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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리 Nov 12. 2019

#7.

- 사치스러운 사람


 나의 사치성이란 가히 알아줄만하다. 음치, 박치, 길치, 방향치. 이 네 가지에 있어서는 감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사람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길 찾기의 달인이다. (선생님의 완벽성이 이뿐 만이겠냐만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은 인생에 두지 않을 정도로 계획되고 정돈된 생활을 살아가신다. 심지어 자신의 계획을 허무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 관계를  정리할 정도이다.



 그런 그가 헤매기 대왕인 (그의 곁에서 살아남은) 나를 만났으니 선생님의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생님과 통화를 하며 그의 가르침대로 길을 가면서도 미아가 됐던 순간에, 나는 세상에서 처음 느껴보는 분노를 당해야 하기도 했다. 

(수원행이 아닌 천안행을 탔다가 한 시간을 울었던 기억이 있다... 길 잃어서 당황한 건 나인데 쌤에게 얼마나 혼났던지. )

 

 지금은 서로의 그런 성향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피곤해도 나는 환승하는 코스를 선택하기도 하고 중앙차선에서 버스를 탈 때에는 정류소 번호를 확인한다. 40분 이상 장거리를 이동할 때에는 선생님에게서 기상 전화가 오고, 배차시간에 오류가 생기면 전차를 먼저 보내고 후발 차를 태워 앉아 갈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일렬의 과정 없이, 그저 내가 버스를 탔다고 말을 했을 뿐인데도 선생님은 내가 탄 버스의 번호를 알고 그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오신다. 


 나는 빠르게 목적지로 가는 것보다는 가끔은 차를 놓치고, 헤매던 길에서 소소한 골목길을 발견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환승구에서 긴장하고 불안에 떠는 것보다는 돌고 돌아 한 시간 반짜리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맘 편한 사람이었지만 확실히 쌤의 방법이 돈과 시간과 체력의 소모가 눈에 띄게 차이 난다는 것을 인정한다. 


 5년 차가 되니 가끔은 이런 선생님이 조금은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청소년 시절부터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야 했던 나에게 가야 할 길을 정해주는 선생님의 제안과 선택들은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절절한 달콤함과 안정감을 선사해 준다.

 이렇게 노력해주는 선생님에게 나는 단 한 가지의 일만은 꼭 해야 한다. 

선생님, 저 집에 잘 들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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