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실리 성당을 지나 크렘린의 붉은 종탑과 성벽을 따라가다 보면 레닌의 묘가 보인다. 러시아의 공산혁명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 또한 러시아의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붉은 광장에 그의 존재감이 아직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 공산주의 자체가 평등을 강조하는 사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각 국가의 공산 혁명을 주도한 인물들은 하나 같이 신격화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체제의 정당성을 위대한 인물에게 찾는 것일까. 레닌도 자신이 신격화되는 것을 원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공산 혁명이 일어날 당시 러시아는 전제군주가 지배하는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로 운영되고 있었다.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에서 자유주의의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러시아의 군주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기 쉽지 않았다. 그들의 정치적인 실책과 오만이 더해져 러시아 사람들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그럼에도 도 러시아의 차르인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주변인들은 여전히 그의 국민들이 그들을 사랑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런 오판이 그를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로 만들었을 것이다.
공산 혁명을 통해 러시아의 권력은 황족이나 귀족들이 아닌 공산당 간부들에게 넘어갔다. 한국전쟁의 역사를 가진,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공산주의의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지만, 러시아 사람들 중 일부는 공산 혁명과 공산주의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들의 힘으로 혁명을 이루어 내어 그들의 차르를 끌어내렸으며, 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산주의의 종주국이었다는 자부심. 그리고 그 시절에는 국가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었기 때문에 더 좋은 시절이었다는 기억. 이런 것들이 더해져 나이가 많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공산주의 시절은 좋은 인상을 주는 듯 하다.
레닌의 묘를 지나 광장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지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많이 났다. 사실 내가 광장을 방문한 시기는 1월 초 정도였는데 보통 대부분의 국가들에게는 12월 25일부터 12월말까지 정도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받아들여지지만 러시아에서는 1월 초부터 1월 중순까지의 기간이 크리스마스로 여겨진다.
이것은 러시아가 다른 서방국가들과는 다른 달력을 써왔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정교회를 믿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카이사르가 만든 율리우스력을 썼고 서방국가들은 16세기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만든 그레고리력을 써왔기 때문이란다. 율리우스력에 따르면 크리스마스가 1월 7일인 셈이 되기 때문에 나는 한국에서 누리지 못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뒤늦게나마 러시아에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붉은 광장 한가운데에는 스케이트 장이 들어서있고 광장 한쪽에 위치한 굼 백화점 안에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었다면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을 것 같다.
굼 백화점의 명물인 아이스크림도 빼놓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특별히 맛있다고 생각되어지는 맛은 아니지만 백화점의 화려한 분위기가 즐거움을 더해주는 느낌이다.
흥겨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지나 광장 끝에 웅장하게 자리잡은 국립 역사박물관이 보인다. 역사박물관 안에는 러시아 역사의 화려한 모습들이 많이 담겨있다. 처음 붉은 광장에 방문했을때는 미처 방문하지 못했었지만 현지 코로나 사정이 나아지고 방문했을 때에는 그 아름다움에 탄식이 나왔다. 특히 내부 천장에 그려진 가계도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단연 중심에 있는 것은 이곳 국립 역사박물관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표트르 대제이다. 그의 명으로 이곳에 러시아 역사의 보물들이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국립 박물관
국립 역사박물관을 지나면 카잔성당을 만날 수 있다. 카잔성당은 그 화려한 외관도 볼거리지만 소련이 붕괴되고 최초로 복원된 성당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유물론에 기반한, 무신론적 관념인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 정교회 성당들은 파괴되거나 그 본연의 기능을 잃어버렸었다. 그러나 러시아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신앙이 살아있었던 모양인지 소련이 붕괴된 후 빠르게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카잔 성당
카잔 성당까지 만나고 나면 이제 붉은 광장을 나가야 할 때이나 수많은 매력을 가진 붉은 광장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붉은 광장의 출입문 격인 부활의 문이 마지막까지 나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부활의 문을 지나면 부활의 문 반대편에 유독 사람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는 곳이 보였는데 모스크바 도로의 원표가 있는 곳이다. 원표는 그 도시의 도로와 위치의 기준이 되는 표식을 말하는데 보통 서울에서 모스크바까지 몇키로인가 등의 기준을 정할 때 모스크바 쪽의 기준이 되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모스크바 도로의 원표는 청동을 그 재료로 삼아 원 모양으로 바닥에 표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이 원표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거나 동전을 던지고 있었는데 던진 동전이 원표 안으로 들어가면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는 하는 그다지 성공하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었다. 붉은 광장을 빠져 나온 나는 붉은 광장 주변을 따라 걸으며 여행을 이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