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 나랑 결혼해줘.

#15 못한 면접에서 떨어지고, 잘한 면접에서 떨어지고.

by 들숨날숨
못한 면접에서 떨어지고,
잘한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 유진이랑 헤어졌어. 그리고 철강도 다 떨어졌어.


용기가 안 났어서... 힘들었어서 말을 못했어. 미안해. 아까도 미안해.


그냥 나는 너랑 같은 업계에서 일하면 재밌지 않을까 했는데...


아까 그 답변은 생각나는 게 너밖에 없어서... 그래서... 순간적으로 네가 준비하던 답변이 나와 버렸어.


나 정말 네가 여기 지원했을 줄은 몰랐어.” 뭐라고 말하는 준이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그저 다 엉망일 뿐이었다. 얇은 쌍꺼풀이 진 눈에 맺히던 눈물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러고서는 놀랍지도 않게 나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준이의 친구들은 준이가 열림 엔터테인먼트에서 연락을 받았다는 얘기를 애꿎게도 전해왔다.




그 뒤로 휴학을 해버렸다.


준이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 반,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 반이었다.


휴학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고,


오히려 더 안좋아질 수도 있었지만 충동은 모든 것을 저지른 후에서야 이성과 교대를 바꾸었다.


뭐. 취준이 망해서 어차피 졸업은 제 때 못할 것 같았다.


휴대폰에는 연신 최준 영상이 켜져 있었고,


예전에 같이 아이돌을 파던 친구도 최준 덕질에 합류해서 아주 외롭지는 않았다.


뭐 자기 최애가 중학교 때 학교폭력을 했다나.


그렇게 휴대폰에만 파묻힌 생활에 익숙해질 때 즈음, 한 친구가 최준에 실패했다면서 술 좀 먹자는 연락이 왔다.


오라는 술집도 학교 주변이 아닌 친구 집 앞의 조용한 가게였다. 학교 주변은 싫다고 했다.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고. 누구를 위로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옷가지를 대충 챙겨 나갔다.


소주 세 병에 맥주 네 병부터 시작했다.


우습게도 친구는 내가 취준에 실패한 걸 알고서 연락했다고 했다.




잘 살고 있는 애들 앞에서는 쪽팔려서, 엄마 아빠한테는 미안해서, 차마 얘기를 못하겠다면서.


서류에서 탈락하고, 못본 면접에서 탈락하고, 잘봤다고 생각한 면접에서도 탈락한 그 친구는 이제 자기 자신이 싫다고 했다.

“있잖아. 난 초반에는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떨어질 만한 이유가 눈에 보였으니까.


그래서 그걸 알아냈으니까 부족한 부분을 잘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렇게 서류가 몇십 개, 면접이 몇십 개 떨어지고 나니까 이제는 뭐가 부족한지를 모르겠는 거야.


남들 하는 거 다 한다고 했는데 그냥 나 자체가 좀 모자란 게 아닌가 싶어.


나는 솔직히 너처럼 하고 싶은 것도 없어. 그냥 딱 남들 사는 만큼만 살고 싶은 건데.


이제는 기대하는 것도 힘이 들더라.


못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물론이고, 잘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도 면접관의 표정, 말투, 분위기 하나하나를 다 곱씹는데 그러고 나면 잘한 게 하나도 없더라.


그러다가 다른 애들 SNS 보면 너무 한심해 보이고, 죽겠구나 싶어서 너 불렀어.


너 떨어졌다길래. 나 너무 나빴지.”


소맥을 즐겨 마시던 친구는 이미 깡소주 두 병을 혼자 털어내고 있었다.


나쁘다기보다는, 짠했다.


나 자신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나는 그저 친구 얘기를 들어주다가,

최준 영상을 추천해주고 잠시 화장실로 향했다.


잠겨있던 공용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의 얼굴은 좀 익숙했다.


그런데 술기운 탓인지, 도무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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