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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신혼여행은 오직 둘만의 것

by 넙죽

신혼여행만큼은 온전히 부부만의 것으로


결혼을 준비하면서 느낀 것은 결혼식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체면을 위한 일종의 의식 같다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사회적인 제도를 통해 누군가의 남편이라는 사회적 역할 하나가 더해지고 그것을 가족과 주변의 지인들에게 공포하고 승인받는 의식. 분명히 사회적으로 필요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혼식 준비가 너무 힘든 나머지 그냥 둘이서 혼인 신고만 하고 살면 안 되는 것일까라는 마음이 더 컸다.


청첩장을 돌리면서 만난, 이른바 먼저 결혼한 선배들의 경험담에 의하면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네가 신혼여행을 떠나는 그 순간에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당장 그 순간에는 '너무 힘들어요 형.' '원래 다 이런 것인가요.' 등의 푸념을 늘어놓으며 나이에도 맞지 않는 어리광을 피워댔지만 결혼을 준비하며 힘든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선배들의 그 말 한마디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그 순간들을 이겨내 갔다. 결혼식이 끝난 후 맞이할 우리 둘만의 신혼여행을 위해! 어쩌면 결혼식 보다도 신혼여행이 우리 부부에게는 우리가 결혼했다는 것을 실감시켜 줄 그런 의식일 것만 같았다.


왜 이탈리아였는가


일생의 한번뿐인 신혼여행이다 보니 여행지를 고르는 데에 있어서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어렵게 얻은 장기 휴가이다 보니 평소에는 잘 가기 힘든 유럽을 여행지로 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 사실 아내는 결혼식 준비로 힘이 들어 하와이와 같은 휴양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지만 유럽에 대하여 낭만을 가지고 있던 나의 사심 섞인 설득으로 아내의 마음도 유럽 쪽으로 돌아섰다. 중요한 문제는 수많은 유럽의 국가들 중에서 어떤 국가를 가는 가였다. 이 부분에서는 이미 나에게 한 번의 양보를 해준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아내는 이탈리아를 자세히 보고 싶다고 했다. 사실 장인어른께서 승무원이시기 때문에 어린 시절 해외 이곳저곳을 다녀 본 아내라 로마 같은 이탈리아의 대도시는 가 본 모양이었지만 아버님의 비행 일정에 맞추어 짧게 여행해야 했기 때문에 구석구석 살펴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나 또한 이탈리아를 신혼여행지로 정하는 데에 찬성이었는데 유럽 내에서 이탈리아만큼 인문학적 요소가 풍부한 나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이라는 지역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서 고대 로마 제국의 영향을 빼놓을 수는 없고, 르네상스라는 인류 문화의 한 획을 그은 또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낸 국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많은 도시국가로 나뉘었던 역사가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지역색이 강하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각 도시마다 다채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부부만의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


새벽부터 일어나 샵에 가서 머리를 다듬고 화장을 하는 등의 꽃단장을 하고 예식장에 도착했다. 식장을 찾아주신 고마운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어느덧 신랑 입장을 할 시간이 되었다. 예식이 치러질 홀의 문 앞에서 대기하면서 생각했다. 이 문을 지나면 이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될까. 물론 아닐 것이다. 그저 내 사랑스러운 아내의 배우자라는 지위만 덧대어질 뿐. 하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 입술이 바짝 말라만 갔다.


홀의 문이 열리고 예식장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입장했다. 홀 안은 매우 어두웠고 나는 도중에 걷다가 넘어지는 참사를 막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며 걸었다. 중간에 사회자의 능글맞은 멘트가 있었다고 했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이윽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아내가 장인어른의 손을 잡고 입장했고 나는 그 손을 건네받고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아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성혼선언문도, 축사도, 아름다운 축가도 이어졌지만 그 공간에는 마치 아내와 나만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둘만의 시간이 아마 이때부터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혼식이 끝나고 모든 긴장이 풀려 탈진하듯이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두 개의 큰 여행가방을 끌고 우리는 이탈리아를 향해서 가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 라운지에 앉아 그동안 결혼식장에서의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을 위해 미뤄왔던 식욕을 폭발시키듯이 음식을 먹었고 비행기에 탑승해서는 그동안 바빠서 보지 못했던 수편의 영화들을 몰아보았다. 그리고 잠에 들었다 깨기를 수차례 반복한 끝에 우리는 그동안 꿈꾸던 신혼여행지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그동안 바랐던 우리 둘만의 시간이 비로소 다가온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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