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유리 Apr 08. 2018

3.5화  거식증, 왜 때문이죠? - (2)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K는 극도로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성격도 예민하고 감각 또한 예민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K를 위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늘 초비상 상태였다. K는 버스에서 내려 목적지로 가는 걸음 수를 세곤 했다. 가장 빠른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의미를 부여한 색색의 펜들로 흐트러짐 없이 필기를 했으며 언제나 자를 대고 줄을 그었다. K가 지닌 책이나 휴대폰, 각종 IT 기기들은 시간이 얼마가 지나든 모두 새것 같았다. 민법과 세법을 꿰고 있었는데 이 또한 자신이 손해 보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자기 관리도 그만큼 철저해서 자신이 정해놓은 룰을 어기는 적이 없었다. 그래서 K는 사회적으로 이룬 것이 많았다.

 K의 그런 까다로운 성격과 본인에게도 너무 높은 삶의 기준들 때문에 K주변인들은 그를 어려워하곤 했다. K가 주변인들에게도 무리한 기준을 강요하니 견뎌내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K의 말은 옳았지만 K가 제안하는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늘 한계에 부딪쳐야 했다. 목표한 지점에 올라서기까지 가혹한 채찍질을 반복했고 과정보다는 결과와 성과물로 판단했다.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 칭찬보다는 채찍. 그것이 K의 세상이었다.

 K의 이런 완벽주의와 강박적인 행동들은 모두 아버지를 닮은 것이었다. 일찍이 상경해 자수성가한 아버지가 장남인 K에게 보여준 모습과 기대들이 고스란히 K안에 내사되었다. K의 주변인들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그 높은 기준들이 어린아이에게 일상적으로 강요된다면 어떠하겠는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면 또다시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고 모진 채찍질 속에 매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면? 행여 실패라도 하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할 정도의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면? K의 아버지는 유독 자신을 닮은 어린 K를 그런 방식으로 사랑하셨다. 성인이 된 K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K는 버거워하면서도 아버지의 기대에 어떻게든 부응하려 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그러나 16살, K는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았고 유지하기도 힘에 부쳤다. 공부 외의 만화와 소설에 관심이 갔고 그렇게 한번 떨어진 성적은 회복되지 못했다. K는 결국 특목고가 아닌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때부터 K는 자신과 다르게 큰 부담감 없이 이쁨만 받는 남동생이 부럽고 미워졌다. 평소에도 무뚝뚝한 아버지의 성품이 진학의 좌절 후론 더 냉랭하게 느껴졌고 결국 K는 밥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이미 고등학생 때 183센티였던 그는 50킬로대까지 체중이 빠졌다. 외모에 남다른 센스를 발휘하시던 어머니의 영향과 맞물리면서 K가 자신의 마음을 방어하며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거식증이었다.




2016년도에 끄적인 먹는 것에 대한 짧은 낙서.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이유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앞서 소개한 세 개의 사례는 물론이고 나 역시 하나의 이유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생물학적 요인, 신경증에 취약한 성향, 외모에 대한 가치 기준, 사랑에 대한 갈구, 존재감을 느끼기 위한 잘못된 선택, 자기 파괴 행위 등 많은 부분이 맞물려있다.

 위의 사례를 서술한 것처럼 간략하고 객관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무리가 있다. 현재 거식증을 극복한 것도 아니며 아직 내가 직면할 수 없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반대로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치기 때문에 한 번에 모든 것을 읊을 수 없기도 하다. 하여 보다 찬찬히 내가 9년간 거식증을 앓으며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해 고백해보고자 한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다. 피곤해도 약속을 잡았고 최대한 혼자 있는 시간을 줄였으며 술도 외로움을 달래다 보니 늘게 되었다. 20대 초반, "여자에게 외모란 권력" 이란 말을 격하게 공감했다. 내가 예쁘면 나는 혼자이지 않을 수 있었다. 공허한 나의 마음은 한 두 명과의 관계로는 전혀 채워지지 않았고 다수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그 관계의 질이나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었다. 진솔함이 부족한 관계에서 상대가 내게 원하고 기대하는 것 역시 표면적인 것에 머물렀다. 결국 많은 만남을 가져도 마음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고 외로워서 사람을 만나지만 만날수록 더 외로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나는 그들이 더 자주 나를 찾고, 더 깊이 좋아해 주길 바랐고 그런 갈망은 비뚤어진 방향으로 나아가 외모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처음 식욕을 절제하려 했을 때 의도적으로 우울해지려고 노력했다. 즐거운 일 보다 고된 일이 더 많은 일상이어서 그런지 그게 가장 쉬웠다. 그러다 보니 먹는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식사를 바로 앞에서 지켜봐도 배가 고프기보단 '엄청 잘 먹네. 맛있나?'라고 냉소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게 9년 차가 되자 지금은 사람이 밥을 먹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 되었다.

