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인의 혈관에 흐르는 것들
이탈리아는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가 아닌데도 커피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커피를 즐기는 문화를 전 세계에 대중화시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종류들을 일컫는 말도 사실은 이탈리아어인 것을 보면 이탈리아의 커피 문화가 전 세계 커피 문화에 미친 파급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탈리아에 처음 커피가 들어온 곳은 베네치아였는데 베네치아는 당시 이슬람 국가들과의 교역인 '동방무역'이 활성화된 도시였다. 커피는 바로 이슬람 국가들에서 주로 즐기던 음료였는데 이들과 무역을 하던 베네치아에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가 전파된 것이다. 이탈리아 최초의 카페인 카페 플로리안이 가게의 문을 연 장소가 베네치아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주로 마시는 커피는 에스프레소이다. 커피를 진하게 내린 이 에스프레소는 현지에서는 커피의 대명사로 불리며 커피를 활용한 모든 요리의 기본이 된다. 다시 말해 커피를 활용한 요리는 거의 에스프레소에 다른 요소들을 첨가한 음료라고 보면 된다.
에스프레소에 우유가 첨가되면 카페라테가 된다. 라테가 이탈리아어로 우유라는 뜻이니까 직역하면 커피우유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커피의 향에 우유의 고소함이 더해져 새로운 풍미를 만들어낸다. 솜씨 좋은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에 가면 카페라테 위에 그림을 그려주는 라테아트도 만날 수 있다.
에스프레소에 우유가 들어가지만 보다 거품이 많은 카푸치노도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침에 카푸치노를 많이 마시지만 오후에는 카푸치노보다는 에스프레소를 주로 마신다고 한다. 사실 카페라테와 카푸치노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는 시나몬 가루의 유무 여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탈리아의 카푸치노에는 시나몬 가루를 뿌려주는 경우가 드물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나 거품이다. 전에 직장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갔을 때 주문한 카푸치노를 받아 본 한 선생님께서 이 카푸치노는 카푸치노이기보다는 라테인 것 같다며 커피를 내린 아르바이트생에게 말을 건네었는데 그 아르바이트 생은 경력이 얼마 안 된 듯 카푸치노나 카페라테나 다 커피에 우유가 들어간 것은 똑같다며 퉁명스럽게 응대했다. 사실 그 선생님의 의도는 '카푸치노 치고 거품이 너무 적네요.' 였는데 말이다. 나 또한 풍성한 거품이 없는 카푸치노는 카푸치노라고 인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나기 어렵다는 이야기들도 많았는데 요즘은 수많은 관광객들의 영향인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파는 카페들도 간간히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통이 오래되고 현지인들을 주로 대상으로 하는 카페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나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탈리아에도 시원한 커피를 마실 수는 있다. 커피에 얼음을 동동 띄운 '카페 프레도'가 있기 때문이다. 차가운 커피란 뜻을 가진 이 커피는 진한 커피에 얼음을 띄워 시원하게 마시는 커피이다. 적당히 시원한 커피이기는 하지만 타는 갈증을 달래기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킨 후에 찾아오는 띵한 두통을 느낄 만큼의 그런 차가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기엔 커피 잔 안에 들어있는 얼음의 개수가 너무 적은 느낌이긴 했다.
이탈리아에서 내가 맛본 가장 맛있었던 커피는 '샤케라토'였다. 에스프레소와 얼음, 설탕 등을 넣어 갈아 만든 음료였는데 커피의 향과 적당한 청량감, 달짝지근한 맛이 잘 어우러진 맛이었다. 카페 프레도 보다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대용품으로 제격인 듯싶다. 한국에서도 판매하는 카페를 간혹 찾아볼 수 있는데 이탈리아 본토의 맛보다는 단맛이 덜한 느낌이다. 본토의 '샤케라토'는 여름날의 노곤함을 한 번에 날려버리게 좋은 커피였다. 이탈리아에 방문하게 된다면 꼭 맛보길 바란다.
