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도시 서울에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서울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600년 궁궐의 역사를 만났고, 전통문화와 예술이 담긴 고즈넉한 골목과 소박한 시장의 풍경 속을 걸었다. 70~80년대 감성이 담긴 복고풍 거리로 시간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여전히 다채로운 이야기가 넘쳐나는 서울, 도심 한복판 골목에 이방인이 살고 있는 이국적인 거리를 걸어본다.
이태원 이슬람 서울중앙서원
용산구 이태원, 우사단길에는 독특한 건물이 있다. 언덕을 오르면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사원이 나온다. 1960~1970년대 당시 중동지역의 석유 가격이 치솟고,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중동 건설업 현장에 뛰어들면서 이슬람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었다. 이슬람 성원은 이슬람을 믿는 국가들과 우호를 다지기 위해 1971년 우리나라에 세워진 최초의 이슬람 사원이다. 이태원 언덕에 우뚝 솟은 이슬람 사원은 돔 모양의 지붕과 아라비아 문양이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푸른 문양의 타일과 하얀 외벽이 조화를 이루며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사원 예배당에서는 매일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 기도식이 열린다. 사원 2층의 남자 예배실과 3층 여자 예배실에서 하루 다섯 번 예배를 본다.
사원 입구에 들어서니 ‘예배를 드리는 경건한 장소이므로 짧은 치마와 바지, 민소매 셔츠, 비치는 옷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상대의 문화를 존중한다면 옷차림에 신경 써서 방문하는 것이 매너가 아닐까 싶다.
입구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높게 솟은 첨탑 사이로 파란색 문양의 기둥과 외벽의 무늬가 아름다운 이슬람 사원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낯선 아랍어도 곳곳에서 들려온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서울 한가운데인가.’하고 의심이 들 정도다. 예배당 앞 계단에 서면 오래된 주택과 높은 빌딩이 공존하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다보인다.
사원을 나와 이태원역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터키, 이집트, 파키스탄 등 이슬람계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을 더 많이 마주친다.
이태원 베트남 퀴논 길 테마거리
퀴논은 베트남 동부 해안의 아름다운 휴양도시다. 용산구는 베트남 퀴논시와 자매결연 20주년을 기념하면서 2016년 10월, 이태원에 퀴논시 골목을 옮겨놓은 듯한 ‘베트남 퀴논 길 테마거리’를 조성했다. 이태원에 베트남 퀴논 거리가 들어선 이유는 베트남 전쟁 당시 퀴논에 우리나라 맹호부대가 주둔했기 때문이다. 맹호부대는 용산에 창설된 부대였다. 최대 격전지였던 퀴논과 용산구는 전쟁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화해의 의미를 담아 이태원에는 퀴논 거리, 퀴논에는 용산거리를 만들었다.
베트남 퀴논 길 테마거리는 베트남 풍경이 그려진 벽화로 단장했다. 오래된 주택의 골목 담장에는 베트남 농촌 풍경이 펼쳐지고, 베트남 전통모자, 논(non)을 쓴 여인이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벽화 그림은 베트남 출신 이주민들이 그렸다. 퀴논 거리의 돌바닥에는 베트남 국화인 연꽃이 수를 놓는다. 거리 한복판에 마련된 퀴논 정원에는 논(non)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서 있다. 곳곳에 있는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면 베트남 문화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퀴논 거리에 베트남 향기를 입히는 중이지만 베트남 음식을 맛보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진다.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
중구 광희동에는 ‘동대문 실크로드’라 불리는 중앙아시아 거리가 있다. 1990년대 초, 우리나라와 러시아가 수교를 맺으면서 동대문 시장에 물건을 사러 온 러시아 상인들이 이 일대로 모여들었다. 그 후로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몽골 등 중앙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동대문 시장의 뒷골목, 광희동은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생활을 위한 무역회사, 음식점, 식료품점 등이 문을 열었고, 중앙아시아 거리로 변모했다.
거리에는 도통 알아볼 수 없는 키릴 문자가 적힌 낯선 간판이 줄지어 있다. 그래서 골목은 더 이국적인 냄새가 난다. ‘사마리칸트’라는 간판의 음식점이 많은데, 중앙아시아 거리의 대표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현지인이 진흙으로 만든 화덕에서 우즈베키스탄 전통 빵을 직접 굽는다. 화덕에서 구워지는 빵을 신기한 듯 바라보니 마치 우리가 이방인인 듯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주인이 친절하게 맞이한다.
러시아 생필품 마켓에서는 청어 통조림, ‘케피르’라 불리는 고등어, ‘깔바싸’라는 소시지 같은 가공식품과 보드카를 판매한다. 러시아 전통인형으로 꾸며진 가게는 실제 러시아의 어느 마켓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키릴 문자가 함께 쓰인 한식당도 많이 있지만 이 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우즈베키스탄 양고기 꼬치와 바비큐, 중앙아시아의 국수, 몽골식 양고기 요리인 호르호그 같은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이다. 골목의 오래된 한옥과 고향에 대한 향수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화덕이 어우러진 풍경은 이색적이다.
동대문 네팔 음식 거리
동대문역 3번 출구로 나와 창신동 골목시장으로 들어서면 그 옆길에 네팔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봉제 공장이 많은 창신동에서 외국인 이주자들이 봉제 일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특히 네팔인 이주노동자를 위해 문을 연 식당들이 많은 이곳을 ‘동대문 네팔 음식 거리’라고 부른다. ‘네팔거리’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지만 동대문 일대는 네팔 사람들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서울 한복판 오래된 골목에 세계의 지붕, 네팔의 히말라야 산맥이 펼쳐진다. 좁은 골목에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같은 장대한 산맥의 이름이 걸려 있다. 에베레스트는 우리나라 네팔 음식점의 원조다. 인도 카레의 원조인 네팔식 카레가 맛있다. 탄두리 치킨과 네팔 전통음식을 파는 이곳은 동대문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일이 끝나는 주말이면 네팔인들이 동대문 네팔 음식 거리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거리는 열심히 일한 네팔인들이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쉼터 같은 곳이다. 네팔 음식점에서는 네팔인들의 결혼식이 진행되기도 한다. 좁은 골목의 잡화점에서는 식료품이나 과자, 향신료 같은 소박한 네팔 물건을 판매한다.
골목 담장에는 어느 레스토랑 열리고 있을, 이주노동자를 위한 네팔 연예인 공연 포스터도 붙어 있다. 네팔 음식 거리의 작은 음식점마다 네팔 음악이 흘러나오고 네팔 민속 공예품들로 장식해 놓았다. 그들이 믿는 불교와 힌두교의 여러 신도 모셔 놓았다. 동대문 골목은 네팔인들의 향수가 묻어나는 작은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