'어떻게 저렇게 먹지. 어떻게 저렇게 많이 먹지. 저걸 어떻게 다 소화하지. 먹는 게 그렇게 큰 기쁨인 건가.'

 자고 일어나 또다시 끼니를 챙겨 먹는 것이 신기하고 음식 앞에서 열광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일 인분의 밥을 다 먹는 사람들이 신기해져 버렸다.

인간은 외부에서 영양소를 섭취하지 않으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 수 없죠.
기름 없이 차가 굴러가지 않듯이요.  


 새삼 놀라울 것 없는 위의 말을 듣고 나는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아. 그렇구나.'라고 탄식했다. 인간에게 당연한 먹는 일이 내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이것이 9년간 스스로 세뇌시킨 결과였다.

 서른을 기점으로 더 이상 자살을 생각하진 않지만 20대 때에는 늘 자살을 생각해왔다. 죽음을 희망하면서 음식을 먹는다는 게 내겐 너무 큰 모순이었고 이 생각은 식욕을 떨어트리는데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나는 무력감에 잠식당한 사람이다. 어린이였을 때 신체적 학대를 꽤나 오래 받았다. 사람이 맞고 또 맞다 보면 후에는 반항하거나, 살려고 도망치거나, 비명을 지르며 우는 일 따위도 하지 않게 된다. 주로 학대받던 장소인 세로로 긴 지하실. 그곳을 달려서 문에 도달해봤자 네 개나 되는 잠금장치를 다 열수가 없었다. 내 등 뒤로 여유 있는 걸음 소리가 들리고, 나는 다시 지하실 가장 안쪽으로 질질 끌려갔다. 영겁 같은 학대의 시간이 끝나고 피떡이 되어 실려 나올 때마다 날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빛들이 사진처럼 내 마음에 남아있다. 

 절대 도망갈 수 없다는 무력감. 힘으로 대적할 수 없다는 무력감.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는다는 무력감.

 건장한 성인 남성에게 학대받은 기억은 살면서 그와 비슷한 모든 순간에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고 도움 요청의 개념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억울한 누명, 권위자의 부당한 명령, 동성 친구들의 이간질, 가난, 육체적 고통 앞에서 나는 먼저 포기하고 당하기만 한 채 나를 돌보지 못했다. 

 이렇게 무력감이 팽배한 나에게 두 가지 기쁨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공부와 거식행위였다.


 공부는 내가 한 만큼 내게 돌아왔다. 내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만큼, 딱 그만큼 결실이 되어 돌아왔다. 손해 보거나 당하거나 억울할 일이 없었다. 먹는 것 역시 그러했다. 먹지 않으면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났고 주변의 부러움과 관심까지 받을 수 있었다. 내 몸. 그리고 내가 섭취하는 것. 그 어떤 외부의 압력이나 영향 없이 완벽하게 나 혼자 통제가 가능한 것이었다. 무엇 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무엇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음식을 통제하는 것은 가장 쉽고 빠르게,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거식증에 중독되었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자격증 시험을 본 뒤 곧바로 취업을 했다. 그 과정이 결코 쉽거나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넘쳐났고 졸업 논문을 쓸 때에는 난독증을 겪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취업까지 이뤄낸 게 기쁘면서도 나는 무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건 아닌데'라는 말을 습관처럼 읊조렸다. 그렇다고 멈출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어렵게 여기까지 왔고 무엇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내가 서 있던 곳은 19살의 내가 꿈꾸던 곳이었다.

'지금도 많이 늦었어. 나는 평범하게 살아온 인생은 아니니까. 평균을 따라잡으려면 아직도 멀었지. 이제야 제대로 돈을 버는데 망칠 수 없어. 내가 얼마나 하고 싶던 일이야. 나는 꿈을 이룬 거라고. 어서 내 집 장만을 해야 하는데. 상처는 많고 가진 것은 없는, 결혼도 못할 인간이잖아 나.'

이런 생각을 하며 버텨나갔다. 나를 학대하고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화물차처럼. 간절히 누군가 날 멈춰주길 바랐다. 내 의지로 멈춰서 날 돌볼 수 없으니 차라리 몸이라도 망가져 쓰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더 먹지 않았다. 2시간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하고 하루 종일 물만 마셨다. 나는 환자가 되고 싶었다. 환자가 되어야만 했다.


 나는 K처럼 강박적으로 나를 통제하며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를 방어했다. A처럼 거식증이 있어 힘들면서도 거식증을 필요로 했고 그래서 E처럼 2차적 강화에 중독되어 거식증을 이용하는 지경이 되었다. 퇴사하고 투병 생활을 이어나가는 지금도 온전히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아직은 내게 미안하다고 할 수 조차가 없다. 나 자신에게 가장 학대받았던 나를 마주할용기가 없는 것이다.



이전 04화 3화  거식증, 왜 때문이죠? -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