카페 마로끼노도 빼놓을 수 없는 커피이다. 에스프레소와 우유가 층을 이루는 이 커피는 마지막에 초콜릿 가루를 뿌려줌으로써 화룡점정을 찍는다. 커피 한잔으로 세 가지 맛을 맛볼 수 있음인데, 달콤 쌉싸름한 맛을 먼저 맛보고 고소한 우유의 맛, 에스프레소의 진한 맛이 순차적으로 다가온다. 입에서 느껴지는 맛도 맛이지만 일단 커피가 나오면 눈부터 즐겁다.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 커피로 손색없는 커피였다.
초등학생 시절 더운 여름날에 땀을 뻘뻘 흘리는 와중에도, 초등학생의 상징인 신발주머니를 좌우로 휘두르며 학교 앞 문방구에 가면 우리들의 여름 음료 슬러시를 만나볼 수 있었다. 주머니 속의 동전들을 긁어모아서 주인아주머니가 종이컵에 한가득 슬러시를 담아주면 학교에서 집까지는 금방이었다.
이탈리아에도 이 슬러시와 비슷한 음료가 있다. 바로 '그라니타' 이탈리아에서도 여름 한정 음료인 이 음료는 슬러시와 거의 비슷하다. 카페에서 그라니타를 주문하면 미리 갈아놓은 얼음 위에 과일즙을 뿌린 후 적당히 섞어서 준다. 역시 맛은 어린 시절의 그 맛이다.
내가 여행한 6월의 이탈리아는 타는 듯한 날씨에 진이 다 빠져버렸는데 그라니타를 마시니 그래도 잠시나마 정신이 돌아왔다. 6월이 여름이긴 하지만 그런 것 치고 너무 덥다 싶긴 했는데 나중에 한국에 와서 보니 이때 유럽이 역대급 폭염이 시작되던 시기였었다. 어쩐지 너무 덥다 했다. 그래도 요 녀석 '그라니타' 덕에 그래도 조금은 숨을 돌렸었다.
이탈리아를 대표한 음료는 아무래도 와인일 것이다.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와 풍부한 일조량, 그리고 비옥한 토양. 포도가 자라기에 완벽한 자연환경은 와인을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음료로 자리 잡게 하는 배경이었다. 때문에 이탈리아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와인 두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토스카나 지역에서는 '키안티'라는 와인이 유명하다. 피렌체의 식당들에서 주로 판매하는 와인도 이 '키안티'일 확률이 높다.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와인인 키안티는 레드와인으로 주로 티본스테이크 등 주로 육류요리가 많은 토스카나 지역의 요리와 잘 어울린다.
베네치아가 있는 베네토 지역에서는 화이트 와인인 '소아베'가 유명한데 이 또한 이 지역의 요리와 관련이 깊다. 바다와 인접한 도시인 베네치아에서는 해산물 요리가 많이 발달하였고 해산물 요리에는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리기 때문에 베네치아인들이 '소아베'를 즐겨마시게 된 것 같다. 보통 요리와 와인의 조화를 '마리아주'라고 하는데 만약 이탈리아의 식당에 방문하게 된다면 본인이 주문한 요리와 어울리는 와인을 선택해 요리와 와인의 '마리아주'를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는 식전에 입맛을 돋우는 술인 '아페리티보'가 있다고 한다. 주로 칵테일 종류의 술과 가벼운 안주 등을 곁들이며 식욕을 일깨우는 것이다. 어느 정도 입맛이 동하면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가는 식이다.
현지에서 유명한 칵테일로는 '스프리츠'와 '마티니'가 있다.'스프리츠'는 주홍빛을 띄고 맛이 조금 더 달달한 편이고 '마티니'는 그 빛이 투명하며 맛이 드라이하다. 그 때문인지 스프리츠는 아내의 입맛에 더 맞았고 마티니는 내 입맛에 더 잘 맞았다. 나 역시 현지의 아페리티보 문화를 존중하여 칵테일과 더불어 간단한 안주들을 즐겼다. 이탈리아에서는 여러 가지 햄 등을 모아 낸 요리를 '아페타티'라고 하는데 나는 칵테일 바에서 준비한 여러 가지 햄들과 치즈를 접시에 모아 나만의 아페타티를 만들어 먹었다. 사실 간단히 허기만 면하고 저녁에 다른 식당에 가려고 했으나 칵테일 한 모금과 안주를 몇 가지 먹다 보니 어느새 저녁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입맛만 돋우려 한 아페리티보가 저녁식사가 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