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화 최준, 나랑 결혼해줘.
“어. 김하영 씨 아니세요?”
“어. 안녕하세요.”
나는 안녕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기억나지도 않았지만 일단은 그 사람의 안녕을 물어보았다.
“저 기억하세요? 열림 엔터테인먼트 면접장에서 뵀었는데... 글로벌마케팅팀 대리입니다.”
술기운 때문에 그런지,
잊어버리고 싶던 기억이어서 그런지,
그때는 보지 못하던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들은 많다면 많았다.
약간의 취기와 함께 행복해서 그런가. 떨어진 사람에게 그 사람은 말이 꽤나 많았다.
말들은 자음 모음으로 제 각기 퍼져서 웅웅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내일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저희가 그때는 비록 김하영 씨를 안타깝게 떨어뜨렸지만, 저희 팀장님이 김하영 씨를 되게 인상적으로 보셨나 봐요.
그래서 저희 일단 10개월 계약직 자리가 있는데, 하영 씨만 괜찮으시다면 같이 일해보시면 어떠시겠어요?
물론 제가 내일 다시 정식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머릿속에서 웅웅대는 말에 또 여과 없이 말이 뱉어졌다.
“최준이 거기서 일하지 않나요?”
“아. 최준 씨. 최준 씨. 그 잘생긴 분 말씀하시는 거죠. 그분도 그때 떨어지셨어요.
이후에 저희가 아이돌 해보지 않겠냐고 따로 연락드리기는 했었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으시네요.
아시는 사이인가 봐요?”
“아. 아뇨 아뇨. 잘 몰라요.”
행복한 그 사람 뒤의 또 다른 행복한 친구들이 그 사람을 자꾸만 불러댔고,
그 이질적인 눈부신 행복감은 지지부진한 현실 머리를 점차 깨워냈다.
“계약직이면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건가요?”
“아. 그 정규직 전환 여부에 대해서는... 가능성은 있습니다.
죄송한데 친구들이 자꾸 부르네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내일 다시 정식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말과 명함 한 장을 남기고, 그 사람은 행복한 친구들의 품으로 향했다.
반쯤 깨어버린 술김으로 화장실에 들어갔고, 나왔고, 자리로 향했다.
친구는 이미 그 자리에 있는 술을 다 마신 채, 엎드려 있었다.
친구 집 앞이었지만, 친구의 다리는 집으로 향할 힘도, 생각도 없었다.
주소를 물어보다가 결국 택시를 불러 자취방으로 향했다. 집 가는 택시에서 친구는 웅얼웅얼 중얼거렸다.
“ㄹ로제 떠보끼.”
“2차..로제 떠뽀끼 시켜줘 하영아. 마시때! 로로제!”
“로제 떠뽀끼 마시따더라 하용아ㅏㅏ.”
인터넷에 10개월 계약직을 찾아보니,
퇴직금도 받지 못하는데 회사에서는 정규직 전환 없이 새로 계약서만 쓰자고 할 수도 있는,
그렇게 불쌍할 수도 없는, 미물 같은 존재라고 써져있었다.
“안돼. 훔친 거래.”
반 틈난 혀로 로제 떡볶이를 시켜달라고 칭얼대는 친구의 말을 단칼에 자른 채, 최준 영상을 눌렀다.
술 먹은 꼬마 아가씨를 언제나처럼 환영하는 최준에 댓글을 남겼다.
‘최준. 나랑 결혼해줘.’
그래도 머지않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