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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리 Apr 12. 2018

4화  망가지고 잃어버린 것들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나는 프롤로그에서 브런치에 쓰는 글들이 이기적인 글쓰기가 될 거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다. 거식증 환자들은 건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체중 증가에 큰 두려움을 느낀다. 어느 정도 지방이 있는 몸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몸에 붙는 지방은 용납하기가 어렵다. 의지를 가지고 치료에 돌입한다 해도 병원에서 만나는 다른 거식증 환자들의 몸무게를 확인하고 스스로와 비교한다. 심지어 자신이 너무 나태했다는 죄책감마저 갖는다. 극심한 저체중이 아닌 거식증 환자들을 속으로 비난하기도 한다. 이런 양가적인 마음과 괴로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고백들이 누군가에게는 비교의 대상이 되고 채찍질이 되며 나아가 거식행위를 이어나가는 여러 방법에 대한 배움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기적인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자 4화에서는 내가 거식증 때문에 잃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사람이 밥을 먹지 않으니 점점 예민한 성격이 된다. 허기지고 기운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만 칼로리 계산에 대한 강박 때문에 늘 신경이 곤두서고 짜증이 많아졌다. 칼로리 계산은 내가 먹은 것들, 먹을 것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내 기초대사량과 섭취한 칼로리를 계산하고 마신 물의 용량과 배출한 소변의 횟수를 칼로리로 계산한다. 앉아있는 자세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걷고 뛴 거리와 시간, 운동량 또한 당연히 계산한다. 내가 선택해서 먹게 된 것들의 칼로리를 안전하게 소모시키려는 것도 힘든데 억지로 섭취하게 된 음식이 있을 때에는 그 죄책감이 두배 더 커진다. 이미 했던 칼로리 계산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해서 하다 보니 예민함은 점점 더 켜졌다.


 음식을 거부하려는 부단한 노력으로 결국에는 배고픔마저 느끼지 못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음식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눈 떠있는 모든 시간에 음식에 대해 생각한다. 예전에 먹었던 요리들을 떠올리며 맛을 상상하고 요리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정갈한 음식 사진들을 모은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요리를 고민하고 어떤 조리 방법을 통해 칼로리를 더 낮출 수 있는지 연구하며 끊임없이 음식에 대해 생각한다.


머리카락이 얇아지고 탈모가 왔다.


 퇴사 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어느 날, 나는 과자 한 봉지를 다 먹는 용기를 발휘했다. 놀랍게도 그다음 날 나는 양쪽 턱에서 근육통을 느껴야 했다. 그만큼 씹는 근육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을 달고 살고 조금만 음식을 먹어도 더부룩함을 느꼈다. 심리적인 이유가 크겠지만 신체적으로도 위의 기능이 점차 약화되어왔다. 나트륨을 극단적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쉽게 부종이 오는데 이 또한 살로 느껴져 혼자 몹시 괴로워하고 또다시 가혹한 단식에 돌입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매일 넘어진다.


 많은 거식증 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방이 없는 몸은 심하게 추위를 탄다. 옷을 껴입고 껴입어도 손과 발이 따듯해지기 어렵다. 손난로를 박스로 구입해서 몇 개씩 가지고 다니면서도 덜덜 떤다. 껴입은 옷이 너무 무거워서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운동이 될 정돈데 36킬로일 때는 덮고 자는 이불도 무겁게 느껴지곤 했다.


 앙상하게 뼈만 남아있는 몸은 어디에 앉거나 눕는 것도 불편하게 만든다. 앉으면 의자 표면과 나의 엉치뼈가 피부를 누르고 누우면 꼬리뼈가 나를 찔렀다. 옆으로 돌아 누우면 내 갈비뼈가 날 공격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기지도 못했다. 어떤 자세를 해도 뼈에 눌려 고통스러웠다. 당연히 생리도 하지 않았고 호르몬이 돌지 않으니 성욕도 잃게 되었다.


제거 행동 때문에 손에는 굳은 살이 가득하다.


 이런 신체적인 고통 외에 사회적 기능 역시 회복할 수 없다고 느낄 만큼 망가졌다. 직장에서 사람들은 어울려 식사를 한다. 여행을 가면 사람들은 먹는 것에 큰 가치를 둔다.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사람들은 함께 식사를 한다. 애인을 만나서 주로 하는 것도 식사이다. 영업이나 대접을 할 때에도 식사자리가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나는 커피숍과 술집 외에 사람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데이트를 해도 함께 식당에 갈 수 없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도 갈 수 없다. 이런 행동을 매번 변명하고 설명할 수 없기에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모시던 교수님이 교수직에서 물러나시는 날, 내게 두 손 두발 다 들었다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자네는 식사를 안 하니까 굳이 식사자리를 갖지 않아도 되겠지?


 지인을 커피숍에서 만나면 두세 시간 안에 헤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더 흐르면 상대는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긴 시간을 함께 해야 할 때에는 술을 함께 판매하는 식당을 간다. 상대는 밥을 먹고 나는 맥주를 마신다. 그러나 누가 봐도 병리적인 행동이라 이 방법도 매번 반복할 수는 없다. 직장 동료들은 단 한 번도 내가 밥을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결국 정신병자로 몰리고 (사실이니 몰렸다고 할 수도 없다.) 자격을 논할 수밖에 없었다.  


 내 심리적으로는 또 어떠하겠는가. 내 외모에 절대로 만족하지 못한다. 늘 불안하고 불만족스럽다. 예전에는 43 킬로면 '됐어. 이 정도면 그래도 말랐어.'라고 생각했지만 36킬로를 경험하고 나니 40킬로의 몸도 뚱뚱해 보였다. 체중계를 모두 갖다 버린 것도 하루에도 수십 번 체중을 확인하고 좌절하기 때문이었다. 오래된 나의 친구는 내게 말한다. 예쁘고 아름다운데 본인만 그 사실을 모른다는 건 저주라고.


 몸도 마음도 깊이깊이 병들어 간다. 주위 사람들이 지쳐서 모두 떠난다. 변화하고 싶다. 건강해지고 싶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살찌는 것이 실패인 것처럼 느껴진다. 먹지 않아 생기는 문제라는 걸 알겠는데 먹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다. 나도 나에게 지쳐간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이겨낼 것이다.


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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