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결국에는 다다를 곳
직장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방문했다. 모스크바 시내에서 벗어난 한적한 곳이라서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사색에 잠기기 좋은 공간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확실히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종류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시내 중심가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기도 하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으므로.
노보데비치 수도원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묘지였다. 아니 묘지 공원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외할아버지를 모신 묘지도 공원의 형태를 띄고 있었는데 요즘은 죽은 자의 공간이 터부시되지 않는,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삶과 죽음 자체도 그렇지 않은가. 죽음은 삶과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나도 결국에는 가야만 할 수밖에 없는 종착지. 필멸자로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죽은자들의 도시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는 삶과 죽음을 먼저 겪은 일종의 선배들인 셈.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묘지에는 흐루쇼프 같은 한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의 묘소도 있지만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더라도 성실히 그 나름의 삶을 산 훌륭한 시민들이 잠들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묘비에 고인의 이름만 적혀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생전 고인의 삶을 압축한 듯한 조형물들로 꾸며져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가까운 가족들로 하여금 하나의 이미지로 삶이 요약되고 평가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우리 할아버지는 생전에 파일럿이셨지.'
'우리 삼촌은 훌륭한 예술인이셨어.'
죽음이 있기에 삶이 평가받을 수 있고 유한한 삶이기에 사는 동안 삶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다는 역설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라 느껴졌다.
우리 같은 외지인들에게는 현지인의 삶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의미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현지인들에게는 먼저 떠난 가족의 안식이 이루어지고 또 가족이 그리울 때 방문하는 공간이므로 최대한 침묵을 유지한 채 경건한 마음으로 묘지 구역을 걸었다.
나에게도 언젠가는 찾아올 죽음의 의미와 그 이후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을 하면서.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예측 불가능한 잔여 시간들에 대해 감사해하면서.
정교회의 성당 건물은 많이 방문해보았지만 수도원은 처음이었다. 수많은 성도들에게 열린 성당들과는 달리 수도원은 수도사들의 수양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이므로 외부가 성벽으로 둘러쳐져 있고 안으로 열린 구조로 되어있었다. 물론 신에게 경배드리는 곳임은 성당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화려함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그 유명한 표트르 대제가 장성한 후 자신 대신 섭정을 하던 누이와 싸워 권력을 쟁취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지만 정쟁에서 패한 그 누이가 이곳에서 여생을 유폐생활로 보냈다는 이야기는 이곳을 방문하기 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정치적으로 제거하기 어려운 정적을 종교시설 등으로 보내 속세와 단절시키는 것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있는 일이니까. 표트르 대제의 누이가 보낸 일생이 불행했을 수도 있겠으나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모습은 그저 내 눈에는 한적하고 좋아보였다.
특히 수도원 옆에 위치한 호수가 너무 아름다웠는데 대음악가 차이코프스키가 백조의 호수를 작곡할때 영감을 받은 곳이란다. 그러나 호수에는 우아한 백조는 없고 귀여운 오리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그 아쉬움이 호수의 아름다움을 반감시키지는 못하지만. 평화로운 호수가 자아내는 물결을 바라보며 나는 내 내면에 자문한다. 나는 이곳에서 평온을 찾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