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의 도시에 흐르는 운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택시로 시내를 이동할 때까지만 해도 모스크바와 무엇이 다른지 피부로 느끼기는 어려웠다. 소련시대 분위기가 나는, 비교적 획일화된 아파트들은 모스크바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택시가 구시가지에 이르자 모스크바와는 조금 다른 유럽식 도시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모스크바도 유럽에 위치한 도시이기는 하지만 특유의, 소련시대의 분위기가 있어 일반적인 유럽도시의 느낌과는 차이가 있다면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기존에 방문한 여타 유럽도시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바로 낭만이라는 분위기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낭만을 더해주는 가장 큰 요소는 운하이다. 도시를 가르는 수많은 운하들은 습지대에 건설된 도시들에서 많이 보인다. 베네치아도 그렇고 암스테르담도 그러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어느 도시와 더 닮았냐고 묻는다면 베네치아보다는 암스테르담 쪽에 가깝다라고 대답해줄 것이다. 도시의 건설자 표트르가 좋아한 나라가 네덜란드였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도시와 운하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암스테르담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암스테르담과도 묘한 분위기 차이가 존재한다.크고 작은 운하가 촘촘히 자리잡은 암스테르담에 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역시나 러시아답게 큼직한 몇개의 운하가 도시에 자리잡는다. 도시에 흐르는 네바강도 큼직한 느낌이다.
운하와 더불어 도시의 낭만을 더해주는 것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성이삭 성당이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성당의 돔은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을 떠올리게 하지만 성 이삭 성당이 보다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다. 프랑스 건축가 몽페랑이 심혈을 기울여서 지었기 때문인지, 정교회 성당임에도 프랑스의 판테온과 유사한 느낌이 들었다. 성당 굵직한 화강암 기둥들이 경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삭이라는 이름 때문일까. 성경을 공부한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을 위한 성당이라고 혼동하기 쉬우나 이 성당이 기리는 인물은 성경 속 인물인 이삭이 아닌 정교회의 성인 중 하나인 성 이삭이다.
성 이삭의 축일이 표트르 대제의 생일과 같기 때문에 그 성인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성 이삭을 위한 것이 아닌 표트르 대제를 기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잠깐 들긴 했다.
이 성당은 오랜기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황태자처럼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였으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물론이 중심인 공산주의 혁명이 있고나서는 다른 러시아 정교회 성당들과 마찬가지로 종교박물관 등으로 쓰이다 소련이 붕괴되서 난 후 비로소 종교시설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서 인간의 지식과 노력의 결정체인 건축물들이 오래도록 보존되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성당의 돔을 둘러 설치된 전망대에 오르면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평지에 위치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도시적 특성 때문에도 그렇지만 구시가지에는 성 이삭 성당 외에 이렇다할 고층 건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 이삭 성당을 방문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전망대이니까. 시원하게 뻗은 전망은 아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어떻게 생긴 도시인지를 머리속에 담는데에는 손색이 없다.
도시의 전망대에 오르는 것은 앞서 말했듯 도시의 이미지를 두뇌에 각인시키는 데에 좋은 방법이지만 고소공포증이 심한 나로서는 매번 큰 각오를 해야하는 일이다. 물론 성당의 전망대들의 보통 그러하듯 수없이 많고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는 일 또한 만만치 않으니. 나의 관절과 몸무게는 20대 청년의 것이 아니므로. 그럼에도 전망대에 오르는 것은 그 성취감과 환희가 고통과 두려움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전망대에서의 관람이 끝나면 누구보다 빠르게 안전한 지상으로 내려가지만. 성취의 순간은 위대하지만 공포라는 감정은 너무나 강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