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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지역별 요리(베네치아, 밀라노)

바다의 맛, 도시의 맛

by 넙죽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요리


이탈리아 반도 동쪽의 바다, 아드리아해를 앞마당에 둔 베네치아는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가 유명하다. 토스카나의 피렌체가 육류와 농산물로 유명한 것과 대조적이다. 도시의 입지조건이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식탁에도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그 때문인지 베네치아에서 맛본 요리들은 해산물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피렌체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베네치아에 도착한 후 처음 맛본 베네치아의 음식은 해산물 튀김이었다. 때로는 거창한 요리보다 소박한 스트리트 푸드가 사람들의 영혼을 더 울리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앉아서 먹을 자리조차 없는 테이크 아웃 가게였지만 서서 먹는 수고로움을 더하면서도 먹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가격도 8유로 정도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베네치아의 해산물들을 골고루 먹고 싶었기 때문에 모둠 튀김을 시켰는데 그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고소한 새우, 부드러운 오징어, 바삭하면서 독특한 풍미를 주는 송사리까지 한 가지 맛이었으면 질렸을 수도 있었겠지만 다양한 맛이 입에서 춤추었기 때문에 질릴 틈이 없었다.



해산물 튀김.jpg 보기보다 알찬 구성, 뜻밖의 포만감


베네치아에서 맛본 두 번째 요리는 '주파 디 페스케'라는 이름의 생선 수프였는데 홍합, 대구 등의 해산물에 토마토 등을 넣어 끓인 수프였다. 사실 토마토 대신 고춧가루를 넣고 콩나물과 무를 넣었으면 딱 매운탕 맛이긴 했다. 그동안 밀가루와 육류만을 먹어서 그런지 속을 풀어줄 국물요리가 절실했는데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국물요리에 대한 갈망을 해소시켜준 셈이 되었다. 맛이 개운하고 또 시원했다.



주파_디_페스케.jpg


베네치아에서 만난 세 번째 요리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이다. 오징어의 생존수단인 먹물을 처음 먹을 생각을 한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아마도 어지간히 굶주렸거나 기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면 전체가 까만 먹물로 덮여 사실 겉모습만 보기에는 짜장면이랑 큰 차이가 없다. 짜장면처럼 후루룩 한입 가득 밀어 넣어본다. 오징어 먹물의 짭조름하면서 고소한 맛이 입에 감돈다. 가끔 씹히는 오징어 살도 치아가 부드럽게 들어갈 만큼 연하다. 또 면은 어떠한가. 이탈리아를 여행 다니면서 온갖 파스타를 다 먹어봤지만 파스타의 제왕은 역시 스파게티이다. 양념을 잘 빨아들이는 것은 물론 입술에 닿는 면의 식감이 너무 훌륭하다. 이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스파게티가 제일 인기가 좋은 모양이다. 우리가 즐겨먹는 국수와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도 그렇다. 인기가 좋은 상품이 낭패를 볼 확률이 낮다. 집단 지성은 언제나 옳다.



스파게티_콘_레_세피에.jpg 누가 봐도 짜장면 같은데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스파게티 콘 레 세피에, 프리미)란다.


베네치아에서 유명한 해산물은 또 있다. 이른바 '바칼라'라는 대구요리인데 대구살을 잘 으깨어 먹기 부드럽게 만들어 놓았다. 특히 이 바칼라와 '폴렌타'라고 하는 옥수수가루로 만든 빵을 같이 내놓는 요리가 베네치아 지역에서 유명하다고 한다. 바칼라만을 먹기에는 과하게 짜다는 느낌을 받지만 옆에 같이 놓인 맛이 심심한 폴렌타 위에 얹어먹으면 간이 딱 맞는다. 사람도 음식도 그래서 궁합이 중요한가 보다.


