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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지역별 요리(로마, 피렌체)

내륙의 맛

by 넙죽

이탈리아의 지역별 요리


이탈리아의 역사를 보면 로마시대를 제외하고는 이탈리아 반도가 통일된 국가가 된 것은 근대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이탈리아는 각 지역의 거점 도시들을 중심으로 한 특색 있는 지역문화가 발달하였으며 각 지역의 요리도 각지마다 개성 있게 발달하였다. 요리를 보면 그 지역이 보이고 문화가 보이듯 반대로 그 지역의 문화와 지리, 사람들의 기질이 요리에 묻어 나오기도 한다. 내가 주로 여행한 지역은 주로 이탈리아의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주요 거점 도시들을 여행한 데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의 음식에서 그 지역의 특색이 고스란히 묻어 나와 매우 흥미로웠다. 지금부터 이탈리아 각 지역의 요리를 맛보도록 하자.


로마(라치오)의 요리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이며 많은 관광객들이 모이는 관광도시이기 때문에 수도 로마에서 이탈리아의 어지간한 지역요리를 맛볼 수 있지만 로마에서 특히 유명한 요리들이 있다. 특히 로마는 파스타 종류가 유명하다. 내가 맛본 부카티니 알 아마트리치아나가 그것이다. 부카티니 면은 언뜻 보면 스파게티 면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보다는 두껍고 속에 구멍이 뚫려있다. 때문에 보다 쫄깃하고 매콤한 토마토소스인 아마트리치아나 소스와 잘 어우러진다. 보통 부카티니 알 아마트리치아나에는 구안찰레라는 이탈리아 돼지고기 햄이 들어가는데 쫄깃하면서도 깊은 돼지기름의 맛이 나 별미이다.


부르텔리니_아마트리치아나.jpg 부카티니 알 아마트리치아나(프리미)


두 번째로 맛본 로마의 음식은 라가토니 알라 까르보나라이다. '까르보나라'라는 단어는 나에게 늘 대학시절 소개팅을 나가야 먹던 크림소스 스파게티를 떠오르게 하지만 실제로 까르보나라는 크림소스가 아닌 달걀노른자와 치즈 그리고 구안찰레 등을 버무린 소스를 말한다. 우리가 까르보나라라는 음식을 크림소스 스파게티로 이식하는 이유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 미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한 스파게티를 우리가 접해왔기 때문이다. 본토의 까르보나라는 보다 진한 치즈의 맛이 우러난다. 본토의 까르보나라를 맛보고 실망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지만 내 입맛에는 크림소스 파스타보다는 본토의 맛이 조금 더 맞았다. 스파게티 면이 아닌 '라가토니'라는 독특한 면과 함께 먹어서 그런지 보다 색다른 기분이었다.



카르보나라.jpg 라가토니 알라 까르보나라(프리미)


마지막으로 맛본 로마의 요리는 '메제마니케 카치오 에 페페' 라는 파스타였다. 로마 지역에서 즐겨먹는다는 요리는 앞서 맛본 까르보나라 파스타와 흡사한 모양새를 지녔으나 다른 점은 보다 더 많은 치즈와 후추가 들어갔다는 점일 것이다. 이름 그대로 카치오 치즈와 후추를 버무린 맛이었다. 기분상으로는 치즈를 더 많이 먹기 위해서 이 파스타를 먹는 느낌이었다. 이 파스타의 맛도 훌륭했지만 난 이 요리를 서빙한 웨이터의 재치가 더 기억에 남는다. 이 이탈리아인 웨이터는 신혼여행을 온 나와 아내를 보고 자신이 한국 드라마 주몽의 광팬이라면서 마치 우리가 주몽과 소서노 같다고 했다.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한 표현이었으며 그가 생각하는 한국의 왕과 왕비의 이름을 말해 우리에게 호감을 사기 위함이었다. 이역만리 외국 땅에서 우리나라 사람도 잘 모르는 주몽과 소서노를 아는 그가 신기했고 우리의 우정을 얻기 위한 그의 노력이 음식의 맛과 함께 나에게 각인되었다,


페페카치오.jpg 메제마니케 카치오 에 페페(프리미)


피렌체(토스카나)의 요리


피렌체는 토스카나 지역의 풍부한 자연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한 요리들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숲이 많은 이 지역에서는 세계 3대 진미 중 하나인 송로버섯(Truffle)으로 만든 파스타를 맛볼 수 있다. 송로버섯은 워낙 귀해 쉽게 맛보기 어렵지만 피렌체에서는 이 송로버섯 파스타를 20유로 정도면 맛볼 수 있다. 송로버섯이 진미인 이유는 특유의 향 때문이다. 음식의 맛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향인데 송로버섯의 향은 어떤 요리던 그 특유의 향으로 감칠맛을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처음 맛본 송로버섯의 맛을 아직까지 기억할 정도로 그 맛은 내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있다. 이번에는 내가 먹기 보다도 아내에게 송로버섯 파스타를 꼭 맛 보여주고 싶었다. 송로버섯 향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고 해서 짐짓 걱정하기도 했으나 아내는 그릇까지 싹싹 비울 정도로 맛있게 먹어주었고 나는 내가 요리한 사람처럼 흐뭇한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결혼하기 전 결혼생활을 하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여행하면서 맛있는 것은 많이 맛보게 해 주겠노라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 중 하나 정도는 지킨 셈이다.



