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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리 Nov 13. 2019

#8.

- 가장 미안한 것



 지방에서 볼일을 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이었다. '후드득' 무릎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그 사람에게 미안한 일이라면 차고 넘쳐왔지만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불현듯, 그 사람의 고통이 내 것인 양 가슴이 아프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선생님은 분노조절에 문제를 가진 사람이었다. 여자를 때리지는 않았지만 물건을 깨부수거나 고함을 치는 일은 곧 잘 있어왔기에 그 사람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해왔다. 어디서든 가리지 않고 내비치는 정색 모드에 상처 받았던 일들도 다 예전 일이 될 만큼 지금의 나는 쌤의 들끓는 감정에 적응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도 인간이지 아니한가, 내 마음에 쌓이는 서운함과 속상함 들을 전혀 표현하지 않고 삭힐 만큼 내가 어른이지는 못했다. 나는 줄기차게 편지를 쓰곤 했다. 당신의 이러이러한 행동에 나는 이러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며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나에게 끼쳐질 부정적인 영향들에 대해 구구절절이 편지를 써 내려갔다.


 처음 장문의 편지를 보냈을 때 나는 그 당시까지 본 것 중 최고의 분노를 목격할 수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똑같이 언성을 높여 화를 낸 것도 아니고 유치한 말싸움을 늘여놓은 것도 아니고 타인들 앞에서 깎아내린 것도 아니며 실질적인 피해를 준 것도 아닌, 우리의 관계를 위한 나의 조용한 노력에 이런 화를 낼 수 있다니. 이해는커녕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마음의 외침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2~3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편지 쓰기를 그만두었다. 아니, 편지를 선생님에게 보내는 일을 그만두었다. 선생님이 자주 사용하지 않는 계정의 메일로 편지를 보내다가 깊은 내용이 없는 가벼운 내용의 카드만을 보내다가 지금은 그저 묵묵히 써 내려간 편지를 그에게 부치지 않고 혼자 간직한다.


 처음 편지를 받은 선생님은 내가 쓴 한 문장 한 문장을 반박했다. 자신의 마음이 아팠던 것만큼 나도 괴로워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듯 자신이 하는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다. 내가 더 장문의 글을 써서 보냈을 때, 그는 공황발작을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갔다. 편지를 보낸 후 내가 다시 말을 붙이면. "그런 말들을 하고 나를 다시 만나겠다는 거야?"라고 진심으로 물었다. 나는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보낸 편지였는데 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 상황들을 편지라는 매개체로 해결해왔기 때문에 그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4년의 시간이 걸렸다. 마흔이 넘은 남자, 자신이 세워둔 벽들로 언제나 바리케이드를 두르고 있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자신이 40년 동안 세우고 지키고 고치며 만들어온 벽을 자꾸만 허물려는 나는 그의 인생에 허가될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심장이 아프다. 사실 돌이켜 보면 선생님을 알게 된 지 1년 차에 내가 했던 말들은 하지 않았어도 될 말들이 많았다. 지금까지도 변화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하고 내가 적응하고 이해해버린 일들, 그리고 반대로 내가 선생님의 입장에서 얼마나 방해 자였는지에 대한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그 마음들을 전해 그를 그토록 아프게 만들지 않아도 좋았을 거였다. 이것이 내가 그에게 가장 미안한 일이다.


 그럼에도 편지를 받고 시간이 흐르면 선생님은 내가 하지 말아 달라는 행동에 변화를 주었다. 그 행동을 완전히 소거하거나 좀 더 부드럽게 대처했다. 그러려고 노력해 주었다.

 또한 내게 미안하다고 말로 사과했다. "너의 말이 맞아... 그래서 더 아팠어"라고 고백,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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