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대제의 꿈

by 넙죽

표트르 대제의 꿈이 담긴 도시


열흘이나 되는 5월 연휴를 맞아 그동안 가고싶었던 꿈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게 되었다. 모스크바에 발령받고서 현지직원들에게서 러시아에 왔으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꼭 한번 가봐야 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보다 유럽적이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이유로. 나보다 먼저 발령 받은 한국인 직원들도 너무나 사랑하는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드디어 와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쾌속기차로도 네시간 가까이 걸리기에 나름 러시아에서의 여행으로서는 큰 프로젝트인 셈이다. 내가 머무는 지역에서는 시내에 있는 기차역보다 공항이 더 가까웠고 기차표 보다 비행기표가 더 저렴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나는 기차가 아닌 비행기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1.jpg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거리

상트 페테르부르크, 성스러운 표트르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이 도시는 말 그대로 표트르 대제의 정치 철학이 담긴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치열한 내부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이후 표트르 대제는 유렵의 주요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러시아를 꿈꾸었다.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러시아는 그 위치 때문인지 유럽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 상당히 뒤쳐져 있었다. 또한 오랜 타타르의 지배의 영향 때문인지 유럽과 동양 문화가 혼재되었는 독특한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나 차르 한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전제군주제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그 덕분인지 한번 황권을 확립한 표트르는 뚝심있게 자신의 개혁을 추진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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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혁을 추진하려면 서구의 선진 문물을 배우는 것이 우선이었고 표트르 대제는 신하들을 서구로 보내는 대신, 자신 스스로부터 유럽화하기 위하여 신분을 감추고 몸소 유럽 각국들을 유람하기 시작했다. 특히 표트르 대제가 직공으로 신분을 감추며 네덜란드의 한 조선소에서 범선의 건조기술을 배운 일화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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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이 끝난 후 표트르 대제는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핀란드만에 항구도시를 만들기 시작한다. 왜 항구도시가 그의 이상향이 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답은 간단했다. 당시의 항구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모든 물류가 집중되는 곳이자 새로운 문물이 오가는 곳이다. 다시 말해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딱 좋은 곳이기 때문에 러시아의 유럽화라는 표트르 대제의 이상에 정확히 부합하는 위치였던 것이다. 또한 핀란드만은 발트해로의 출구이자 입구였기 때문에 유럽으로 뻣어나가려는 그의 야망과도 일치했다. 또한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완전히 유럽의 도시로 자리잡기 위해 러시아식 이름인 그라드 등을 붙이는 대신 독일식 이름인 부르크를 붙여 기존의 러시아 도시들과의 차별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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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네바강에는 페트로 파블로브스키 요새가 존재하는데 이곳은 표트르 대제가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건설되는 동안 도시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였다. 때문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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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터운 성벽으로 둘러싼 이 성채 안에는 성당이 하나 있는데 이 성당 안에는 로마노프 왕조의 여러 차르들이 잠들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바로 도시의 건설자 표트르 대제이다.


그가 이 도시를 건설한 후 이 도시는 그가 속한 로마노프 왕가의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들은 대대로 표트르 대제가 남긴 영광을 누리며 살았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의 존재로 표트르 대제의 꿈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또하나의 이상향, 페체르고프


표트르 대제의 이상향이 구현된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페체르고프라고 불리는 표트르 대제의 여름궁전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마찬가지로 핀란드만 연안에 위치한 이 궁전은 별궁이다 보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시간 가량 떨어져 있어 선뜻 찾아가기는 어렵지만 화려함으로 유명한 궁전이다 보니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방문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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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곳이다보니 입장료도 러시아의 물가에 비하면 꽤나 비싼 편이었지만 그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화려한 궁전의 외관도 물론 마음에 들었지만 이곳의 주인공은 궁전 정원 중앙의 황금 분수이다. 날이 좋은 날 운이 좋게 방문하여 태양빛에 반짝이는 분수를 볼 수 있었던 것이 너무 행복했다. 분수가 뿜어대는 물에 햇살이 부서지는 모습도 좋았지만 황금으로 장식된 각각의 조형물들이 빛나는 모습은 신성해보이기까지 했다. 분수 중앙에 있는 삼손과 사자의 형상이 가장 유명한데 사자의 아가리를 찢는 삼손의 모습이 생생하고 용맹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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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설에 의하면 삼손은 러시아, 아가리가 찢기는 사자는 스웨덴을 상징한다고 한다. 당시 북유럽의 지배자는 러시아가 아닌 스웨덴이었는데 러시아의 개혁에 성공한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과의 이른바 북방전쟁에서 승리해 발트해 권역의 주도권을 차지하면서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업적을 성경 속의 인물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마찬가지로 이 별궁과 정원에도 그의 꿈과 이상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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