트로플.jpg 송로버섯은 이탈리아에서도 높은 값을 주고 먹어야 하는 진미이다.
트러플_파스타.jpg 트러플 파스타(프리미)


두 번째 요리는 토스카나의 숲과 관련된 또 다른 요리이다. 바로 토스카나의 자연을 뛰놀던 멧돼지로 만든 파스타이다. '파파르델레 알 친기알레'이다. 이 요리가 유명한 이유는 토스카나의 숲과 자연이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그 자연 속에서 좋은 것들만 먹고 자란 멧돼지의 육향과 육질이 뛰어나기 때문이란다. 피렌체의 다른 요리들 보다도 이 요리가 제일 기대되었었다. 그러나 막상 이 요리를 먹고 나니 너무나 익숙한 맛이 느껴졌다. 돼지고기 장조림을 칼국수와 비벼먹는 느낌이랄까. 이탈리아의 파스타들은 기본적으로 간이 강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안하더라도 짠맛이 강하기는 했다. 물론 고기의 질은 매우 훌륭했지만 말이다. 조금은 아쉬웠던 요리였다.


판파텔레_친기알레.jpg 파파르델레 알 친기알레(프리미)


토스카나의 중심도시 피렌체는 유명한 가죽 시장과 가죽공방들이 있어서 가죽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가죽의 주재료는 역시 소이고 그 때문에 피렌체에는 좋은 소고기들이 넘쳐났다. 그 때문인지 피렌체 요리의 대표 주자인 티본스테이크이다. 이탈리아어로는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라고도 부른다. 숯불에 구운 티본스테이크라고 보면 되는데 최소 600그램 이상부터 팔고 음식의 가격도 100그램 당 가격으로 매겨져 있다. 레스토랑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 사전조사만 철저히 하면 한국에서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두툼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 보통 600그램 정도를 주문하면 둘이 먹기에 충분하다. 피렌체 지역의 대표 요리이니 고기를 굽는 요리사의 숙련도도 매우 높아 어지간하면 실패하기 어렵다. 좋아하는 숯불의 향이 고기에 가득 배어있고 고기의 육질이 연해서 항상 실망을 시킨 적이 없는 요리다.


비스테카_알라_피로렌티나.jpg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세콘디)


가죽 시장의 산물인 음식은 하나 더 있다. 피렌체인들의 간식 '람페르도토'이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맛은 생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음식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소 곱창으로 만든 샌드위치이기 때문이다. 적당히 삶은 곱창에 매운 칠리소스를 뿌린 후 빵 사이에 끼워먹는 음식이다. 피렌체식 티본스테이크와 같이 피렌체로 몰려든 소들이 남긴 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맛은 익숙하고 누린내도 없어서 맛있었고 상추나 밥이 아닌 빵에 끼워먹는 맛도 나쁘지 않았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한 끼 대용으로 먹기는 괜찮았다.



람페르도토.jpg 피렌체인의 간식, 람페르도토
아프지마 도토.jpg


피렌체는 농민들이 많다 보니 오래된 빵과 채소들을 한 솥에 넣고 끓여먹는 요리가 발달했다. 그중에 내가 맛본 요리는 '파파 알 포모도로'라는 요리이다. 포모도로라는 단어가 들어갔듯이 토마토가 주 재료인 요리이다. 엄마가 긴 외출을 했을 때 요리 솜씨가 서툰 아버지가 엄마의 빈자리를 애써 채우려고 남은 토마토, 올리브유 등을 넣고 전날 먹고 남은 빵을 한 솥에 넣고 끓인 느낌이지만 맛은 의외로 훌륭했다. 여행을 다니는 내내 기름진 음식을 먹느라 지친 내 속을 달래는 데는 최고인 음식이었고 먼 이국 땅에서 가정식을 맛본 느낌이었다. 가격도 저렴한 편인데 꽤나 인기 있는 메뉴인지 레스토랑에서는 한솥 크게 끓여 놓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데워 나가는 식 같았다. 역시 쉽게 만들 수 있는 데에 비해 오래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한 나의 추측이 맞았다. 하지만 피렌체 가정의 아이들 중에는 내가 카레라이스를 싫어하듯 엄마가 없을 때 매번 식탁에 오르는 이 요리를 싫어하는 아이도 분명히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파파_알_뽀모도르.jpg 곤죽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곤죽이었지만 맛있었던 '파파 알 포모도로'(프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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