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살이의 시작, 붉은 광장

모스크바의 중심은 역시 붉은 광장

by 넙죽


모스크바의 중심 붉은 광장을 가다


모스크바에 왔으니 모스크바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붉은 광장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매우 컸다. 아무래도 현지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4,000명이 넘게 유지되는 상황인지라 대부분의 실내 관람시설은 문을 닫았지만, 광장과 건물의 외관을 둘러보는 것에 한해서는 관광이 허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관광이 가능하다고는 하나, 그것이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기에 많은 고민을 하다가 비교적 사람이 적은 오전 시간에 빠르게 광장을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겨울기간의 모스크바는 특히나 오전 9시가 넘어서야 날이 밝아지므로 그 시간에 맞추어 광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모스크바에서 나의 발이 되어주는 얀덱스 택시를 타고 광장에 도착한 우리는 설렘과 걱정이 공존하는 감정을 가지고 광장에 진입했다. 넓게 펼쳐진 광장 안으로 들어오자 비로소 내가 모스크바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관광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았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염려는 조금 접어둘 수 있었다.



붉은 광장의 백미는 바로 성 바실리 성당이다. 붉은 광장의 가장 주인공 격일 것이다. 성 바실리 성당은 이반 4세가 카잔한국을 병합한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성당이다. 사실 카잔한국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몽골 제국의 후예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몽골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을 휩쓴 13세기경부터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 지역은 몽골인들에 침략을 받게 된다. 특히 러시아는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약 20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몽골의 한국 중 하나인 킵차크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되는데, 그 기간을 ‘타타르의 멍에’라고 부른다. 왜 ‘몽골의 멍에’가 아닌 타타르의 멍에인가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는데, 당시 서양인들은 몽골인들을 타타르라고 불렀기 때문이란다.


당시 러시아는 여러 개의 공국으로 나뉘어있었는데, 그중 모스크바 대공국은 몽골 세력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며 그 대가로 다른 공국들에 대한 조세권을 위임받으면서 그 세력을 크게 키워갔다. 모스크바 대공국은 이반 3세 때부터 그 유명한 칭기즈 칸의 손자인 바투가 세운 킵차크한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났으며 이반 4세부터는 강력한 중앙집권과 영토 확장을 하며 주변 대공국들을 병합해 명실상부 러시아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남은 몽골의 잔여세력인 카잔한국까지 병합하면서 러시아는 비로소 타타르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반 4세는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스스로를 ‘차르’라고 칭하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흔히 러시아의 지배자를 부르는 차르라는 명칭의 시초이다. 러시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담고 있어서인지 성 바실리 성당은 현재까지도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러시아의 경찰과의 만남


성 바실리 성당을 포함하여 붉은 광장 곳곳을 열심히 사진으로 담고 있던 나에게 러시아 경찰이 말을 걸었다. 한국인 치고 덩치가 큰 편인 나이지만 나보다도 머리 하나는 큰 러시아 경찰이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몸과 사고가 경직되었다.


‘내가 사진을 찍지 말아야 할 곳을 찍었나.’


‘아니면 여권을 보여줘야 하나.’


별별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왜 나에게 말을 걸었는지 짐작이 안되었기에 도둑이 제발 저리듯, 여권도 열심히 보여주고 나는 엄한 곳을 찍지 않고 관광명소만을 찍었노라고 열심히 해명했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그냥 사진을 찍어주려고 불렀다고 했다. 이때까지도 나와 같이 사진을 찍자는 건지 나를 찍어주겠다는 것인지도 판단이 안 섰는데 나중에 말을 들어보니 나와 아내를 위해 성 바실리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러시아 경찰 아저씨의 갑작스러운 친절에 감사하며 포즈를 열심히 취해보았지만 경직된 몸이 풀리지 않았는지 영 어색한 모습이다. 사진을 찍은 후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러시아 경찰 아저씨에게 “스파 시바(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감사를 표하며 나와 그의 어색한 만남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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