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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e Mar 27. 2021

또 다시 병동생활

극심한 항암 부작용, 9일만의 재입원

항암,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5주 간 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먼저 쓰고 싶었다. 생사가 달린 대수술과 중환자실에서의 2주, 그리고 일반병실에서 회복해가는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쓰려 했다. 


 아빠가 통원하며 항암 치료를 하는 동안 짬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만에 가까스로 나아져 병원 문 밖을 나선 아빠는, 9일 만에 다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그래서 잠시 그 기록은 미뤄두고, 현 시점에서부터의 일들을 쓰려 한다. 


 대수술 후 갓 회복한 상태에서 그 강력하다는 항암 치료에 들어갔으니 재입원은 예견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수치가 정상화 돼서 주치의는 통원치료도 괜찮겠다고 판단했지만 아빠는 항암 치료를 시작한지 이틀만에 거의 초주검이 됐다. 극도의 구역감, 컨트롤 할 수 없는 설사, 경련에 가까운 온몸 떨림까지 동반됐다. 

 

 결국 사흘째 되던 오전 응급실을 찾았고, 51병동에 다시 입원하게 됐다. 아빠 상태를 고려해서 저번과 같은 다인실이 아닌 1인실에 입원했다. 


 시스플라틴(항암주사제)의 위력은 대단했다. 아빠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극심한 구역감에 시달렸다. 식도를 제거해 구토를 할 수는 없었지만, 숨 쉬듯이 헛구역질을 했다. 통상 우리가 생각하는 '우웩'이 아니라  짐승 울음 소리에 가까운 '구웨에에엑'과 같은 소리를 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마음은 쿵쿵 계속 내려앉았다. 


 남들은 잘 듣는다는 항구토제도 거의 효과가 없었다.  2~3시간에 한번씩, 짧으면 1시간에 한 번씩 간호사실 호출벨을 눌러야 했다. 잠깐 잠잠해졌나 싶으면 또다시 극심한 구역질이 시작됐다. 구역감이 가라앉으면 온몸에 진이 다 빠진 아빠는 침대에 축 늘어져 잠만 잤다. 


 항암주사를 맞은지 5일 째인 오늘은 응급실에서보다 더 괴로워했다. 항구토제가 이미 투여됐는데도 아빠는 내 팔을 부여잡고, 내 이름을 부르면서 "가현아, 어떡하냐, 어떡하냐 아이고"라고 곡소리를 냈다. 제대로 앉아있지도 누워있지도, 너무 괴로워 어찌할바를 몰라 몸부림치는 아빠를 봐야 했다.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꾹꾹 참는 성정의 아빠가 내 앞에서 저럴 정도면 얼마나 큰 고통인 걸까.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내가 아빠의 고통을 분담할 길은 없었다. 그러다 추가로 처방받은 항구토제가 좀 들었는지 1시간이 좀 넘는 몸부림 끝에 안정을 찾고 잠들었다. 잠에서 깬 아빠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항암을 받을 컨디션이 아닌가보다." 무어라 말해야 할 지 몰라서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수 초간 이어진 침묵을 깬 아빠의 한마디는 "그러면 죽는 거구나." 

 

 구역감만이 아빠를 괴롭게 한 것은 아니었다. 심적으로 제일 괴롭게 만든건 자의로 조절이 되지 않는 설사-를 비롯한 배설 행위-였다. 본인의 존엄이 무너졌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간병을 자처하면서도 내가 흔히 말하는 '똥오줌을 받아내는' 일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빠 상태가 이렇게까지 나빠질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겪어보기 전까지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줄 알았는데, 너무 아프고 힘들어하는 아빠가 먼저 보일 뿐 저런 일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항암제에 보이는 반응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항암 회차를 거듭할 수록 힘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나, 첫 회차가 가장 힘든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물론 첫 항암에 이토록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다. 지금보다 남은 회차가 더 힘들다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겠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서 지옥같은 시간도 버텨냈던 아빠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 놔버리고 싶을만큼 고통스럽다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두렵다는 말도 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 시스플라틴은 세 번 더 맞아야 하고, 6주가 예정된 방사선 치료는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 갈 길은 멀고 고통은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다. 나는 아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빠는 어떻게 이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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