 책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으로 하나하나 적은 책 속의 페이지들이 정성스러웠다. 책들을 둘러보다가 커피를 주문하러 서점 주인분께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서점 주인분께서 "저기 작가님들 오셨어요"라고 했다. 너무 작게 말씀하셔서 처음엔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듣다가 나중에 알아들었다. 고개를 돌려, 아까는 제대로 보지 않았던 분들을 봤다.
어? 그곳에 김연수 작가님이 계셨다.
김연수 선생님을, 그분의 글을,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기억이 정확치가 않다. 2000년대 중반부터 좋아했나 했는데, 얼마 전에 엄마 집에 와서 내 책장의 책들 속에서 발견한 <사랑이라니, 선영아>가 2003년 6월 초판 1쇄인 걸 보니 그보다도 전부터 인 듯하다. (중고서적을 잘 구입하지 않는 성격인 탓에 이렇게 유추해본다)
다만, 선생님께 너무도 감사했던 기억은 정확히 떠오른다. <우리가 보낸 순간>이라는, 선생님께서 좋아하는 시와 소설의 일부 페이지들과 선생님의 생각을 함께 적은 책의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억에서 꺼낸 말이라 표현이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비난 한 번은
칭찬 다섯 번을 해야
상쇄시킬 수 있어요
우리는 흔히들 누군가에게 상처를 한 번 주면, 그다음에 사과나 위로 한 번으로 그 상처를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없이 남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20대 초반 글을 평가받는 자리에서, 남을 비난해야 내가 살 수 있는 서바이벌 시스템이었기에, 남들에게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 나도 다른 친구 글에 비평이 아닌 비난을 한 일이 있었겠지만, 비평과 비난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힘들어 비평마저 하지 않고 말을 적게 하는 쪽을 선택하곤 했다. 그 일상이 몇 년간 이어져, 그때 박힌 상처들이 회복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한동안 내보이는 글을 쓰기가 너무 힘겨웠다. 글을 기본으로 써야 하는 직무들을 수행하며 회사와 동료들의 평가도 좋았기에, 그 과정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회복되어 갔다. 바로 그때, 김연수 선생님의 <우리가 보낸 순간> 작가의 말에 쓰인 저 이야기를 보게 됐고, 알지도 못하는 선생님께서 내게 직접 위로의 말을 건네주신 것처럼 그 정도로 큰 위안이 됐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힘든 시절을 단번에 빠져나오게 한, 강력한 한마디.
그 이후에 선생님의 신간 출판 기념회에도 여러 번 참석하곤 했다. 기념회를 마치고 길게 늘어선 행렬에 동참해 책 앞쪽에 사인을 받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이런 선생님을, 지금 이 낯선 동네, 처음 와보는 서점에서 만났다니!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런 우연이 발생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까 호텔 체크인부터 했다면, 그래서 피곤하다는 핑계로 방에 뻗어버렸다면. 첫 번째 들른 순두부 맛집에서 그 많은 웨이팅을 다 기다렸다가 식사하고 왔다면. 안목해변부터 둘러보다 서점에 왔다면. 그랬다면 김연수 작가님을 이렇게 우연히 마주칠 수 있었을까? 다시 생각해봐도 기가 막히게 기분 좋은 우연이었다. 확률을 따져보는 것조차 의미가 없었다.
서점엔 선생님의 책이 <시절 일기> 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 구입했던 책이지만, 이렇게 직접 뵌 기념으로 사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바로 구입해서 선생님께 사인을 부탁드렸다. "선생님 글 진짜 좋아해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너무 반가워요"라는 얘기만 전하며. 구구절절하게 위에 쓴 얘기들을 다 꺼낼 순 없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고 벽에 붙어있는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조금 뒤에 선생님 일행 중 한 분이 "와서 같이 얘기해요~" 하셨다. 그래도 되나 싶었지만, 서점 주인분도 같이 얘기 나누고 계시고, 나만 등 돌린 자리에서 계속 책을 읽는 것도 우스운 모양새였다. 테이블에 합석해 얘기를 나누게 됐다. (세상에! 선생님을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우연히 만나 아무 말이나 하게 되다니!!)
서점 주인분의 "사랑이 뭘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시작으로 사랑에 대한 담론과 각자의 정의들이 오갔다. "모성애처럼 노력 없이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에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데, 노력을 제하고 사랑을 논할 수 있나" 등의 얘기들을 나누다 보니 서로 '노력'에 대한 정의를 굉장히 다르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이미 선언된 것이며,
그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물론 끝까지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이미 사랑이다
라는 게 김연수 선생님과 나의 입장이었고, 다른 누군가는 "이미 맺어진 관계에서 애써가며 유지하려는 것"을 '노력'으로 정의 내리고 있었다. 결국 같은 얘기인데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더 긴 얘기들을 나누었지만 사적인 얘기들이 있어 중략하도록 하겠다.
선생님의 지인 중 한 분은
이 세상에 사랑이란 게 없기 때문에
모두들 끊임없이 사랑을 찾는 게 아닐까?
인디언들이 부족한 물을 찾듯이
라는 정의를 내리셨는데, 사랑은 결국 없는 걸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해봤다.
친구들과 서로의 연애 상담은 많이 해주지만, 이렇게 잘 모르는 분들과 만나 사랑의 담론에 대해 얘기 나눠본 건 아마도 처음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내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던 김연수 선생님과 함께라니! 바닷마을에서의 기분 좋은 우연은 내게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았다.
(힘드시겠지만) 선생님께서 오래도록 글을 써주셨으면 좋겠다. 이번 달에 오랜만에 발표하신 신간 <일곱 해의 마지막>도 좋은 반응을 얻고 많은 이들의 마음에 남기를. 이렇게 멀리서나마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