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몸과 마음이 정화된다
모스크바 근교에는 황금고리의 도시들이 있다. 황금고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위치에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도시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할 첫번째 도시는 바로 세르기예프 파사드이다.황금고리 도시들 중에 제일 모스크바와 가깝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가깝다고는 하지만 기차를 타고 한시간 이상을 이동해야하니 나름 기차여행의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세르기예프 파사드에 도착하니 시골 간이역의 느낌이 많이 났다. 대학 새내기 시절 가평으로 기차여행을 하던 감성이 살아났다. 기차역에 도착하여 역시나 한적한 시골마을 느낌이다. 상쾌한 시골 공기에 마음이 정화된다. 조금씩 발을 움직여 세르기예프 파사드를 향해 걸었다. 멀리서 새하얀 수도원의 모습이 보인다.
세르기예프 파사드는 러시아 정교회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수도원의 도시이다. 두터운 성벽으로 감싸져 수도원이라기 보다는 요새같아 보이기도 하다. 외견은 많이 다르지만 어쩐지 프랑스의 몽생미셸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몽생미셸도 수도원이라기 보다는 요새같아 보였으니까. 사실 이곳의 수도원은 몽굴군의 침입때는 요새의 역할을 겸하기도 했단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세르기예프 수도원을 세운 세르기 라도네즈스키라는 인물은 모스크바에서 70km 정도 떨어진 이곳에 수도원을 세워 신에게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절제와 청빈의 삶을 위해. 로마 카톨릭에서는 사제와 일반 신도들의 공동체인 교구가 더 중심이라면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수도사들이 중심이 되는 수도원의 비중도 일반 교구 못지 않게 중요한 듯 보였다. 수도원의 설립자인 세르기 라도네즈스키 또한 몽골군의 침략에서 러시아의 공국들을 규합시키는데에 정신적 지주 역할도 했기 때문에 세상과 완전히 단절한 것이 아닌 러시아인의 정신적 기둥역할을 한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다 수많은 성당들이 나를 맞는다. 교구를 관리하기 보다는 수양과 구도를 목적으로 삼는 수도원이다 보니 더 엄숙하게 느껴진다. 수도원 중앙 광장에 위치한 분수에는 성수가 뿜어져 나오는데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약수터에서 물을 떠가던 우리의 옛시절처럼 빈 생수병에 성수를 받아가기도 한다. 무엇인가 영험한 효험이 있기를 바라면서.
수도사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달래는 이도 보이고, 감격에 차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하는 사람의 모습도 있었다.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가 다를지언정 일상생활에서 받은 상처와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달래는 듯한 모습은 느낄 수 있었다.
수도원은 일부시설을 제외하고는 따로 입장료를 받지 않고 대중에게 개방되고 있었다. 신도들의 헌금으로 운영되기 때문도 있겠지만 수도원 안에서 수도원에서 만든 빵이나 크바스 등을 판매하는 등의 방식으로 수입을 거두는 듯 싶었다. 특히 흑빵을 발효해 만든 크바스는 작은 잔 하나에 15루블 정도로 저렴했고 매우 시원했다. 여름에 마신 크바스의 시원한 맛은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수도원 주변으로는 이곳의 명물인 마트료시카를 파는 가게들도 있는데 수도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주고객이니 아무래도 수도원이 도시의 신앙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중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원을 나와 이 작은 도시를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보통 세르기예프 파사드는 당일코스이기 때문에 수도원만 빠르게 보고 모스크바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기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도시의 호수를 거닐고 도시의 풍경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좋은 여행이 되었다. 때로는 복잡한 도시를 나와 소도시를 방문하는 것만으로 일상의 고민들이 사라진다. 한적한 풍경이 아둥바둥 살지말라고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호텔에서 짐을 챙겨 다시 모스크바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전 마지막으로 세르기예프 파사드와 눈을 맞췄다. 수도원이 중심에 서있는 이 목가적인 풍경의 도시를 마음에 담기 위해서. 이곳에 사는 동안 언제고 다시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이번 방문이 마지막일수도 알기에.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것처럼 도시와의 만남도 아름답게 마무리지어야지.