바칼라_콘_폴렌타.jpg 바칼라 콘 폴렌타(세콘디)


베네치아가 역사적으로 해산물이 유명하지만 또 해산물이 아닌 요리도 유명하다. 베네치아 전통방식으로 조리한 소간 요리이다. 전통방식으로 조리했다고는 하나 양파와 소간을 같이 볶아 낸 정도이기는 했다. 역시나 이 요리에도 옥수수 가루를 반죽해 구워낸 옥수수빵 '폴렌타'가 빠지지 않는다. 나는 한국에서도 그렇고 해외에 나가면 동물의 내장으로 만든 요리 특히 간을 재료로 한 요리가 있으면 꼭 주문하는 편이다. 내가 간이 약해서 그런 탓인지 동물의 간으로 조리한 요리에 조금 더 강한 감칠맛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네치아의 소간 요리인 '페가토 알라 베네치아나'는 내 입맛에도 조금 비렸다. 폴렌타와 함께 먹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은 했지만 말이다. 마치 소 곱창 집에서 서비스로 주는 소의 생간을 불판 위에 살짝 구운 맛 같았는데 처음에는 맛있었지만 계속 먹다 보니 물리는 맛이었다. 여럿이서 한 접시를 두고 맛보는 정도면 좋을 것 같은 요리이다.



페가토.jpg 페가토 알라 베네치아나 콘 폴렌타(세콘디)


도회적인 도시, 밀라노의 요리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다가 밀라노에 도착하면 중세와 르네상스의 시대에서 현대로 순간 이동한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유럽 도시의 이미지와 걸맞는다고도 할 수 있는데, 너무나 세련된 도시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중앙집권 국가들 사이에 있어서 그런지 외침을 많이 당했고 그 때문에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들과는 다른 식문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밀라노에서 맛본 요리 중 첫 번째는 '오소부코'와 '리조토 알라 밀라네제'이다. 오소부코란 소의 뒷다리 중 정강이 부분을 와인을 넣고 푹 쪄서 만든 요리이다. 주로 토마토소스에 버무려서 나오기도 하는데 고기의 맛이 부들부들 연하니 맛있다. 뼈해장국에 들어있는 큰 뼈에 붙어 있는 살코기의 맛과 비슷하다. 여행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무슨 요리이던 한국의 요리와 비교하는 습관만 생겨서 큰일이다.


오소부코는 밀라노식 리조토인 리조토 알라 밀라네제와 단짝이다. 밀라노식 리조토는 고급 향신료인 샤프란이 들어가는데 그 때문에 샛노란 색을 띤다. 스페인의 쌀요리 빠에야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이 둘의 큰 차이는 빠에야는 쌀알의 결이 살아있는 맛이라면 밀라노식 리조토는 그 맛이 조금 더 부드럽고 크리미 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상대적으로 추운 날씨인 이탈리아 북부지방은 남부지방이 올리브유를 쓰는 대신 버터를 더 많이 사용하는데 그 때문에 맛이 더 부드러운 것 같다.



오소부코와_리조토.jpg '오소부코'와 '리소토 알라 밀라네제'(세콘디)


밀라노에서 맛본 두 번째 요리는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라는 요리이다. 이 요리는 쉽게 이야기하면 송아지 고기로 만든 커틀렛이다. 옛날 경양식집에서 팔던 비프 커틀릿 또는 한동안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일본의 규카츠와 비슷한 느낌이다. 취업에 성공한 후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던 아내는 이 요리를 보고 오스트리아의 '슈니첼'과 똑같은 요리라고 했다. 아무래도 오스트리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밀라노이다 보니 비슷한 요리가 밀라노의 식탁에 오르게 된 것 같다. 처음에는 평소 먹던 돈가스와 큰 맛의 차이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튀김 요리임에도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었다. 튀김옷이 생각보다 얇고 튀김옷 안의 고기가 알맞게 익어있었으며 간도 딱 맛았다. 일단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이라는 튀김요리의 기본을 너무나 잘 지켰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요리였다.


커틀렛.jpg 슈니첼과 유사한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세콘디)


겉바속촉.jpg 튀김의 기본 '겉바속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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