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의 몰락

역사의 수레바퀴는 움직이고

by 넙죽

차르의 피로 시작된 반동정치


유럽의 다른 왕가들이 의회에 권한을 이양하면서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러시아 차르일가는 최후의 차르까지 전제황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른바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반동 정치를 한 셈인데 이들이 이러한 선택을 한 데에는 나름의 배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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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농노를 해방하는 등 꽤나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프랑스를 포함한 다른 국가들은 근대에 접어들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토지에 예속된 농노들이 사라졌지만 러시아는 꽤 오랜기간동안 농노제가 지속되었다. 영토가 넓은 반면에 인구밀도가 낮고 농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귀족들이 피지배층에 대한 권력을 계속 쥐고 있었다는 뜻도 된다. 거주이동에 자유가 없던 농노들을 자유롭게 풀어준 것은 차르로서는 매우 큰 결단이었고 러시아의 근대화가 큰 마찰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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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른바 과격주의자들은 차르가 없어져야만 러시아에 진정한 자유가 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나마 민중에게 온건했던 알렉산드르 2세를 암살했다. 그러나 차르 한사람이 없어진다고 하여 러시아의 기득권층이 그 권력을 다 내려놓을 리는 없었다. 차르는 또 다른 차르로 교체될 뿐이었고 그 차르는 아버지를 과격주의자들에 잃은, 분노에 찬 아들이었다. 새로운 차르의 분노는 민중에게 향했고 러시아의 정치는 급격하게 반동정치로 전환된다. 이러한 경험이 러시아의 차르들이 마지막까지 그들의 권력을 내놓지 못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을 내놓으면 죽는다는 교훈이 조상이 흘린 피로 뇌리에 새겨졌기 때문일까. 농노들의 해방자로 불렸던 알렉산드르 2세는 피 흘리며 죽어갔고 그가 쓰러진 자리엔 피의 구세주 성당이 세워졌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한 운하 옆에 세워진 이 성당은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성당이지만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꽤나 슬프게 보인다. 비장미가 느껴지기도 하고.


라스푸틴의 전횡이 더해진 참사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를 몰락하게 한 것은 선대로부터 이어진 민중과의 불통, 반동정치의 영향도 있지만 요승 라스푸틴의 전횡도 한 몫했다. 이른바 신비주의로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한 그는 황태자의 혈우병으로 실의에 빠진 황실가족들에게 접근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를 신임한 차르 일가는 황태자의 병세가 차도를 보이자 국정을 운영하는 데에까지 라스푸틴의 영향력이 미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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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횡에 우려를 가진 제국 러시아의 귀족들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 중 대표격이 황실의 부마였던 유스포프였다. 그는 그의 궁전에 라스푸틴을 초청한 후 독이 든 포도주로 독살하려했으나 무슨일인지 라스푸틴은 몇잔이고 독주를 연거푸 마셔도 죽지않았다. 권총을 맞고도 죽지 않아 결국엔 몽둥이 세례를 맞고 기절한 뒤 네바강에 던져져서야 죽음을 맞이했다. 등장부터 퇴장까지 모든 과정이 신비에 싸여진 인물이었다. 귀족들의 결행으로 라스푸틴이 죽었어도 민중들이 황실에 가지는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지막 차르의 퇴장


추위와 배고픔, 차르에 대한 실망이 겹쳐져 민중들은 분노에 차있었다. 그 분노는 곧 폭발하게 되었고 그 분노의 화살이 향한 곳은 차르일가였다. 민중들은 차르일가가 거주하는 겨울궁전으로 향했다. 분노한 민중은 차르일가를 끌어내렸고 그들의 빈자리는 공산주의자들이 대체했다. 차르들의 궁전이 지금 박물관으로 바뀐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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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위에서 내려온 차르 일가의 마지막은 참으로 비참했다. 궁전에서 쫓겨난 그들은 우랄산맥 근처 예카테린부르크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감금생활을 이어가던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진군하던 러시아의 백군이 예카테린부르크에 근접하게 되자 위기를 느낀 우랄지역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비밀리에 제거되었다. 때문에 공주인 아나스타샤만은 살아남지 않았을까라는 기대도 있었고 자신이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하는 이도 등장했지만 가족 전체가 몰살될 정도의 잔혹한 현장에서 공주만이 살아남았을 가능성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몰락한 여느 왕가와 마찬가지로 로마노프가의 러시아 지배도 끝이 났다.


러시아의 부활절과 전승기념일


이번 연휴에는 두가지 큰 명절이 있었다. 하나는 5월 2일 러시아 정교회 부활절 파스하였고 다른 하나는 5월 9일 전승기념일이었다. 기본적으로 기독교에 뿌리를 둔 정교회이기 때문에 부활절이 가지는 의미는 다른 기독교 계열의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크겠지만 정교회 신자가 아닌 나로서는 체감햔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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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운이 좋게도 상트 페테르부르크 여행 중 머문 숙소의 조식 메뉴에서 알록달록 예쁘게 장식된 부활절 달걀을 만나게 되었다. 러시아인들이 부활절마다 먹는다는 빵인 쿨리찌도 함께였다. 쿨리찌는 안에 말린 과일 같은 것을 넣은 일종의 파운드 케이크 같은 맛이었다. 간접적으로나마 종교적 축제에 동참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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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기념일은 나치 독일을 상대로 러시아가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보통 붉은 광장에서 퍼레이드를 하는 모양이지만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도 퍼레이드가 있는지 에르미타주 궁전 앞 광장에도 퍼레이드 예행 연습하는 준비하는 군인들 가득했다. 진기한 경험이다 보니 멍하니 구경하다 오와 열을 맞춰 행군하는 군인들이 방향을 바꿔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괴상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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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 시절 미군부대에서 지휘관이 바뀔 때마다 우리의 이임식과 같은 세레모니를 했었는데 그때는 오와 열을 맞추며 제식훈련을 하는 것이 나의 몫이었는데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 외국인 관광객 신분으로 대열의 밖에서 보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외국에서 남의 군대가 훈련을 하는 것을 보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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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를 준비하기 위해 수많은 군용차량들이 즐비한 모습들을 보는 것 또한 큰 기쁨이었다. 나는 밀리터리 덕후는 아니지만 관련 업종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어 군용차량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실제로 운행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카투사 출신이니 부대 내에서 훈련 때마다 움직이는 미군 M1 탱크나 장갑차들은 자주 보았지만 러시아 군용차량들은 처음이지 않은가. 물론 러시아 탱크 이름이 Т로 시작하는 것만 알고 넘버링까지 외울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아이처럼 철없이 군용차량들을 보며 눈이 똘망 똘망해지는 나를 보고 아내는 큰 아들을 키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는 본인도 장갑차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 말했으면서. 주변의 러시아인들도 정말 아랑곳하지 않게 장갑차에 매달려 사진을 찍는 것을 보면 전승기념일이 정말 러시아 시민들을 위한 축제같이 느껴졌다. 물론 전승기념일의 퍼레이드는 러시아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주변국에 러시아의 군사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시민들은 단순한 관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축제의 일원으로 즐기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여러모로 외국인 입장에서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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