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지예 공원과 모스크바 강변 그리고 고리키 공원
허리춤까지 쌓인 눈과 영하 20도에 가까운 추위를 일상으로 보내다 보면 과연 모스크바에도 봄이 오기는 하는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4월 중순이 되어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고 눈이 조금 녹는가 싶더니 금세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고 폭설이 내리기 시작한다. 옷장에 넣어둔 두터운 롱패딩을 몇번이나 넣었다 뺐는지.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벗꽃놀이를 다닌다는데 나는 언제 질척이는 눈길을 그만 걷게 되는지 한탄만 나오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곧 눈도 그치고 기온도 따뜻해지면서 숨어있던 푸르름들이 지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햇볕도 따사로워지는 것이 슬슬 봄나들이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근질거리게 했다.
모스크바에 유명한 공원들이 많으니 공원들을 돌아보며 봄을 만끽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즐기지 않는 것은 인생의 낭비이니까. 겨우내 한껏 집콕 생활을 했으니 기지개를 펼 때도 되었다.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공원도 매력이 있지만 빽빽한 도심에 오아시스처럼 자리한 공원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다. 붉은 광장과 모스크바강을 맞댄 자리지에 공원은 바로 그런 공원이었다. 관광지들 사이에 있어 접근성도 좋고 탁트인 시야 안에 크렘린, 바실리 성당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벤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며 볕을 쬐는 즐거움은 내 안의 행복감을 충전해준다. 가끔 무엇을 위하여 일하는가. 왜 나는 바쁘게 일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이 순간이 대신해준다. 행복한 순간을 더욱 풍부하게 즐기기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이런 순간들이 직장생활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코 끝을 스치는 바람이 전해주는 풋내나는 풀내음을 맡고 갓 솟아난 여린 잎의 빛깔을 바라보기만 해도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두세시간 쯤 즐긴 후 자리를 옮겼다. 자라지에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유유히 흐르는 모스크바 강변도 참 걷기 좋은 곳이었다. 또다시 한참을 걸으며 담소를 즐기던 우리 부부는 모스크바에 살기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인간이기에 일이 힘들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러시아어 실력이 부족해 생활이 고될 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나 행복하게 보낸 하루의 기억이 나의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것 같다.
모스크바의 공원 중 가장 크고 유명한 곳은 단연 고리키 공원일 것이다. 일단 그 규모에서부터가 압도적이다. 아직 봄이 절정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이 완숙되었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모스크바의 봄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앞서 말했듯이 공원의 규모는 매우 커서 각 구역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작은 호수들과 작은 숲길이 있는 구역은 한가롭게 산책할 수 있고 모스크바 강변 구역에서는 강 위를 지나는 유람선들을 구경하거나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 등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모스크바의 봄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운동신경이 부족해 몸을 움직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신체활동이 산책인데 선선히 부는 바람을 즐기고 걷는 만큼 바뀌는 풍경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날 나도 이곳의 풍경과 분위기가 좋았는지 서너시간 동안이나 지치는 줄도 모르고 걸어버렸다. 물론 그 후의 뒷감당은 그 다음날 아침의 내가 해내야 했지만 말이다. 봄이 온다는 기쁜 소식은 제 몸 하나 버거워할 정도로 게으른 자도 움직이게 했나보다.
유원지나 공원의 백미는 솜사탕을 먹는 것이라는 지론을 가진 나는 그걸 다 먹었다가는 살이 더 찌고 말 것이라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솜사탕을 샀다. 그래도 아내와 어느정도 타협을 봐서 두개 살 것을 하나만 사서 둘이서 나누어먹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손에 쥐고 나니 커도 너무 크더라. 주인장의 인심이 후한 것인지 아니면 이것이 러시아의 표준 사이즈인지는 정말 러시아 말로 '니 스나유.' 그야말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니. 먹다 먹다 지쳐 먹는 것을 포기하고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던 차에 데이트를 하던 한 커플이 각자 손에 솜사탕을 하나씩 막 받아들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과연 그 커플은 솜사탕을다 먹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물론 그 커플이 솜사탕을 다 먹을 때까지 따라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과는 알 수 없을테지만. 일단 나로서는 당분간 솜사탕은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